생생육아정보]]> <![CDATA[캐나다 한인포털 해피코리아 > 생생육아정보]]> 생생육아정보]]> 생생육아정보 http://happykorea.ca/comm 제공, All rights reserved.]]> Fri, 10 Jul 2020 00:41:07 Fri, 10 Jul 2020 00:41:07 <![CDATA[자녀와 함께 보기 좋은 넷플릭스 영상 추천!!]]> 학교에 못간지 2개월이 다 되어 가네요.
온라인 수업은 자리를 잡았지만 친구들과 수다가 완전히 끊겨버린 요즘 넷플릭스는
아이의 리스닝 학습이자 온 가족의 집콕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에요.

계획 없이 보여주는 영상 파일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을 수 있기에
양질의 좋은 영상을 엄선해서 보여주고 관리하는 부모님의 역할이 필요한 것 같네요.

부모님이 함께 봐도 재미있는 가족 영화! 연령대 별로 대표작을 추천합니다!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보는 넷플릭스 영상 추천
https://youtu.be/IT1Pj64DhNo
 

중학생 아이와 함께 보는 넷플릭스 영상 추천
https://youtu.be/6mFKdCcd6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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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5 Apr 2020 07:22:23
<![CDATA[[교육법]아들을 위대하게 키우는 법 + 딸은 세상의 중심으로 키워라 ]]> https://youtu.be/y05RY8Unsok]]> Tue, 26 Nov 2019 09:41:18 <![CDATA[세계명문가 자녀들의 특별한 공부법…자녀 성적을 올리는 방법]]>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중 케네디가 교육법, 아인슈타인 교육법

‘엘리트보다 사람이 되어라’의 전혜성박사의 교육법.

진짜 고수들의 자녀교육과 공부를 빠르게 습득하는 비법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https://youtu.be/Sn10cDiIu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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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8 Nov 2019 06:38:55
<![CDATA[초등 저학년 공부법 - 엄마표 무료 온라인 학습]]> 이제 영어 걸음마는 어느 정도 뗀것 같은, 유치원 생과 초등 저학년 아이들 국제학교 초등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책읽기 입니다. 새로운 어휘나 조금 어려운 문장으로 넘어가다 보면 눈과 귀가 함께 책을 읽는게 굉장히
효과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영어 책읽기를 도와줄 수 있는 무료 사이트를 가장 먼저 소개합니다.

https://youtu.be/akgZZRpTWro]]>
Thu, 24 Oct 2019 14:08:00
<![CDATA[자녀를 위해 반려견을 키우고 싶다면 꼭 알아야 할 3가지]]>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반려견 입양에 대한 내용을 다룬 영상인데요.

부모입장에선 꼭 고려해 볼 내용 같아요~

https://youtu.be/837E1swOh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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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0 Oct 2019 07:08:32
<![CDATA[영화관에서 아이들 생일파티 하는 법입니다]]> https://youtu.be/IGcQiNSCk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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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 5 Oct 2019 17:00:26
<![CDATA[몰랑아, 담에 올때 둘이오렴]]> 난 ‘몰랑이’라는 아이를 잘 몰랐다. 우리 집엔 수백 종류의 장난감이 있고 그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대개는 얻었거나 재활용 장난감인데 우리가 구입했거나 선물 받은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근데 이 수백 종류의 장난감 이름을 아이들은 다 알고 구별해내고 있다. TV광고, 유투브 광고도 큰 역할을 하겠지만 또래 아이들과 놀며 알지 않았을까.


어제 갑자기 수많은 장난감 중에 ‘몰랑이’라는 아이를 뽀뇨, 유현이가 가지고 놀았다. 이 장난감은 야광 피규어인데 하필 우리 집에 하나밖에 없었고 어제 뽀뇨가 얘를 안방으로 데려와 잠을 청했다. 유현이가 내게 “아빠, 나도 몰랑이 사줘”라고 얘길했고 나는 무심결에 “그래”라고 얘길 해버렸다. 그 후 난 손가락 반 만한 이 장난감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다음날 생전 전화를 하지 않는 아내가 낮에 전화를 걸어왔다. 받아보니 “자기야, 유현이가 아빠에게 할 말이 있대요. (전화를 바꿔주니) 아빠, 언제와? 아빠, 빨리 와”라고 얘길했다. ‘뭐지? 왜 갑자기 빨리 오라고 하지?’ 생각했는데 다시 아내가 전화를 걸어 정확히 콕 짚어주었다. “자기야, 어제 유현이에게 몰랑이 사주기로 했다면서요. 집에 올 때 편의점에 들러 몰랑이 사오세요”


‘몰랑이.. 그게 뭐더라’. 차를 몰고 오며 몰랑이가 정확하게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렸으나 생각이 나지 않았고 ‘집 앞 편의점에 있겠지’하며 그냥 집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니 유현이가 “아빠, 몰랑이는?”하며 부리나케 달려왔고 나는 “어, 못 사왔어”했더니 유현이는 울음을 자동 발사했다. “알았어. 곧 사러가자”.


아내는 저녁에 도서관에 갔고 나는 텃밭에서 따온 가지를 맛있게 구워먹었다. “아빠, 몰랑이는 언제 사러가?” 유현이가 또 재촉하길래 “엄마 올 때 사오라고 하자”했지만 소용없었다. 밥 먹자마자 아이들에 이끌려 바로 집 앞 편의점에 갔다. 동네엔 편의점이 3곳 있는데 제일 먼 곳부터 갔다. 유력한 곳이었는데 장난감 코너에 몰랑이는 없었다. 문구 코너가 작게 있는 두 번째, 세 번째 편의점에도 역시나 몰랑이는 없었다.


그때 뽀뇨가 ‘몰랑이 있는 편의점’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 했다. “아빠, 몰랑이 있잖아. 제주올레 앞에 있는 편의점에 있어. 내가 지난 번에 편의점 가서 봤어”라고 했다. 조그만 피규어 하나 사러 오밤중에 차를 타고 가야되나 싶었지만 약속을 꼭 지키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마음만은.


“유현아, 그냥 몰랑이 누나꺼 가지고 놀면 안 돼?” 꾀를 썼지만 유현이는 꼭 자기 것이 갖고 싶다고 했다. 며칠째 회사 설립 준비로 강행군을 한지라 몸과 마음이 너무 피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아이들이 봤다는 그 제주올레 앞 편의점으로 갔다. ‘거기엔 있겠지’하고 찾아갔으나 몰랑이가 있던 그 자리엔 다른 장난감이 놓여있었다. “어, 여기에 분명히 몰랑이가 있었는데”. 누나의 말을 듣더니 유현이는 울음 발사를 위해 훌쩍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얼른 아이스크림으로 화제를 돌렸다. 나는 편의점 판매원에게 ‘몰랑이’가 어디 갔는지 물어보았다. 판매원은 “거기 없으면 없어요”라고 짧게 대답했고 나는 도대체 ‘몰랑이’는 어떻게 사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겨우 몇 분 아이스크림으로 입을 막긴 했지만 ‘몰랑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해줘야 했기에 “인터넷으로 사줄게”라고 얘기해버렸다.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모두 몰랑이 세트만 팔았다. 거기다 유현이가 원하는 야광 민무늬 피규어가 아니었다.

 

“아빠, 그러면 택배 아저씨가 몰랑이 가져오는 거야?”, “아빠 그러면 언제 오는거야?” 유현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묻기 시작했고 나는 어떻게 해야 ‘이 놈의 몰랑이’를 구할 수 있을지 며칠째 고민하고 있다. 사실 유현이 이모가 보낸다는 초콜렛 소포가 어서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그 사이 뽀뇨 몰랑이를 실종시켜야 하나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몰랑아.. 담엔 우리집에 오지 말거나 오더라도 둘이 오렴.

http://babytree.hani.co.kr/?mid=story&page=3&document_srl=31797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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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Mar 2019 19:43:38
<![CDATA[여긴 꼭 가야 해!!]]>

 

자...생각해 봅시다.
날은 덥고 냉장고는 비어 있고, 김장김치도 떨어졌으니 장을 보러 가야지요.
당신은 머릿속으로 사야 할 것들을 떠올려 봅니다.
얼갈이 열무 김치도 담가야 하니 각각 한 단씩 사야 하고, 오이소박이도 담그고 싶고,

애들 좋아하는 햇 옥수수도 넉넉히 사고 싶고, 대추 방울 토마토에 내가 좋아하는 찰 토마토도

한 2킬로 쯤 사야 하고,  요즘 한창 맛있는 가지며, 양배추, 팽이버섯, 꽈리고추에

홍고추도 한 봉사서 김치에 넣어야 하고,  신랑이 좋아하는 호박잎쌈에 물 좋은

생고등어 한 손 사서 조리고 싶은데 돈은 4만원 밖에 없네요. 
다 살 수 있나요? 어림없다구요? 토마토만 해도 만원이 훌쩍 넘는다구요?
저거 다 살려면 10만원 쯤 가지고 나가야 한다구요?  맞습니다.

시내의 대형마트나 동네 마트에 가서 사려고 해도 최소한 5-6만원 이상 가지고 나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위에 열거한 모든 것을 사는데 3만 8천원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구요?
답은 바로 우리 지역에 있는 로컬푸드센터를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로컬푸드5.jpg

 

군포시 대야미에 있는 우리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가면 반월 로컬푸드 직매장이 나옵니다.
반월농협에서 운영하는 지역 생산품 직거래 매장이예요

 
로컬푸드6.jpg

 

넓고 깨끗한 매장 안에는 매일 아침 근거리의 농장에서 농사는 짓는 농부들이 직접 수확해 온

신선한 먹거리가 그득하게 쌓여 있습니다

 

로컬푸드7.jpg

 

 

농부들이 직접 포장해서 가격을 매긴 먹거리마다 생산자의 이름과 이 먹거리가 재배된 곳이 표시됩니다.
이 곳의 장점은 일단 모든 판매물들이 정말 싱싱하고 가격이 굉장히 싸다는 겁니다.
저도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이지만 당근을 이렇게 이쁘게 키우는게 정말 힘든 일인데 당일 수확한
이쁜 당근 한 봉지가 겨우 천원입니다. 중간 크기 양배추는 두 통에 천원이구요.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물품이라도 크기, 생긴 모양에 따라 가격이 조금씩 다르다는 거예요.
같은 오이라도 길이와 모양이 매끈한 정도에 따라서 천 오백원, 천 팔백원, 이천원, 이천 사백원등
다양합니다. 파시는 분이 적당한 가격을 매깁니다.

 

 

매일 먹는 기본 채소들은 물론이고 과일, 곡물, 건나물, 심지어는 화초들에 허브 제품이며 씀바귀에
민들레 잎, 바질 잎 같은 특수 작물도 있습니다. 어느것이나 정말 쌉니다.
특히 토마토가 아주 싸고 맛도 좋아요. 저도 토마토를 밭에서 기르고 있지만 이곳 토마토가 더 맛있어서
결국 사오고 말았습니다.
 
로컬푸드2.jpg

 

너무 너무 이쁘고 맛있게 익은 찰토마토 2킬로가 3천 2백원이예요. 정말 달고 맛있는 대추 방울
토마토는 750그램에 천 오백원 주고 사 왔습니다. 동네 마트랑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입니다.
 
로컬푸드4.jpg
 
우리밭에도 부추가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한봉지에 천원 주고 사왔습니다.
이 더운 날 밭에서 부추를 잘라 일일이 다듬는게 너무 힘들어서요. ㅠㅠ
오이 소박이 담글 만큼 다듬으려면 땀을 한 말 쯤 쏟아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말끔히 다듬어진 부추 한봉지에 천원이니 저는 정말 제 영혼을 팔아서라도
사오고 싶었습니다. ㅠㅠ 
맛 좋은 가지도 다섯개에 천 삼백원... 대개 이 정도 가격입니다.
열 일곱개 들어있는 찰옥수수도 한 망에 9천원 주고 사 왔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많이 샀어도 4만원이 안 되는 겁니다. 여기에 물 좋은 생고등어 두 마리 까지 얹어서
3만 8천원 들었습니다. 요즘 같은 고 물가 시대에 정말 믿을 수 없이 싼 가격이지요.
왜 이렇게 저렴할까요.
일반 마트들은 전국의 산지에서 구매한 물품들을 대도시로 운반하는데 많은 비용이 듭니다.
요즘 같이 더운 날은 냉장 유통도 필수입니다. 중간 상인들이 가져가는 이윤도 적지 않지요.
유통 단계가 늘어날 수록 가격은 비싸지고 신선도는 떨어집니다. 
로컬푸드 센터는 바로 이 중간 과정이 없습니다. 근거리에 사는 생산자가 직접 수확, 포장해서
가져옵니다. 안 팔리는 물건은 다시 수거해 가지요. 신선 식품은 당일 판매가 원칙이라
동네 마트처럼 시들때까지 며칠씩 놓고 팔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팔려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저렴한 가격을 정하는 것이 낫습니다. 소비자는 그만큼 싸고 신선한 생산물들을 살 수 있지요.
신선한 것을 사고 싶으면 오전중에 다녀오시구요, 그날 안 팔린 것들을 정말 더 싼 가격에
얻고 싶으시면 폐점 시간 즈음에 가시면 된답니다. ^^

제가 텃밭에서 땀 흘리며 농사짓는 것보다 로컬푸드 센터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저렴합니다.
수고도 안 들이구요. 그러나 땅을 놀릴 수 없어 저는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짓고 있지만 인건비를
생각하면 감자도,  토마토도, 콩도, 김치거리도 로컬 푸드가 훨씬 낫습니다.
이런데도 이용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막히는 시내를 뚫고 대형마트에 다녀오는 시간보다
적게 걸리는데도 말입니다.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형마트보다 이런 곳이 정말 장사가 잘 되고 손님들로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국내산인데다 무엇보다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신선한 먹거리들입니다. 로컬푸드 센터를
이용하는 것이 환경에도 가계 살림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로컬푸드3.jpg
 
그동안 덥네, 힘드네, 먹을 게 없네 불평만 하다가 로컬푸드 센터에 다녀와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렇게 귀한게 가꾼것을 이렇게 싸게 파는 농부들을 생각 해서라도 고마운 마음으로 정성껏
건강한 음식으로 만들 책임이 제게 있으니까요.
부랴 부랴 오이 열한개를 절여서 오이 소박이를 담궜습니다. 열무, 얼갈이 김치도 담궜습니다.
피아노 치고 올 두 딸들을 위해 옥수수 열개도 맛나게 삶아 놓았습니다.
저녁엔 두 가지 풋 김치에 고등어 조림을 먹을 겁니다. 꽈리고추를 넣고 멸치도 조리구요.
토마토가 넘치게 생겼으니 내일쯤 애들 좋아하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물가가 점점 오른다고, 생활비가 더 든다고 한숨 나오는 요즘 입니다만 조금 관심을 가지고
발 품을 팔면 이렇게 좋은 곳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지역 경제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지구 환경을 위해
지역에 있는 로컬푸드 센터를 많이 찾아 주세요.^^
이 여름이 한층 건강하게 지나갈 겁니다. ^^




http://babytree.hani.co.kr/?mid=story&page=3&document_srl=31797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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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Mar 2019 19:42:37
<![CDATA[그런 날]]>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전철역까지 실어다 주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 여섯시다.
세탁 바구니 가득한 빨래들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기 시작한 후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 간다.
벌써부터 후덥지근해서 어짜피 잠은 다시 안 온다. 그러나 늦게 잠들었고 새벽에도 더워서
뒤척이느라 잠을 설쳤던 몸은 침대에서 맥없이 늘어져 버린다.

이른 아침부터 집 앞의 공사장은 시끄럽다.
드릴소리, 망치소리, 공사 차량이 드나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벌써 몇 달째다.
종일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에서 피할 수 가 없다.
머리가 지끈 거린다.

일곱시 반 알람과 동시에 세탁이 다 되었다는 알림음이 울린다.
해태는 진작부터 아침밥을 내 놓으라고 우렁차게 짖어대고 있었다.
애들을 깨우며 일어났다. 매일 물놀이를 하고 늦게 잠드는 딸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밥을 데우며 바구니 가득한 빨래를 들고 2층에서 널고 오니 등줄기로 땀이 흘러 내린다.
아침 반찬을 뭘 해야 하나...한숨이 나온다.
야채칸에서 가지 하나를 꺼내 얇게 저며서 기름에 부쳤다. 들기름 간장에 찍어 먹으라고 내 주고
열무김치도 꺼내 주었다. 밥도 조금씩 퍼서 올려 주었다.

이불을 정리하고 나와보니 이룸이는 밥을 먹고 있는데 윤정이는 소파에서 뭔가 들여다보고 있다.
"아침 먹어야지. 차려 놨잖아"
"엄마가 매일 신문기사 읽으라면서요"
과연 어제 오려준 기사 하나를 얼굴을 잔뜩 찌푸린채 들여다보고 있다. 
"바쁠때는 밥을 먹으면서 보면 되지. 시간 많을때는 안 읽고 왜 제일 바쁠때 그걸 읽고 있어"
"엄마가 읽으라면서요"
엄마가 시킨 일 하느라 밥도 못 먹고 있다... 고 시위하는 중이다. 시간 있으면 만화만 들여다보며
빈둥거리고 게임 시간은 칼 같이 챙기면서 신문 기사 읽겠다는 약속만 뒷전이다. 밉다.

윤정이는 논리적으로 글 쓰는 능력이 부족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래서 신문기사 하나씩 
건네주면서 읽고 느낀 점을 써 보자고 했는데 사실은 하기 싫은 것이다. 마지못해 읽으려니
재미도 없고 자꾸 핑계만 는다. 만화는 열심히 보면서 기사 하나 정성껐 읽는걸 귀찮아 한다고
한소리 했더니 인상을 더 꾸기며 식탁으로 온다.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이리저리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며 아이들을 살펴보니 이룸이는 그럭저럭 밥을 먹어가는데
윤정이는 부루퉁한 얼굴로 눈길은 펼쳐놓은 만화책을 기웃거리며 젓가락만 깨작거리고 있다.
"엄마.. 반찬이 이게 다예요?"
마음에서 훅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 맛있는 반찬이 없어서 밥 먹기 싫으니?"
"아니 그게 아니고, 반찬이 이게 다냐구요"
"그게 다야. 가지부침 맛있지 않니? "
"...... 밥..... 남길래요"

아침엔 일부러 밥을 조금 뜨는데 두어 숟갈 뜬 밥을 고스란히 남기겠단다.
짜증이 확 솟았다.
"그러니까 아침밥은 니가 떠. 얼만큼 먹을지 엄마가 어떻게 아니? 한 숟갈 먹을지 두 숟갈 먹을지
엄마는 몰라. 니가 떠 먹어" 소리를 질렀다.
덥고 바쁜 아침에 가지 하나 부친 것도 애쓴건데 그거 하나로 맛있게 먹어주길 기대한 나 자신도
한심하고, 냉장고에 아이들이 입 다실만한 맛난 식재료도 없고, 그렇다고 아침부터 이런 저런

다른 반찬 만들어낼 마음도 체력도 없다는게 그냥 다 화가 났다. 그런 마음을 딸에게 들킨 것 같아

더 화가 났을 것이다.

윤정이는 입을 지그시 다물고 나를 노려보다가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이룸이한테 소리를 지른다.
"나도 할꺼니까 조금 비켜봐! 비키라고!
그렇게 뱉으면 더럽잖아. 저리 좀 가 봐!""
엄마한테 혼나서 기분 나쁜 것을 고대로 동생한테 다 퍼붓고 있다.
윤정이가 남긴 밥을 입에 쓸어 넣으며 꾹 참았다. 
날은 덥고, 몸은 피곤하고, 안그래도 요즘 몸이 부쩍 크느라 이런 저런 짜증이 많은 윤정이다.
아침부터 엄마한테 혼났으니 기분도 안 좋겠지. 젠장..

한 번 짜증이 난 윤정이는 이제 뭐든지 날을 세운다.
늦었는데 빨리 준비 안 한다며 이룸이 옆에 서서 계속 재촉을 한다.
"이룸이 좀 그냥 나둬. 엄마가 알아서 할테니까"
"얘 때문에 매일 늦거든요?"
"아니라고!"
아침부터 시끄럽다.
나도, 윤정이도, 이룸이도 모두 기분이 언짢다.

윤정이가 먼저 차에 올라타고 내가 운전석에 앉으려는데 이룸이가 허둥지둥 현관문을 나선다.
어제 가져온 두꺼운 포토폴리오를 팔에 안고 있다.
"가방에 넣지, 왜 들고 와?"
"가방에 넣을라고 했는데 언니가 늦었다고 빨리 나오라잖아요" 이룸이가 징징거린다.
다시 솟아오르는 짜증을 눌렀다. 안 봐도 훤하다. 그거 하나 가방에 넣을 시간도 안 주고 옆에서
다그쳤을 것이다.
뒷 좌석에 앉은 이룸이 가방을 열어 포토폴리오를 넣어 주느라 시간이 또 흘렀다. 윤정이는
못내 얄밉다는 표정으로 이룸이를 노려보고 있다.
"어짜피 걸릴 시간은 걸려야지. 그걸 못 하게 하면 시간만 더 늦어져" 윤정이에게 한소리를 하는데
이룸이가 앉으면서 윤정이를 건드렸더니 윤정이가 대번에 소리를 지르며 이룸이를 노려본다.
아.. 정말 이번엔 내가 폭발할 것 같다. 
"너희들 오늘 걸어갈까? 서로 이정도에서 멈추는게 어때?"
둘 다 인상을 쓰며 입을 다물었다.

간신히 차에 시동을 걸고 언덕길 쪽으로 돌렸더니 골목으로 연결된 언덕길 아랫쪽에 BMW 한 대가
떡 하니 세워져 있어 우리 차가 내려갈 수 가 없다. 분명 공사 관계자의 차 일 것이다.
말도 없이 멋대로 남의 집 진입로에 차를 세워두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신경실적으로 요란하게 클랙션을 눌렀다. 공사장 인부들이 흘깃 나를 바라본다.
성깔있는 앞 집 여자가 또 한 소리 하겠구나... 하는 표정들이다.
클랙션을 두 번 눌렀을때 젊은 남자가 허둥지둥 뛰어왔다.
죄송하다며 꾸벅 하는 그를 향해
"제발 남의 집 앞에 차 좀 세워 놓지 마세요. 이 시간이 제가 제일 바쁜 시간이라구욧!!"
소리를 질렀다. 온 몸에서 분노가 폭발할 것 같다.
남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재빨리 차를 몰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따라 차를 운전해서 마을을 빠져 나오는데 기분이 정말.... 끔찍했다.

큰 길로 들어섰을때 나는 마침내 입을 떼었다.
"...... 감정의 부메랑 효과... 라는 말이 있어"
"부메랑이요?"
"그래, 부메랑... 부메랑은 돌아오는 거잖아. 내가 상대방에게 던진 감정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는게
부메랑 효과야. 오늘 아침을 봐.
너희들은 가지 부침이 대수롭지 않지만 엄마딴에는 맛있게 먹으라고 준비한건데 언니가 맘에 
안 들었나봐. 날 더울때 밥 한끼 차리는거 쉽지 않아. 맛있게 차려주지 못한 것은 미안하지만

엄마도 힘들어. 그런데 언니가 다른 반찬 없냐고 하니까 엄마가 순간 화가 확 난거야.

언니한테 한소리 했더니 그것때문에 화난 윤정이는 바로 목욕탕에 들어가 엄마한테 받은 감정 그대로 이룸이한테 다 퍼붓더라. 이룸이도 언니한테 받은 감정을 누군가에게는 던져야 하니까 또 큰소리가 나고...

너희들이 아침부터 싸우는 걸 보는 엄마는 더 화나 나고...

사실...아까 우리 언덕길에 차를 대 놓은 아저씨한테 엄마가 그러면 안돼는거였어.
처음 보는 얼굴이던데 그 사람이 우리집에 학교 가야 할 어린애들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겠니.
그냥 어쩌다 거기에 차를 대 놓은 건데 그냥 신호를 보내서 차를 치워 달라고 하면 되는데
너희들때문에 화가 나 있는 상태다보니 필요 이상으로 그 아저씨한테 소리를 질러 버렸어.
아침부터 차곡차곡 쌓여왔던 감정들을 다 그아저씨한테 퍼 부어 버렸다고....

부끄럽고 속상해...

다른 사람한테 좋은 감정을 받고 싶으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내가 그런 감정을 상대방에게
주는 거...
서로 날카롭고 계속 부딛치고 계속 싸움이 날 때는 누구라도, 아주 조금 더 마음이 넓은 사람이
상대방에게 받은 나쁜 감정을 누군가에게 다시 던지지 않고 거기에서 끊어야 하는데
그래야 끝나는데 원래 그 역할을 어른인 엄마가 해야 하는데 오늘은 엄마도, 윤정이도, 이룸이도
누구도 그걸 못했어. 그래서 엄마도, 윤정이도, 이룸이도 기분이 다 나빠져 버렸네..."

셋다 기운이 빠진채 경로당 앞에서 내려 학교까지 걸었다.

"엄마가 요즘 날도 덥고 할 일도 많고 여러가지로 힘들어서 자꾸 어른스럽지 못하게 굴어.
오늘 아침에도 화내고 소리질러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 우리도 미안해요"

교문앞에서 교실쪽으로 걸어가려는 윤정이를 불러 세워 꼭 안아 주었다.
"윤정아 화 내고 야단쳐서 미안해"
"..... 들어갈래요"
윤정이는 터덜터덜 교실로 걸어갔다. 친구들을 만난 이룸이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명랑해져서
나한테 방긋 웃음을 던지며 손을 흔들었다.

혼자 차를 몰고 돌아오는데...
아... 정말 부끄럽다. 속상하다. 그래서 또 화가 난다.

힘들어도 뭔가 맛있는 아침을 차려 줘야 하는데... 아침엔 밝고 따듯하게 애들한테 힘을 줘야 하는데..
오늘은 완전히 모든게 다 엉망이다. 
지난 겨울부터 시작해서 질질 끌어가며 찔끔찔끔 공사를 하다가 제일 더운 한 여름에 종일 소음을
일으키는 공사장도 지긋지긋하고 자꾸 더뎌지는 책 작업에 대한 부담도 커 지고 있었다.
늘 바쁘게 애를 쓰는 것 같은데 끼니 때만 되면 먹을게 없는 것도 화가 나고, 수영장 친 후로
매일 친구들을 몰고 오며 일거리를 더 만들어내는 딸들에게도 짜증이 쌓여 왔었나보다.
가뜩이나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사소한 것에도 발끈하고 예민해지는 윤정이인거 알면서
같이 늙어가는 엄마는 마음의 여유가 자꾸 없어진다. 같이 발끈하고 같이 버럭거린다.
이 나이가 되도록, 아니 나이가 더 들수록 인격이 얄팍해지는 모양이다. 부끄럽다 
다 그냥 더위 탓이겠지..
더운 날이 너무 오래 이어지다보니 세상의 물기도 마음의 물기도 퍼석하게 매말라 버린 탓 이겠지.
이런 아침 그저 흔하고 흔한데 오늘은 왜 이렇게 가슴에 돌 하나 얹은 것 처럼 마음이 무겁고
속상한걸까. 

딸들이 학교에 가 버린 어수선한 집 안에서 기운없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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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Mar 2019 19:40:54
<![CDATA[일상의 정의를 지키는 사람들]]> 다엘의 생일인 지난 토요일,

아빠와 만나서 맛있는 걸 먹기로 했던 다엘이
고열과 배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방학을 한 후 너무 심하게 놀았던 탓이다.
병명은 ’더위먹음’.

 

아무 데도 못 가고 끙끙 앓다가
좀 나아져서 친척들과 생일파티를 하기로 한 날,
이번엔 사촌누나가 비슷한 증상으로 아프면서
약속이 또 무산되었다.
상심한 다엘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눈물을 글썽이며 소파에 누워 있었다.

 

고민하던 나는 지인들에게 
다엘의 생일 축하 메시지 전송을 부탁하기로 했다.
카톡방에 사연을 전하고 다엘의 폰 번호를 남겼더니
순식간에 따뜻한 메시지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다정한 편지 같은 축하문자와 함께
귀여운 아기 사진, 강아지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급기야 아이스크림 쿠폰과
팥빙수 쿠폰 등 선물 메시지까지….

 

입이 귀에 걸린 다엘은 감사문자를 보낸 후
주소록에 이름들을 정성껏 저장했다.
그들 대부분이 다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나
아이의 다친 마음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운영진의 부당한 처사에 반기를 들었다가 
강퇴, 즉 쫓겨난 전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한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더니
‘강퇴 이모’들이 다엘을 키운다는 말이 나와 웃으며 공감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일 중 
온라인 카페의 회원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
초기의 순수했던 목적이 아닌 사심이 생기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일종의 권력이 형성되면서 아무 제한 없이 이를 행사하는 것이다.
최근에 식당이나 카페를 돌아다니며 공짜 서비스를 강요하는
지역 맘카페 운영진이 있다는 사실도 이런 현상의 한 단면일 것이다.

 

우리 모임도 첫 출발은 
사회 편견을 없애고 아이들을 잘 키우자는 데서 비롯됐으나
다른 목적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반발하는 이들에게 돌아온 건 강제탈퇴와 활동정지였다.

 

그리하여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정의를 외치는 소수자가 양산됐다.
강퇴 이웃들과 나 자신을 위해 다짐을 한다.
현실적으로 지는 싸움에 들어섰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발자국 하나하나가 헛된 게 아니라고.
지금의 일상이 쌓여서 소중한 역사가 될 테니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자고.

 

극히 일부만 누릴지도 모르는 잔칫상 앞에서
아픈 가시처럼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도록
마음 속 무쇠를 벼리자 생각한다.

 

한편으론 나 또한 그들처럼 욕망에 빠질 수 있는 약한 존재란 걸 
상상해봤다.
만일 같은 시간에 와달라는 두 개의 초대장이 메일함에 도착했다면?
하나는 사회적으로 큰 명예를 주겠다는 초대의 글,
또 하나는 이름없는 소수자의 도움 요청 글,
둘 중 어느 메일을 먼저 열겠는가?
내가 좀더 큰 목소리를 낼 기회를 갖는다면 
더 많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합리화와 함께 
두 번째 메일은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삭제할지도 모른다.

 

작은 권력을 손에 쥐고 휘두르는 이들에게서
나 자신의 가장 나쁜 모습을 보는 거라 생각했다.

 

이와 함께 
고인이 된 노회찬 의원의 삶을 마음 깊이 담는다.
큰 그림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일상의 사소함을 전혀 사소하지 않게 여겼던 사람.
참으로 영민하지만 소탈한 미소로 일관했던,
증오나 혐오를 앞세우지 않으면서 일침을 놓았던
그를 보내고
가슴 속이 휑하니 뚫려버렸다.

 

그의 영전에 내 아이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바친다.
‘나는 죽음이에요’라는 제목으로 북유럽 작가의 작품이다.
책 속에는 ‘죽음’이라는 이름의 소녀 이야기가 펼쳐진다.

 

‘숨이 멈추면 고통스러울까? 아니면 고요할까?
땅에 묻히게 될까? 재가 되면 산바람에 멀리 날아갈까?
아니면 하늘로 올라가게 될까? 다시 태어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그 끝은 어디일까?
궁금한가요? 내가 알려 줄게요. 
나는 아무런 비밀도 숨기는 것도 없어요.’

 

이런 말과 함께 소녀의 답은 이어진다.
자신(죽음)이 찾아가지 않는다면
생명의 자리도 있을 수 없음을.
삶과 죽음은 모든 생명의 시작과 끝에 함께 한다는 것을.

 

이 책에서 다엘이 꼽은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삶과 죽음이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가까운 곳에 
늘 함께 있다고 하는 대목이다.

 

나는 죽음이에요1.jpg» 그림책 중 다엘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

 

“선함은 그토록 취약한 것인가.
악은 끝없이 번성하는가?”
누군가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아파하며 탄식했던 말이다.
내 아이의 사소한(?)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던 이웃과 함께
저 아득한 질문에 답을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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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Mar 2019 19:39:30
<![CDATA[나는 불쌍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씩 남들한테 불쌍하다라는 말을 듣는다같은 일을 하는 남성 동료에게도 듣기도 하고내가 일하고 있는 여성 조합원들(주로 나이가 50대를 넘긴)에게도 종종 듣는다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50대말 여성 조합원은 내가 1인 4역을 하고 있다고 자주 말한다노동조합 간부주부아빠남편 등.

 

집에서 주로 내 역할은 아침밥 하기아이들과 놀아주기아내보다 먼저 퇴근 하면 저녁밥 하기쓰레기 버리기그리고 아이들 재우기 등이다청소와 빨래는 주로 아내가 한다감히 말하지만 나와 아내는 가사와 돌봄노동을 누구 몫으로 전가하지 않고 공평하게 한다. ‘평등육아를 한다.

 

개인적인 시간은 별로 없다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시원한 맥주나 소주 한잔 먹으러 가는 날은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주로 올곧이 나만의 시간은 아이들 재우고 나서다그마저도 업무가 많으면 누리지 못한다아이들 재우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일을 한다.

 

날개윤슬.jpg     

 

예전에 모 방송국 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에 초대손님으로 구글코리아 대표가 나온 적이 있다구글코리아 대표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남자다당시 비정상회담 프로그램의 주제는 육아였다구글코리아 대표는 구글 직원들은 야근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본인도 구글 본사에서 일할 때 육아 때문에 칼퇴근을 했다고 말했다남자들도 회사 일이 있으면 아이들 재우고 한다고.

 

육아 기준으로만 본다면 나는 구글 직원들과 생활 패턴이 비슷하다나름 글로벌 스탠다드라고나 할까해고의 기준을 이야기할 때 사용자들은 미국의 극단적인 해고 유연성을 부러워하지만(미국은 사장이 어느 날 당신 해고야 하면 바로 해고다), 육아의 기준을 이야기할 때는 글로벌 스탠다드는 없어진다.

 

장시간 노동사회인 한국에서는 육아와 가사는 당연히 여성의 몫이다누군가 육아와 가사노동의 책임을 옴팡 뒤집어써야 장시간 노동사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그리고 많은 여성들 스스로도 이걸 내면화하고 있다평등사회를 위해서 일한다는 많은 남성 또는 여성 사회운동가들도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불쌍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이 불쌍함이 어디서 시작됐을까아내가 연애하던 시절 결혼하면 나에게 뭐해줄거냐고 물었다난 호기롭게 아침밥을 차려주겠다고 말했다직업의 특성상 야근이 많아 저녁에 뭐 해줄 수는 없겠고그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해주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결혼 하고 나서 땅을 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은 후회를 했다차려진 밥상을 내 발로 찬 것이었다아내가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고대 이래 끈끈히 내려온 가부장적인 남성의 권리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 불쌍하냐고 생각하냐고전혀 그렇지 않다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편은 부부관계도 좋고.. 성관계 횟수도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흐흐쉽게 말하면 아내에게 사랑 받고 산다는 것이다.

    

날개 은유.jpg

 

5살 작은 아들 은유는 크면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말했다이 말을 들은 아내는 아빠랑 결혼하겠다는 아들은 찾아보기 힘들건데라고 말했다은유는 종종 아빠가 좋아아빠가 따뜻해라고 말한다평등육아 덕분에 아내와 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 산다.

 

아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우리 노조 여성 간부는 그거 문제 있는 것 아니냐며 아이는 엄마를 좋아해야하는뎨라고 말한다그 분은 보육교사 자격증도 있는 분이다그래서 나는 유아교육 내용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주 양육자를 엄마로 정해놓고 모든 걸 설명한 교과서 내용이 나는 오히려 잘못된 거다라고 답변했다.

 

최근에 도서관에서 이상한 정상가족을 빌려서 읽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읽어서 유명해진 책이다책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이상한 정상가족.jpg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 방식을 말한다바깥으로는 이를 벗어난 가족형태를 비정상이라고 간주하며 차별하고안으로는 가부장적 위계가 가족을 지배한다정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가족이 억압과 차별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전에 제주에서 육아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참석자 대부분이 엄마였는데그 중 한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커서 어떻게 자랄지 궁금하다.

 

나는 바란다. ‘이상한 정상가족’ 서문에 씌여진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자율적인 개인이면서 공감하는 시민으로서 자라길 바란다그렇게 성장하는데 내가 제대로 역할을 한다면 부모로서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혐오와 차별이 넘치는 이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잘 크기를 바라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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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20 Mar 2019 18:23:36
<![CDATA['각.자.도.생']]> 여름 방학에 아이는 카멜레온을 닮아갔다. 아침에는 하얀색, 오후에는 회색, 가끔은 저녁에도 몸 색깔을 바꾸었다. 

“패션쇼 하니?”
“땀났거든.”
여름에는 땀이 난다 고 아이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이를 내려다봤다. 아이는 다가와 작은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아당겼다. 자기 옷에 가져다 대며 하는 말, 맞지? 열한 살 아이는 아빠의 떨떠름한 눈빛을 불신의 눈빛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럴 때면 아이는 과학적인 연구방법을 따랐다. 직접 다가와 눈으로 땀을 보여주고, 직접 만져보게 했다. 어제 빨아 놓은 아이의 윗옷은 어느새 다시 빨래바구니로 던져졌다. 하지만 그건 아빠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아빠 힘들까 봐 바구니에 빨래 넣었다!”
아이는 방학 내내 그렇게 아빠를 도왔다. 아빠를 도와준 아이는 아이는 당당하게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삼시세끼1.jpg

(사진: 픽사베이) 

아이는 올 여름방학기간 동안 물질적으로도 아빠를 도왔다. 외식하지 않기. 
“아빠, 밥 주라.”
사람은 왜 하루에 밥을 세 번씩이나 먹어야 할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 
“점심은 나가서 먹을까?”
“집에서 해주라.”
 해요체의 ‘줘’와 해라체의 ‘라’가 섞인 ‘주라’라는 말투는 명령인 듯 아닌 듯 어감이 묘했다. 
“매일 하루 세 끼 차리기가 그래서.”
 “외식은 몸에도 안 좋잖아. 돈도 아껴야지.”
 선풍기를 코 앞에 둔 아이는 소파에 배를 깔고 만화를 즐기며 그렇게 외식을 거절했다. 몸에도 안 좋고 굳이 돈까지 써야 하는 외식. 인정? 어, 인정. 부엌에서 가스 불을 켰다. 올 여름 주방에서 음식을 할 때면 집 앞 치킨 가게가 자주 떠올랐다.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보인 두 부부는 땀을 흘리며 자정이 다 되도록 치킨을 튀겨냈다. 가스 불 앞에 서 있을 동안 아이는 여전히 선풍기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만화책을 즐겼다. 하지만 식사를 하고 나서 아빠를 돕는 일은 잊지 않았다.
 “아빠, 밥그릇 설거지통에 넣었다!”
 열한 살 남자 아이 중에 설거지 통에 밥그릇을 넣어두는 아이가 얼마나 되느냐고, 아빠는 어렸을 때 그랬느냐며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했다. 밥그릇을 치웠다는 당당한 목소리가 사라진 식탁 위엔 각종 반찬과 낱알이 된 밥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식탁을 정리할 즈음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 
 “아빠, 후식주라.”

삼시세끼4.jpg

(사진: 픽사베이) 

 

 아이는 대부분 방학 내내 아빠 곁을 지켰다. 방학 초기 몇 번 밖을 나간 뒤 아이는 아빠 옆에 머무르기로 작심한 듯 보였다. 자기는 절대로 커서도 가출 같은 건 안 할 거라며 아빠를 위로했다. 집을 나가는 건 고생이라는 걸 잘 아는 아이. 거기까지는 봐 줄만 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고 했건만, 이 문장은 꼭 공중화장실만 가면 눈에 띈다, 어린 아이가 머문 자리는 대부분 아이의 흔적을 남겼다. 유년 시절 어머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던 말, 치우는 사람 따로,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냐, 라는 잔소리. 
“치워라.”
“응.”
“치우라니까.”
“알았다니까.”
하루, 이틀, 결국은 내가 치우기로 했다.

 

 창문을 열어 젖혔다.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여전히 선풍기 앞에 배를 깔고 만화를 읽으며 키득거렸다. 
 “민호야?”
 눈이 마주쳤다. 아이에게 미소를 지었다. 소리소리 지르며 화를 내는 건 나도 별로니까. 화를 내도 교양있게. 
 “아빠, 왜?”
 “치우지 않으면 버린다고 했지?”
 거실 바닥에 흩어진 책 두 권이 내 손을 떠나 열린 창문 밖으로 던져졌다. 평온했던 아이가 놀란 눈으로 창가로 달려왔다. 1층 밖에 떨어진 책 두 권은 풀밭 위에 편하게 누워 있었다. 후다닥 소리가 났다. 아이의 맨발이 낸 소리였다.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아파트 1층에 사는 덕에 아이는 내가 창 밖으로 버리는 물건을 쉽게 발견하곤 했다. 난 그렇게 화를 냈다.

 삼시세끼5.jpg

(사진: 픽사베이)

 그러고 보니 방학 내내 화가 났다. 화가 날 때면 지난 학기 이상 심리학 시간 때 배운 ‘화’라는 감정에 대해 곱씹었다. 
‘화가 나는 건 나의 권리, 나의 가치가 무시될 때 나타나는 정당한 반응입니다. 때문에 화는 자기 존중감을 지키라는 메시지입니다.’ –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못하면’ 中에서(최기홍 고대 심리학과 교수) 
한 사람은 빨래를 하고, 다른 사람은 옷을 일방적으로 더럽힌다면 그건 아이와 부모를 떠나 화가 나는 일이었다. 한 사람은 의무적으로 밥을 차려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음식을 당연하 듯 제공받는다면 그 또한 공정한 일이 아니었다. 가끔 아이 엄마가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을 때 불같이 화를 내는 건 화라는 감정이 주는 메시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난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넌 나만큼 최선을 다하느냐는 메시지.

 

“아빠의 시간이 필요해.”
아이에게 아빠도 여름방학에 지키고 싶은 권리를 이야기 했다. 화가 나는 건 나를 지키라는 메시지이니까. 화가 나는 것과 화를 표현하는 건 다르니까, 아빠가 왜 화가 나는지를 설명했다.
“왜?”
“아빠는 너의 하인이 아니니까.”
“그래서?”
종이에 네 글자를 적었다. 
“각.자.도.생?”
아이가 물었다. 
“응. 각.자.도.생.”
“아빠 각자도생이 뭐야?”
“하루 단 몇 시간이라도 좀 떨어져서 각자의 시간을 갖자는 거지.”
너무했나? 란 생각이 들 즈음, 아이가 물었다. 
“그 시간엔 숙제 하라고도 안 할 거야?”
이 아이는 어느 순간에도 이야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갔다. 
“응. 어차피 네 숙제잖아.”
“청소하라는 건?”
“그건 버리면 되구.”
“그래도 밥은 해주라.”
“밥 시간에는 집에 올거야."


 그리고 방학 기간 하루에 몇 시간씩 난 아이와 떨어지기로 결심했다. 내 삶도 소중하니까. 아이와 돌아올 시간을 약속하고 카페 분위기가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읽고 싶은 책을 집어 들고 자리를 잡았다. 오히려 내 시간을 갖는 게 아이와 나의 관계에서도 좋을 것 같았다. 잠시 아이를 잊으니, 편했다. 하긴, 아이도 숙제를 하지 않은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숙제도 할 거고, 집에서 핸드폰에 빠져 낭패를 봐야지 스스로 핸드폰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니 홀가분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화기가 울렸다. 액정에 아이 이름이 떴다. 도서관과 연결된 2층 쉼터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아빠.” 
 “어, 민호야!”
 잠시 떨어져 있으니, 오히려 아이 목소리가 반가웠다. 
 “아빠, 어디야?”
 “아빠, 집 앞 도서관인데..”
 “몇 층?”
 “아빠 2층인데, 왜?”
 “아빠, 봤어.”
 뭘, 봤다는 거지?
 “아래를 봐봐.”
 아이는 밑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내 계단을 올라온 아이가 물었다. 
 “아빠 자리 어디야?”
 “왜?”
 “아빠 옆에서 숙제하려고.”
 아이는 숙제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온 자신을 또 자랑스러워 하는 듯 했다. 아이는 내가 놀란 이유를 그렇게 해석하는 듯 했다. 아이는 나란히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도서관에서도 작은 목소리로 몇 분마다 말을 걸었다. 아빠, 이 문제 어떻게 풀어? 아빠, 음료수 사주라. 아빠, 오는데 겁나 더워서 옷이 젖었어.

삼시세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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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20 Mar 2019 18:22:03
<![CDATA[마당 미용실]]> 어린날 마당에서 아빠가 내 머리카락을 잘라주시던 일이 생각난다.

미용실 가는 돈을 아끼고 싶어 하신 일일 것이다.
마당에 놓인 의자에 보자기를 둘러쓰고 앉은 나는 아빠가 잘라준다는 것이 맘에 안 들어

고개를 푹 숙이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마도 아빠는 내 눈썹게 맞추어 앞머리를 자르셨을 테지만 고개를 들었을때 내 앞머리는
이마 한 가운데까지 올라가 있었고 나는 거울을 보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는 당황하셔서 어쩔줄 몰라 하시다가 내게 백원을 쥐어 주시며 달래주셨다. 백 원을 받고 나는 울음을 뚝 그쳤다.  그 뒤로 아빠는 딸들 머리카락에 손 대지 않으셨다.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신 모양이었다.

토요일 오후 우리집 마당에는 간이 미용실이 차려졌다.
얼마전부터 앞머리를 자르고 싶어하는 큰 딸을 위해 미용 기술이 있는 지인의 어머님에게 부탁을 드렸더니 우리집 마당으로 오신다는 거였다. 번거롭게 해드리는 것 같아 죄송해 했더니 집에서 하면 머리카락이 날려서 우리집으로 오시는 편이 오히려 낫다는 말에 안심을 했다.

남편이 초여름에 애써서 깔아 놓은 마당의 데크 위에 의자가 놓이고 보자기를 둘러쓴 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니 아주 오래 전 내 머리카락을  잘라주시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시절이 가 버린 후 두 번 다시 그런 풍경은 못 볼 줄 알았는데 그 시절의 나만큼 큰 딸들의

머리카락을 마당에서 자르는 모습을 보게 된 마음이 그립고 뿌듯했다.
지인의 어머님은 손재주가 좋고 안목이며 스타일이 좋으신 분인데 나를 참 좋아하신다.
젊은 날부터 닦아오신 미용기술로 복지회관에 봉사활동도 다니시면서 가까운 동네 지인들

머리를 봐주시기도 하시는데 이번에는 우리 딸들이 신세를 지게 되었다.


마당 미용실2.jpg

 
태어나서 지금까지 머리카락 길이만 달라졌을 뿐 늘 긴 앞머리까지 한데 빗어 머리를 묶고 다니던
큰 딸은 얼마전부터 앞 머리를 자르고 싶어했다. 얼굴이 둥글어서 안 어울리지 않을까,
한 번 자르면 관리가 귀찮아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자르고 나니까 더 귀여운 얼굴이 되었다.
언니 모습을 보고 이룸이도 자르고 싶어해 자매가 한꺼번에 스타일을 바꾸었다. 이룸이도 아주 좋아했다.

딸들 다 자르고 났더니 남편에게 앉으라고 하셨다. 안그래도 머리를 다듬을 때가 되었는데
마누라 친구가 보는 앞에서 보자기를 둘러쓰고 앉는것이 못내 쑥스러운 남편은 한참 손사래를 치다가 계속 권하는 어른과 마누라의 등쌀에 못 이겨 의자에 앉았다.
잠깐 시간이 흐른 후에 남편은 말끔해진 모습으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고 필규도 불렀다.
남편보다 더 쑥스러움을 타는 아들은 미용실이 아닌 곳에서는 절대 자를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나도 별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머리 자르고 문화 상품권 받는거 어때?" 했더니 아들은 "콜, 대신 만원짜리요" 하며 벌떡 일어섰다. 안그래도 온라인 게임 스킨을 바꿔야 한다며 게임머니로 쓸 수 있는 문화상품권에 목을 매고 있던 아들이었다. 
         마당 미용실3.jpg      

 

세상에나, 게임을 좋아하는 건 알지만 문화상품권 소리에 제 머리까지 내 놓는 녀석이라니..
평소에는 이런 모습 남사스럽다며 펄쩍 뛰는 녀석이, 미용실 선택에도 까다로움을 피우는 녀석이
마당에서 엄마 친구며 동생들이 보는 앞에서 보자기를 자청해서 다 쓰다니..
허허.. 게임에 영혼까지 팔 녀석이로구만..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야,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 알았다면 5천원짜리로 시작해볼 것을..
"절대 안돼요. 만원짜리 아니면 안 받습니다"
"흥, 대신 책 한권 읽기도 포함이야. "

아들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내 벙글거리던 아들은 잠시 후 멋진 투 블럭 스타일을 휘날이며

내게 미소를 날리고 집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날 밤 내가 내민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라는 책을 밤새 다 읽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두 딸에 남편과 아들까지 머리를 깎게 된 것을 흐뭇해하고 있는데

나도 잠깐 앉으라는 것이다. 한 달 전에 머리를 짧게 잘라서 더 다듬을게 있나 싶은 마음으로 앉았는데 당신 보시기에 내 머리가 조금 촌스러워 보여서 늘 손 봐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앞 머리를 더 짧게 자르고 뒷 머리와 옆 머리도 조금씩 다듬겠다고 하셨다.

나는 기분 좋게 머리를 맡겼다.
수다를 떨어가며 머리 손질을 받고 나서 수고비를 챙겨 드리려고 했더니

만원만 받겠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그러면 다음에 또 부탁 못 드린다고 가지고 있던  2만3천원을 건넸다. 다섯 식구 모두 커트를 한 것에 비하면 정말 적은 금액이다.

               

지인과 어머님은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떠나셨다.
데크 위에는 다섯 식구에게서 나온 머리카락들이 수북했다.

남편이 빗자루로 쓸고 호스로 말끔하게 물 청소를 해 주었다.
거울이 없어서 내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배웅을 하고는 집에 들어와 전신 거울앞에서 서서

머리 모양을 확인한 나는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요, 언니, 우리가 뭐 두고 간거 있어요?"
"그게 아니고...... 완전 멋지잖아!!"
"네?"
"머리 모양 말이야, 완전 괜찮아. 별로 자를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스타일이 확 달라졌어, 완전 맘에 들어"
"내가 이 맛에 머리 잘라요. 호호호"
전화기 너머로 유쾌하게 웃는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그날 밤, 우리 세 여자는 서로 거울 앞에 서서 바뀐 머리 모양에 감탄하며 좋아서 어쩔줄 몰랐다.
딸들은 연신 가는 빗으로 앞머리를 빗어가며 구르프를 사달라는 둥, 내일 고데를 해 달라는 둥 신

나서 방방거렸다. 나도 새로 산 스마트폰으로 막내딸과 사진 한장 찍었다.
방학 내내 잘 먹어서 살이 통통 오른 막내는 앞머리를 자르고 한층 더 귀여운 개구장이가 되었다.

내 머리를 잘라주시는 동안 흰 머리가 눈에 띈다고 마음을 쓰셨던 어머님은 오늘 기어이 나를 불러
염색을 해 주셨다. 딸들도 함께 가서 앞머리와 옆 머리에 귀여운 브릿지를 넣었다.
머리색이 달라진 세 여자는 또 저녁 내내 거울 앞에서 신이 나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 이 사진은 염색하기전에 찍은 것이다 ^^)

건강에 안 좋을까봐 한 번도 염색을 하지 않았던 나는 생애 처음 염색을 하고 한결 가려진 흰머리 덕분에 5년은 젊어 보이게 되었다. 9월에 새 책이 나오면 강의도 다녀야 할텐데 여러모로 잘 된 일이라며 기뻐하고 있다. 

수영장이 되었다가, 캠핑장이 되었다가, 놀이터며 공연장이 되기도 하는 데크가 이번에는 미용실이 되었다. 작은 마을에서 같이 살아가는 이웃끼리 가진 재능을 나누고 공간을 나누고 일상을 나누어가며 한층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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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20 Mar 2019 18:20:59
<![CDATA[막내야.. 조금 천천히 커 줄래?]]>

 

"오늘 '물말끔터'로 체험학습 갔다왔지?"
"학교부터 걸어갔다면서?"
"그래도 날이 너무 좋아서, 이쁜 가을날 걷기가 좋았겠다."
"이쁜 가을날이 아니라 더운 여름날 같았거든요. 얼마나 뜨거웠다구요."
"낮에만 잠깐 그랬는데.... 그래도 친구들하고 얘기하며 걷는 일, 재미있지 않나?"
"올 때는 은형이랑 같이 걸으면서 수다 떨었는데 완전 재미있었어요."
"무슨 얘기가 그렇게 재밌었어?"
"우리가 좀 예쁘게 생겼잖아요. 컸을때도 예쁠거잖아요. 그래서 컸을때 남자 친구 생겨서 첫 데이트에 입고 갈 옷 스타일 얘기 했어요."(어머나... 벌써.....;;)
"너희들이야 지금이나 커서나 물론 이쁘겠지. 그래서 첫 데이트에 어떻게 입고 갈 건데?"
"우선 위에는요. 이렇게 생긴 흰 티셔츠 입고요, 그 위에 초록색이나 파란색, 원피스를 입을거예요."
"음... 그렇게 입으면 발랄하고 상큼하겠네. 머리 스타일도 생각해봤어?"
"머리는 똥머리를 하거나, 옆에만 살짝 땋거나, 아니면 그냥 늘어뜨릴까요?"
"어떻게 해도 이쁘겠지."
"그리고 입술엔 자연드림 립스틱으로 그라데이션 하구요, 틴트 같은 건 안할거예요.
블러셔는 살짝 하고 향수는 엄마가 쓰는 고체향수, 비누냄새 나는거요, 그거 살짝
바를래요."(그런것까지...;;;;)
"신발은 하얀 샌들.. 여름에 만나는 걸로 생각했거든요."
"원피스에 하얀 샌들.. 이쁘지. 가방은? 백도 중요해."
(나도 참 이런 것까지 물어보고 있네..ㅋㅋ)
"가방은 크로스백이요. 어깨에 메고요."

"그 가방엔 뭐가 들어있을까?"
"우선, 핸드폰하고.. 그때는 핸드폰이 생겼을 것 아니예요? 작은 지갑하고.. 이것 저것 많이 안 넣을거예요."
"지갑은 꼭 있어야지. 데이트에는 돈이 꼭 필요하니까...밥도 먹어야 하고..."

"밥은요, 남자친구 먹고 싶은 거 물어봐서..."
(어머나? 남자친구 먹고 싶은 거 보다 니가 먹고 싶은걸 먼저 생각해야지!!!!!!
얘가 이러다가 남자친구 위주로 배려하는 거 아냐? 
어머, 나 좀 봐. 왜 이러니....;;;;;;;)

"니가 먹고 싶은 것도 중요하지. 그런 거야 서로 얘기해서 의논하면 되는거고.."
"맞아요. 서로 먹고 싶은게 같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좋아하는 사람들은 취향이나 입맛도 비슷할 수 있어."
"엄마도 아빠랑 그랬어요?"
(아니!!!!!!!!!! )
"뭐.... 그랬지...그런데, 취향이 달라도 괜찮아. "
(너무 많이, 너무 심하게 다르지만 않다면 ;;;;;;;;)

키 크고 호리호리한 아홉 살 여자 아이 둘이서 이런 얘기를 주고 받으며
가을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멋진 남자친구랑 근사한 데이트를 하는 미래가 벌써 보이는 것도 같다.
이제 겨우 아홉살인데... ^^

막내야, 귀여운 막내야.
조금 천천히 커도 돼.
너는 언제나 너무 빨리 자라는 것만 같아서, 

오빠나 언니보다도 더 빨리 엄마 품에서 날아갈 것 같아서
가끔 가슴이 좀 뻐근해진단다.

내년에는 벌써 열 살이구나. 어리지 않구나.
벌써 이렇게 컸구나.
(가슴이 왜 이렇게 철렁한거니.. 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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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9 Mar 2019 20:19:29
<![CDATA[엄마! 이런 시어머니 되면 안돼요!!!]]>

 

인터넷에서 '며느라기'라는 웹툰을 찾아서 보라는 얘기를 오래전부터 들었다.
'민사린'이란 여자가 '무구영'이란 남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후 시가와의 관계속에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는데 연재 후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웹툰이다.
2017년 5월부터 올 해 1월까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연재되는 동안 리뷰와 댓글, 팔로워 수가
대단했단다.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기도 하고, 웹툰을 모니터로 보는 일이 불편하기도 해서 모처럼 생각난 김에
단행본을 주문했다. 나도 읽고 애들도 읽게 하자.. 는 생각이었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이다.... 
라고만 생각한다면 완전히 틀렸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을 둘러싼 무수한 인간관계를 내 삶으로
들이는 일이다. 나의 행복은 남편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남편의 가족과의 관계에 크게 좌우된다.
물론 남편에게도 내 가족과의 관계가 중요한 요인이 된다. 우리끼리만 행복할 수는 절대 없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 물론 그렇게 사는 부부도 있긴 하다만 쉬운 일 아니다)

결혼과 동시에 여자에게는 시가 식구를 바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친밀하고 따듯한
관계를 만들 것을,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할 것을 요구받는다. 어제까지 몰랐던 사람과
오늘 같이 사이좋게 부엌일을 하고 하하 호호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이런 요구가 남자에게는 그닥 강하게 요청되지 않는다)

주인공 '민사린'은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애 쓴다. 
그런데 민사린이 시가에서 받는 기대와 시가 식구들이 원하는 행동 방식대로 애쓰는 동안 
조금씩 마음에 균열이 생긴다.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관계들, 일 들 속에
남편의 모습도 차츰 낮설어진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명절 전날부터 시가에 가서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제사 음식을 만들어 손님을 치루고 간신히
집에 돌아온 며느리인데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전화해서 저녁 먹으러 오라고 한다.
애써서 저녁 따로 차리지 말고 해 놓은 음식 많으니 여기 와서 같이 먹자는 것이다.
곤해서 누운 아내에게 눈치없는 남편은 또 저녁 먹으러 본가에 가자고 한다.
그 저녁은 누가 차리고 누가 치울까. 내 집에서 간단하게 차려 먹는 것과 다시 어른들과 같이
식사할 저녁상을 차리고 물리고 치우는 일 중 어떤 일이 더 편하고 좋을까.
물어볼 것도 없다.

전 날 장보고, 며느리 일어나기 전 부터 일어나 먼저 음식 준비를 시작하고 종일 같이 일을 했던
시어머니는 저녁 만큼은 아들 내외와 외식을 하고 싶다고 한다. 손 하나 까딱 할 수 없을 만큼
고단한 그녀에게 완고한 남편은 냉장고에 넘치는 음식, 차리기만 하면 되는데 뭐 하러 돈 쓰러
나가냐고 타박한다. 
냉장고에 넘치는 음식은 누가 차리고 누가 치우나. 푸짐한 저녁상은 가만히 있으면 내 앞에
오나? 마음 상한 아내속도 모르고 남편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 "리모콘 좀 가져와" 한다.

시가에 안 간다는 아내를 두고 혼자 본가로 간 '무구영'을 본 여동생은, 그런 오빠를 보고
자기 남편도 다시 저녁 먹으러 시가에 가자고 할까봐 마음이 불편해진다.
딸 자식은 붙들면서 며느리가 일찍 친정에 가려는 것은 못마땅한 시어머니, 자기는 그렇게
안 하면서 직장 다니는 새 언니가 엄마 생신에 아침상을 차려주기를 바라는 시누이,
본인이야 말로 제 부모와 다정한 얘기도 나누지 않으면서 아내에게는 시어머니와 같이 
쇼핑하고, 찜질방 다니고, 수시로 어울리며 유쾌한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남편..
사위가 해외 출장가는 것은 안스러워서 보약을 해줘야겠다면서 며느리가 해외 출장 간다는 말에는
우리 아들 밥은 누가 해주냐며 눈을 똥그랗게 뜨는 시부모까지..
읽다보면 정말 고구마 백개의 답답함이 가슴을 누른다. 
내가 겪어 온 결혼 생활과 다르긴 하지만,  내가 겪어 온 감정들과 많이 겹쳤다. 읽다보면
모든 며느리들이 비슷한 감정이 들 것이다.
'며느라기'는 결혼생활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 가부장적 문화가 끼치는 폭력, 친밀함 속에 숨어 있는 
무례함 뿐 만 아니라 남, 녀 차별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 까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보면 모두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누구 하나 대놓고 나쁜 사람은 안 나온다.
그러나 모두가 누군가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한다.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나는 아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내 신혼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싶고, 결혼생활에서 내가 느꼈던 어려움도 나누고 싶고
 엄마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책 이라고 생각해서 건넸다.
장르를 불문하고 만화는 다 좋아하는 아들은 덥석 받아 내 앞에서 읽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휙휙 책장을 넘기는가 했는데 갑자기
"엄마, 엄마는 절대 이런 시어머니 되면 안되요!!" 하며 부릅뜬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다.

"....왜? 니 마누라 고생시킬까봐?"
"네!!!!" (1초라도 망설이다가 대답할것이지 아주 빛의 속도로 되받아 치는구나!!!)
"만약 이렇게 하신다면 저를 밟고 지나가셔야 할 거예요"
"뭐라고!!!!"
아들은 지금 당장 내가 지 마누라를 괴롭히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글이글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단호한 표정을 쏘아대고 있었다.

아이쿠야.. 이런 녀석 같으니...

엄마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해를 해달라고, 결혼 생활에서 여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좀 느껴보라고
책을 건넸더니 언제 데려올지 모르는 미래의 지 마누라를 먼저 생각하는구나.
아이고..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 겨우 열여섯살에 미래의 마누라를 걱정해??
이녀석 정말 나중에 아주 볼만하겠네...ㅜㅜ

"야!! 언제 결혼할지도 모르면서, 어떤 여자를 만날지도 모르면서 벌써 마누라를 챙기는건
너무하잖아. 우선 니 엄마가 겪어온 시절들을 좀 이해하려고 해야지"
"아무튼요, 이런 시어머니는 절대 안되요!!"

아들은 다 읽고 나더니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지만, '민사린'의 형님같은 사람은
(민사린의 형님은 맏며느리지만 시가의 제사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 오고,
시어머니의 생신상을 직장 다니는 동서가 차렸다는 말에 자식들은 다 뭐 하고 갓 결혼한
동서 혼자 그 힘든 일을 하게 했냐고, 무려 시어머니와 시이모님 등 시가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짚고 넘어가는 케릭터다. 첫 아이 출산 장면에 남편이 있어야 한다, 없어야
한다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시어른들 앞에서 그건 우리가 알아서 결정하겠노라고 딱 부러지게
얘기하는 며느리다)
자기 인생에 대해서는 당차고 멋진 사람이겠지만 전체 관계에서 보면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이란다.
자기야 제사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여겨서 안 올 수 있지만 그만큼 민사린이 고생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만화책 뒷 편에 부록처럼 붙어 있는 네티즌들의 댓글 퍼레이드를 읽더니
몹시 표정이 안 좋아졌다.

"댓글들 읽어보니 어때? 의견들이 다양하지?"
"이건 완전 꼴페미들 댓글인데요?"
"뭐? 꼴페미?"
"네. 다들 무구영만 잘못했다고 욕 하잖아요. 한남들 어쩌고 하면서요"

 댓글중에는 남편이 잘못이라는 글이 많았다. 이래서 한남들한테 시집가기 싫다고 하는 댓들도
있었다. 가부장에의 모순, 여자들에게 더 불합리한 결혼제도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이 만화에 공감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여자들이 많았으므로 당연히 댓글은 남자들에 대한 성토가
많았다. 그것이 필규를 자극한 모양이다.

" 남편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서 그래, 사실 결혼생활에서 아내와 시가 식구를 이어주는 게 남편이야.

남편이 중간에서 적절하게 선을 그어주고, 잘 설명해주고, 정리를 해야 아내들이 괜한 오해 안 받고 
결혼 생활이 덜 힘들어지는 거라구...
아빠도 그걸 잘 못해서 엄마가 신혼초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
"그래도 이렇게 혐오 표현으로 도배를 해 버리면 이 책 전체가 남혐을 조장하는 책으로 읽힐 수
있다구요. 이런 댓글을 실어놓은걸로 봐서 저는 이 책이 남자를 혐오하는 책으로 보이기를 의도
했던 거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어요"
아들은 격앙되어 있었다.

아이고... 이게 아닌데...

최근들어 아들은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노골적인 적개심을 종종 드러낸다.
스마트폰으로 어떤 기사와 댓글들을 보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아들의 입에서 나온 '꼴페미'라는
말은 나를 화 나게 했다. 어떤 의미로 여기고 있는지, 그런 말들이 왜 나오게 됬는]]> Tue, 19 Mar 2019 20:18:25 <![CDATA[남편 살, 질투는 나의 힘]]>  저는 베이비트리에 ‘나의 40대, 다이어트 말고 체력 키우기 라는 글을 썼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기자인 제가 <마녀 체력>이라는 책을 읽고 자극받아 ‘적어도 일주일에 3번 이상 40분 이상 걷자. 그리고 이 목표를 적어도 3개월 이상 해보자’라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독자들에게 ‘체력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이번에 저도 운동하는 습관을 길러보자는 다짐을 하게 된 거죠.  

 
지나온 세월 동안 제가 운동 꾸준히 해보려고 하면, 위기의 순간은 2개월때 왔습니다. 2개월 동안은 신이 나서 하는데 3개월째 접어들면 항상 어떤 계기로 운동을 그만두었죠. 그래서 저는 지난 6월 3개월 동안 지속한 뒤, 그 변화에 대해 적어보겠다고 했지요. 며칠 후면 9월26일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약속대로 적어봅니다. 

작은 성공을 거두고 싶었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나도 변화를 체험했다’라는 간증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저의 한계일까요?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제가 존경하는 사람은 운동이나 외국어 공부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매번 운동과 외국어 공부를 꾸준히 하고 싶은데, 그것이 참 어렵기만 하네요. 

이번에도 3개월째 접어들면서 폭염에 후두염에 업무 스트레스까지 가중되면서 운동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즐겁게 운동하던 제가 한순간에 무너지더니 ‘운동이고 뭐고 아이고 나 죽겠네’하고 나가떨어진 것이죠. 

처음 2개월 동안은 일주일에 세 번 40분 이상 땀나게 걸으니 몸도 가볍고 컨디션도 좋았습니다. 주말에 헬스 클럽에 가서 걸으며 그동안 못 본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침이 시작됐어요. 7~8월 폭염이 지속되면서 예전보다 에어컨 바람을 많이 쐬어서인지 기침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후두염이라고 했고, 약을 2주 동안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도 계속 기침이 한 달 내내 지속됐습니다. 덜컥 겁이 나서 엑스레이도 찍고 피검사도 했습니다. 의사는 특별히 몸에 문제없다며 휴식을 권장했습니다. 

쉬라는 의사의 말에 주말에 집에 가만히 누워있거나 잠을 자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어요. 어느새 운동은 삶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8월에는 운동을 4번 갔고, 9월도 두 번 갔네요. 헬스 클럽에 가지 못하다 최근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내지 못하면 일상에서 걷는 시간을 늘리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버스 정류장 두 코스 거리인데, 버스를 타지 않고 걷고요. 최근엔 점심 먹고 회사 근처 공원을 빠른 걸음으로 20분 정도 걸었습니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운동량은 여전히 부족하지요. 이렇게 저의 야심에 찬 도전은 처절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체력 키우겠다고 했지만, 저의 저질 체력을 확인한 셈이지요.

a7370428.jpg»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한 번 실패했다고 여기서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삶은 지속되고 체력은 키워야 하니까요. 작심삼일이라도 작심삼일을 백 번, 천 번 하면 된다는 말이 있지요.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제게 엄청난 자극을 주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제 남편입니다. 

남편은 키도 크고 건장한 체격입니다. 결혼 전에는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였지요. 저와 마찬가지로 남편 역시 결혼 뒤 조금씩 조금씩 살이 찌기 시작했고, 운동량도 줄었습니다. 그러더니 올해엔 체중이 결혼 전보다 12kg 늘었습니다. 서서히 몸에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혈압이 오르고 몸 이곳저곳이 아프게 된 거죠. 

6~7월 재미 붙여 운동 다니던 저를 본 남편이 8월 초 갑자기 다이어트 선언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혈압도 문제고 혈당 수치가 나빠지고. 누가 그러는데 5kg 정도만 빼면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거야. 무조건 살을 빼라는거지. 그래서 페이스북 보다가 ‘귀리 우유’광고가 나오길래 귀리 선식 주문했어. 이제부터는 아침 안 먹고 귀리 우유 한 잔 하고 걸을 거야.”

 

기뻤습니다. 야심한 밤에 편의점에서 도시락 사다 먹고 라면을 즐기던 남편의 건강이 걱정됐거든요. 잔소리해도 소용도 없었거든요. 본인이 직접 나서 다이어트를 하겠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지요.  

마침 그즈음 저도 <부모라면 그들처럼> <아이의 자존감>을 쓴 김민태 교육방송(EBS) 피디를 만났는데, 김 피디가 귀리을 먹은 뒤 체중 감량은 물론 건강 회복을 했다는 체험담을 들었습니다. 김 피디는 올해 초 나쁜(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져 약 복용을 시작했습니다. 혈압약처럼 한 번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어야 하는 약이었습니다.

 

“약을 먹으니 약간의 부작용이 생겼는데,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또 약을 먹는 것 아니다 싶은 거예요. 이런 식으로 계속 약을 먹겠다 싶어 안 되겠다 싶었죠. 그런데 한 유튜브 강연에서 체중 5kg만 빼면 웬만한 성인들은 콜레스테롤 문제에서 해방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이어트를 위해 귀리를 먹기 시작했는데 진짜 효과가 좋은 거예요. 한 달 만에 3kg 이 빠졌어요. 아침을 거의 안 먹었는데 지금은 귀리 우유를 먹어요. 점심은 제대로 먹고, 반 공기로 줄였어요. 저녁도 귀리 우유를 먹거나 간단히 먹어요. 가벼운 운동 주 2회 정도 하고요. 이렇게 해서 4개월 만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몸도 가볍고 너무 좋아요.” 

남편에게 김 피디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남편은 귀리 다이어트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갖게 됐죠. 남편은 아침에 귀리 우유를 먹고, 점심은 평소대로 먹고, 저녁은 반 공기로 줄였습니다. 자동차를 몰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 저녁을 먹은 뒤 하루에 30분 이상 걸었습니다. 아침마다 체중계에 올라가서 체중을 가족에게 공개를 했는데요. 세상에, 체중 감량 속도가 장난 아닌 겁니다. 현재 한 달 반 정도 지났는데, 6.5kg이나 빠졌습니다. 그 놀라운 속도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의 살이 빠지는 것이 기뻤습니다. “당신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라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응원해주었습니다. 남편은 눈에 보이게 바뀌는 체중계의 숫자를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꼈습니다.“아침에 일어나는데 훨씬 몸이 가볍다”고 했고요. “혈압도 정상 수치로 돌아왔어”라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제게 남편에 대한 질투심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스트레스로 파김치가 돼 운동도 내팽개쳐버린 저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고, 남편은 하는데 왜 나는 안되나 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어떤 일이 있어도 운동하러 나가는 남편을 보면서, 나도 스트레스 받는다고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녀 체력>의 저자도 남편이 마라톤과 자전거 타기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아 운동을 하게 됐듯, 저도 식이 요법과 운동으로 달라지는 남편의 변화를 보니 훨씬 자극이 되더라고요.

 

저의 운동 작심 삼 개월 실패했습니다. 마의 2개월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그냥 한 달만 꾸준히 해보자고 결심해봅니다. 목표를 낮춥니다. 작은 성공을 위해서요. 세부 목표도 조금 바꿉니다. 하루 1만보 걷기로요. 헬스 클럽에 가든 안가든 하루 1만보 정도 걸으면 달성하기 쉬울 것 같아요. 그리고 식이 요법도 같이 병행하려고 합니다. 아침을 사과와 선식으로 대체하고, 저녁 식사양도 줄이려고 합니다. 남편이 성공한 체중 감량과 가벼운 몸, 저도 한 번 이뤄보고 싶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아, 무작정 재도전! 이렇게 처절한 제 실패를 여러분에게 고백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게 되는 추석입니다. 자칫 아무 생각 없이 음식들을 입에 넣다보면 체중 감량은 커녕 체중이 늘 수 있는데요. 맛있는 음식 적당히 먹고, 쉬는 동안에도 산책도 하고 운동도 많이 하세요. 풍성하고 즐거운 추석 되세요. 한달 뒤 10월21일 목표를 꼭 달성하고 작은 성공의 기쁨을 함께 나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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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9 Mar 2019 20:17:07
<![CDATA[여보, 조금만 아파..]]>

 

태풍의 영향으로 금요일 밤 부터 많은 비가 내렸다. 
바람도 어찌나 거세게 불던지 나무들은 미친듯이 우우 거렸고 마당에서는 뭔가 날려가는
소리가 이따금 들려왔다. 왠지 심란해서 뒤척거리느라 늦잠을 자고 일어난 토요일..
거실에 나와보니 남편이 안 보였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는데 어디 나갔나? 했는데
뒷 마당에서 물길을 내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산과 이어져 있는 언덕에 있는 우리집은 큰 비만 오면 산에서 흘러 내리는 물로  주위가 온통

실개천이 된다. 그래서 물이 빠져나갈 수 있게 곳곳에 길을 내줘야 한다.

배수구에 낙옆이 쌓여있는지도 잘 살펴야 하는데 몇해 전 폭우가 내렸을때 막힌 배수구 때문에

집에 물이 차서 큰 낭패를 겪기도 했다. 큰 비 한 번 내릴때마다 집 안팎을 돌며 챙겨야 할 일들이 많다.

`아침부터 고생이 많네... '생각하며 바라보다가 남편 발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찬 비속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장화를 신어야지, 왜 맨발이야...  양말을 신고 있어도 실내 공기도 서늘하구만..
옷도 방수잠바 안 입고 저렇게 얇은 거 하나 걸쳤네.. 아이고, 참.....
추운데 물 속에서 그런 차림으로 일 하면 어떡해~"

나는 유리창 너머로 들리지도 않을 잔소리를 늘어 놓았다.
남편은 잠시 후 온 몸이 젖어서 들어오더니 바로 치과에 다녀오겠다며 차를 몰고 나가 버렸다.

잠시 후 늦은 아침을 차리고 있을때 남편이 돌아왔다.
"치료는 잘 받았어?" 물어보며  다가가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남편은 새파래진 입술로 온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추워.. 너무 추워..."
"어머, 여보, 왜 그래!" 나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바로 거실 바닥에 누웠다.
"추워.. 이불 좀... 두꺼운 이불 좀...."
이어서 으으으 하는 남편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남편의 큰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서둘러 이불을 내오면서 폴라폴리스 잠바와 수면양말을 꺼냈다.
제일 먼저 찬 면양말을 벗기고 수면양말을 신겨 주었다. 잠바도 입혀 주었다.
남편 손, 발이 너무 차가왔다.
"그러게 왜 비오는데 맨발로 철벅거리며 일을 해. 가만히 있어도 으슬으슬 추운데..."
속상해서 이런 소리를 늘어 놓으면서 남편을 누이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잠바에 털 조끼를 입히고 그 위에 이불을 덮어 주었는데도 남편은 계속 춥다면서 덜덜 떨었다.
보일러가 틀어져 있어도 미지근한 바닥으로는 도저히 안될것같아 내가 의자로 쓰는
온열매트위에 눕히고 온도를 올렸다. 찜질팩을 데워 배에 대어주고, 이불을 하나 더 덮어 주었다.
으으으.... 으으으.... 
남편은 온 집안에 울릴만큼 큰 신음소리를 내며 끙끙 앓았다.

아침부터 얇은 옷에 맨발로 빗속을 다니면서 일 하는 동안 자기 몸이 얼마나 차가워졌는지
잘 몰랐을 것이다. 제대로 갖춰 입고 나와서 일 할 생각도 못 하고 그냥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살피는 사이에 그 상태로 꽤 긴 시간을 찬 비속에서 일 했던 것이다. 한기라는게 그렇다.
어느새 스며들어 나중에는 뼛속까지 시려온다. 그 지경까지 가면 안되는데, 그 전에 체온에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남편은 그냥 무시하고 계속 일을 했고 마침내 온 몸에 퍼진 한기가
칫과 진료하는 중에 닥친 모양이다.
건강에 기본이 체온관리다. 요즘같이 일기 변화가 크고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는 무엇보다
체온관리가 중요하다. 그것을 무시하고 찬 곳에서 오래 일을 한 댓가로 남편은 마침내
온 몸이 얼음속에 갇힌 것처럼 한꺼번에 닥쳐온 한기로 쓰러져버린 것이다.
뭘 어떻게 해 줘도 춥기만 한 상태가 뭔지 안다. 겹겹이 입고 덮었는데도 도무지 추워서
견딜 수 없는 상태..나도 겪어 본 적 있다. 체력과 면역력이 바닥이 났을때 몸은 제일 먼저
추운 것으로 아우성을 낸다.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 처럼 다 아프고 지독하게 춥다.
뭘 어떻게 할 수 없이 추위와 고통에 무력해진다. 지금 남편이 그런 상태다.

일단 남편을 그 상태로 두고 생강청에 대추를 넉넉히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따뜻하게 끓인 물을 계속 먹였다. 그래도 남편의 몸은 좀처럼 데워지지 않았다.
뜨끈한 매트위에 이불을 두개나 덮고 누웠어도 손발은 여전히 얼음장 같았다. 곁에 앉아 손을 주물렀다.팔이며 다리를 열심히 주물렀다.  서둘러 다려낸 생강대추차를 마시게 하면서 계속 주물렀다.
남편은 아이처럼 요란하게 끙끙 거렸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추석이후 연휴가 이어지는 동안 남편은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손 봐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두 마리 개들 집을 올려 둘 데크를 짓느라 이틀을 마당에서
나무와 공구를 가지고 씨름을 했고, 3톤이나 되는 참나무 장작의 대부분을 남편이 날랐다.
마당에 여름내내 이곳저곳 쌓여있던 물건들을 치우고, 쌓아놓고, 예초기로 풀을 베고,
어긋나고 헐거워진 곳들 고치느라 고단했었다. 몸을 그렇게 혹사했으니 탈이 나는게 당연하다.
마음 놓고 아플 수 있는 시간이 남편에게는 꼭 필요했을 것이다.

수시로 남편에게 가서 몸을 만져보고 따끈한 물 계속 가져다가 먹이고 찜질팩 식으면 다시 데워 
몸에 대 주고, 이마를 짚어보고, 팔도 문질러주고, 다리도 주물러 주고, 얼굴도 쓸어주고, 그러면서
빨래를 해 널고, 집안을 정리하고, 애들 셋과 밥을 챙겨 먹었다.
조금 쉬려고 tv 앞에 앉으면 이내 남편이 부른다.
"응, 여보, 뭐 해줄까.. 물?"
물을 먹여주고 다시 소파에 앉았더니 바로 또 부른다.
"나 여기 있어. 뭐가 필요해?"
팔이 계속 저리단다. 한참 옆에 서서 팔을 주물렀다.
행주를 삶고 있어서 주방에 들어갔더니 다시 나를 찾는 남편 소리가 들린다.
"왜, 여보, 어디가 불편해?"
"... 그냥 옆에 좀 있어...."
"..... 하아.... 내가 당신 옆에만 있으면 밥은 저절로 되나.... 하하"
하면서도 그냥 옆에 앉았다. 남편은 저리다는 팔을 들어 내 허리에 두른다.
나는 엄마처럼 누이처럼 남편의 머리칼과 얼굴을 쓸어 주었다. 온 몸이 뜨끈하다.

그래... 응석 부리고 싶구나.
마냥 아프다고 떼쓰고, 자기만 봐 달라고 조르고, 그리고 그냥 한없는 보살핌과 손길을 
받고 싶구나.. 그래서 아프게 됬구]]> Mon, 18 Mar 2019 18:14:09 <![CDATA[어린이식당, 도쿄에서 서울까지]]>

 
 
 
혼자 밥먹는 아이, 저녁밥을 천천히 지어먹기 힘들어진 가정을 위해 
2013년 일본에서 시작된 시민운동인 어린이식당.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2016년 5월에 처음 시작해, 지금은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한달에 두번, 40여명의 동네 아이들과 젊은 엄마, 아빠, 그리고 혼자 사시는 노인분들이 
꾸준하게 우리 어린이식당을 이용하시고 있다.
 
처음 이 운동이 시작된 2013년에는 도쿄 지역에만 수십 개였던 식당이
우리 동네에서 시작된 2년 전만 해도 300, 400여개라고 하던 것이,
5년이 지난 올해는, 일본 전국에 2000여 곳이 넘는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아마,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식당 수까지 고려하면
실제 어린이식당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5년 사이, 그만큼 어린이식당의 필요성에 공감한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도 있고
누구나 만들기 쉽다는 점,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보조금이 
어린이식당의 확산을 활발하게 도운 것 같다.
 
 
어린이식당이 비교적 수월하게 운영되는 배경에는
지역의 다양한 개인과 기업, 단체로부터 식재료를 기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우리 동네 어린이식당에 직접 텃밭에서 기른 제철 채소를 가져다 주시는
주민분들의 모습이다.
 
무, 대파, 감자, 고구마, 시금치 ... 
시판되는 채소들과는 많이 다른 비주얼의 채소들이지만
자연에서 있는 그대로 키운 채소들을, 그날 바로 수확해서 아이들을 위한
반찬으로 만들 때마다 감사함, 뭉클함, 세상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어 행복하다.
이분들께, 가져다주신 채소로 만든 한끼 식사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다시 보내드리면 너무 기뻐하신다.
 
 
우리 식당이 문을 연 지, 1년 쯤 되었을 때
칠판 아트를 하시는 동네 분이, 손수 만드신 어린이식당의 간판을 
기부해 주신다는 연락이 왔다.
어머! 이건 찍어야 돼! 싶은, 귀여운 간판!!
 
한사람한사람의 힘과 재능이 보태어져,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어린이식당의 힘이 느껴진다.
 
 
올해는 큰아이가 수험생이라
내가 어린이식당을 쉬는 날이 많아졌다.
얼마전에 그만둔 직장을 아직 다닐 때에는, 저녁밥을 하기가 힘들어
우리도 어린이식당의 손님이 되어 먹으러 가기도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도 힘들 때는, 내가 얼른 가서 도시락 통에 밥을 사 오기도 한다.
 
아이들은 고등학생까지 무조건 100엔(약 1,000원)
어른은 300엔(약 3,000원)
 
네 식구의 한끼 식사가 다 합쳐도 8000원, 만원을 넘지 않는다.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은 이런 모습이었다.
새로운 돈을 버느라 모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허덕일 게 아니라,
이미 있는 재료, 버려질 위기에 있던 재료들과 사람들의 재능, 관심을 한곳에 모아
나눌 수 있는 세상.
처음엔 내 힘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문화가 정착되고 나면, 나도 자연스럽게 혜택을 누릴 때가 오고
우리 아이들도 그런 문화 안에서 자라나, 어른이 되면 또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는 그런 환경.
 
2년 전, 베이비트리를 비롯한 여러 곳에 일본의 어린이식당을 소개한 뒤
제일 처음, 한국의 제주에서 어린이식당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다음은 서울시 중구에서 중구청이 주도가 되어 어린이식당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한국 어딘가에서 어린이식당을 시작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었다.
 
어린이식당으로 잇는 아시아의 연대.
내가 한국사회에 어린이식당을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 차를 달리면
막 수확을 끝낸 논과 밭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생협과 어린이식당을 통해, 끈끈한 인연을 맺게 된 지인의 논에서
뜨끈한 국을 한솥 끓여,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후후 불며 나누어 먹었다.
 
복잡하고 생각할 게 너무 많은 세상과 육아 속에서 허덕이며 사는 우리지만,
그냥 가끔은 이렇게 함께 모여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 나누어 먹었으면 좋겠다.
 
좀 촌스러운 육아.
그런 게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도쿄에서 서울까지 이어지는 어린이식당 운동, 음식으로 잇는 아시아 육아의 연대,
그런 거창한 제목보다 내 생각에,
어린이식당은 그냥 좀 촌스러운 육아의 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동네 엄마들이 한 곳에 모여 아이들 밥 한끼 해 먹이는 것.
 
그렇게 촌스럽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육아가
아이들에게도 우리 어른들에게도 많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세상 모두가 좀 더 따뜻하고 행복해 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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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18 Mar 2019 18:13:12
<![CDATA[벵갈 고양이의 축복]]> 다엘이 의논할 일이 있다고 했다.
동네 미장원에서 유기묘 한 마리를 보호하고 있는데
자신이 데려와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아파트에서 반려동물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며
곧바로 반대하자 다엘의 설득이 시작됐다.
 
희귀종 고양이인데 자신이 키우지 않으면 또 버려질 거라면서
불쌍하지도 않냐는 거였다.
이미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미장원 주인은
다엘이 너무 좋아하니 ‘네가 키워보라’고 했단다.
다엘의 할머니는 이 말을 듣자마자
고양이라면 너무 싫고 자신의 천식증상 때문에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다엘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인터넷 검색을 하여 
알러지 예방법을 할머니께 읽어보시라고 들이밀었다. 
급기야 할머니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후 다엘의 눈물바람과 고양이 키우기에 대한 집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심지어 이모 집에 데려다 놓고 자신이 키우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이모네 역시 결사반대를 했다.
 
대체 어떤 고양이인지 궁금해서 미장원에 살짝 가봤다.
처음 본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귀엽고 작은 고양이를 상상했는데 
이 녀석은 커도 너무 크다!
게다가 털은 평생 본 적도 없는 어두컴컴한 빛깔에 저 눈빛은 또 뭔가.
노랑도 녹색도 아닌 눈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3.jpg» 다엘이 사랑에 빠진 고양이
 
이런 고양이를 키운다고? 절대 안돼.
마음 속에서 급박한 외침이 맴돌 무렵
다엘이 고양이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써서 보여주었다.
 
'벵갈고양이:
아프리카 밀림의 치타를 축소한 듯한 외모로 시선을 끈다.
근육질의 와일드한 외모로 남자 애묘인에게 인기가 더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적이지 않으나 확실한 마니아층을 가진 품종이며
호피 문양의 털에 일반 고양이보다 크기가 다소 크다.
잘 길들여지는 성격 때문에 
강아지처럼 장난감을 물어오게 하는 놀이도 가능하며
주인이 말을 시키면 대답을 하듯 소리를 낸다.
물을 좋아하고 훈련 여부에 따라 목줄을 맨 채 산책도 할 수 있다.'

오, 이런 반전이 있군!
고양이 종류 중 사람에게 가장 잘 길들여진다니
나도 점차 맘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고양이 말고도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로 인해
다엘의 마음 속 상처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졸업여행을 가면서 집 떠나는 불안만으로도 힘들었는데
자신이 아끼던 유아용 매트리스를 할머니가 내다 버린 걸
돌아와 발견하고는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이후 수학수업이 힘들다고 등교를 거부하거나
독후감 숙제 때문에 짜증내던 일,
6학년이 되면서 학업에 초점을 맞추는 학교 분위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쭉 지켜보며
나도 몹시 지쳐 있었다.
결국 벵갈 고양이에 꽂힌 아이의 마음에 
나는 깊이 감정이입을 하게 됐다.
 
고양이와 함께 할 수 있고
학업에 방점 찍지 않고, 몸 많이 놀리고,
경쟁하지 않는 학교는 없을까?
딱 한 곳이 떠올랐다.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이 변산에 세운 학교.
자급자족의 공동체 안에서 
학비도 없고 시험도 없이
매일 3시간 공부하고 3시간 놀고 3시간 일하며 성장하는 곳.
 
다엘의 분리불안을 생각하면
꿈도 꿀 수 없는 학교였지만
만일 고양이와 함께할 수 있다면?
초기에 내가 같이 있어주면서
서서히 다엘이 그곳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3년 전 오랜만에 윤구병 선생님을 만났을 때
다엘의 행복을 위해 변산으로 오라던 말씀에도
나로선 너무나 까마득한 일이었다.
 
그러나 벵갈 고양이가 가져온 일상의 혼란은
서서히 삶의 재편성 쪽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먼저 다음 주말에 3박 4일 일정으로 
변산공동체 체험을 하러 가기로 했다.
그곳에 전화하여 준비물이 무엇인지 문의하니
일할 때 입을 옷, 헌 운동화, 모자, 손전등,
칫솔, 수건만 있으면 된단다.
 
다엘의 학교 졸업생들이 
변산공동체학교에 가서 지냈던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식사로는 풀만 나오고 화장실은 푸세식이라고.
다엘에게 그런 상황도 괜찮겠냐고 물으니 
선배들이 한 가지 중요한 얘길 했단다.
그곳의 장점이 있는데 바로 자유롭다는 것.
 
그래, 가장 중요한 거네.
자유롭다는 것….
자연 속에서 뛰놀고 농사짓는 거, 네가 정말 좋아하잖아.

문제는 나다.
평생 나고 자란 도시를 뒤로 하고 시골생활을?
흠…가능할까? 

‘고양이의 저주’라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지금 상황은 반대라고 믿어본다.
벵갈 고양이의 축복이 이미 시작됐으니
어떤 결론을 내리든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교사 초임시절 모임에서 맺은 윤구병 선생님과의 인연이
부디 아름답게 이어지길 바란다.
]]>
Mon, 18 Mar 2019 18:12:19
<![CDATA[막내의 과소비]]> "엄마, 나 오늘 학교 끝나고 문방구 들려서 반지 하나 사도 되죠?"

" 반지? 얼만데?"
"한 5백원?"
"알았어. 니 용돈에서 사는거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아침에 헤어졌던 아홉살 막내를 방과후에 데리러 갔다.
배가 출출해서 단골 분식집에 들어가 앉았는데 딸의 손가락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반지 샀구나? 그런데 한개가 아니고 두개네?"
"네.. 엄마... 이쁘죠?"
"그게 하나에 5백원짜리야? 엄청 화려하네?"
"이거는 하나에 천오백원짜리예요."
" 천오백원? 그런데 두 개나 샀어?"
"사실은... 너무 이뻐서 두 개 샀어요. 은주랑 베프 커플링으로요. 그래서 은주도 반지 사주구요.
성지도 갖고 싶다고 해서 사줬어요"
"아니 무슨 돈으로 그 비싼 반지를 다 사줬을까? 오늘 문방구에서 뭐 뭐 산거야?"
"음... 반지 내꺼 두개, 은주, 성지꺼 하나씩, 그리고 인스랑 슬라임도 사고, 젤리도 사 먹고..
친구들 아이스크림도 사 주고..."
"뭐? 그렇게 많이? 그래서 도대체 얼마를 쓴 건데?"
"다 합치면... 만사천 오백원이요.."
"뭐라고? 만사천오백원??"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너무 놀래서 말이 안 나왔다. 
전날 집에 다녀가신 손님이 윤정이와 이룸이에게 용돈 만원씩을 주었다.

그 돈과 그동안 용돈 모은 저금통까지 홀딱 털어서 만4천 5백원을 들고 나와서 다 써 버린 것이다.
"세상에 이룸아. 엄마, 정말 놀랐어. 초등학교 2학년이 그렇게 큰 돈을 학교에 들고 와서 다 써버린
것도 놀랍지만 엄마에게 하나도 물어보지 않고, 허락도 받지 않고 네 맘대로 다 쓴 것도 놀랍고.."
이룸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돈을 다 쓰는 동안 엄마 생각 안 났어? 물어봐야겠다는 생각, 안 들었어?"
"엄마... 제가 잘못한 건 알겠는데요. 집에 가서 얘기하면 안될까요? 여긴 분식집이잖아요"
아이쿠, 이 똑똑한 녀석 같으니라고..
공공장소에서 야단맞는 것은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구나..
일단 분식집에서 얘기는 더 꺼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마음은 부글부글
끓었다.

열 여섯인 큰 아이도, 열 두살인 둘째도 물건 욕심은 많았지만 이룸이 나이에 이런 일은 없었다. 
돈을 쓸 때는 제 용돈이라도 꼭 허락을 받았고 문방구에서 이렇게 큰 돈을 한 번에 써 본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아홉살인 막내가 문방구에서 무려 만4천5백원이란 돈을 제 맘대로 한번에 다 
써버린것이다. 그 담대한 배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걸까.
내가 잘못 키웠나? 아이들 앞에서 소비를 함부로 했던가? 아이들에게 쉽게 돈 쓰는 모습 보여주지
않으려고 모바일이나 홈 쇼핑도 안 하는 사람인데 어린 아이가 돈 쓰는 것을 이렇게 쉽게 생각하다니
어디서 잘못된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집에 와서 윤정이까지 셋이 둘러 앉아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윤정이는 이룸이의 이야기를 듣더니 역시 입이 떡 벌어졌다.
"그 돈을 한번에 다 썼어? 와, 대단하다. 그래서 어제 그렇게 저금통을 털었구나?"
"윤정이는 이룸이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잘못했죠. 일단 돈을 쓰기 전에 엄마한테 허락을 받아야죠. 그리고 이룸이가 산 물건은
완전 조잡하고 쓸모도 없고 그냥 갖고 싶다고 다 산 거잖아요. "
"그래. 문방구에 가면 사고 싶은 물건 많지. 다 갖고 싶지.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안되잖아.
물건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사고 싶은 마음을 조절하지 못하면 항상 돈을 써야 하니까.
엄마, 아빠같은 어른도 돈을 번다고 다 사고 싶은 걸 사지는 않아. 만약 그러면 우린 정말
가난해 질 걸? 이룸이 행동에 엄마가 정말 충격 받았어. 그래서 계속 생각해봤어.
엄마, 아빠가  이룸이 앞에서 돈을 함부로 쓰는 모습을 보여준걸까, 기분 내키는 대로 쓰는
모습을 보여준적이 있었나..."
"아니예요. 그냥 저 혼자 제 맘대로 쓴 거예요. 정말 죄송해요"
"그 돈 다 쓰는 동안 엄마 생각은 안 났어?"
"처음엔 다 쓰려고 한게 아닌데 하나 두개 사다보니까 돈이 안 남았더라구요"
"돈이란게 그래. 계획없이 쓰다보면 가지고 있는 걸 다 쓰게 돼. 그러니까 계획을 세워야지.."
이룸이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울먹거렸다. 
"그리고 친구들한테 물건을 사주는 일도 좋지 않아. 선물은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 하는 거야"
"친구들이 사달라고 해도요?"
"그래도 안돼. 너희같이 어린 아이들이 친구한테 물건을 사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옳지 않고
너도 그런 부탁을 친구한테 하면 안되고.."
"내가 반지 사줘서 다음에는 은주가 나한테 뭐 사주기로 했는데요.."
"그것봐. 누군가에게 물건을 사 주면 그 사람도 너에게 사 줘야 하는 숙제가 생기는거야.
그러면 계속 사주고, 받고, 또 사줘야 되잖아. 그런 일은 옳지않아. 은주한테는 물건 안 사줘도
된다고 내일 학교에 가서 얘기 해"
제가 사 준 만큼 친구에게 받은 생각을 하고 있던 이룸이는 몹시 실망하며 후회하는 눈치였다.
나는 이번 일은 좀 엄격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것 같아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룸, 이번 일은 정말 심각한 일이야. 돈을 쓰는 일은 제대로 잘 배워야 해. 그래서 이룸이는
한 달간 용돈을 안 줄꺼야. 엄마가 주는 벌이야. 그리고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서 반성문 쓰고.."
"엄마, 반성문은 정말 똑 부러지게 쓸 자신 있어요"
이룸이는 별안간 눈빛이 생생해져서 이렇게 외쳤다.
잘못한 일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다가 반성문은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 용기백배해진 것이다.
아이고... 이 녀석은 정말이지 내 예상을 늘 벗어나는구나....ㅜㅜ
이룸이는 반성문 멋지게 쓸 생각에 힘이 번쩍 나서 방으로 들어가더니 잠시후

정말 멋들어지게 쓴 반성문을 들고 나타났다.

 

이룸이의 과소비2.jpg

 

 

- 반성문 -
나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가서
은주와 성지에게 아이스크림, 인스, 반지, 슬라임, 젤리, 공포 카드, 과자를 사주었습니다.
내가 사장님에게 돈을 줄 땐 좀 이상한(?) 느낌 이었습니다. 아깝기도
또 후회되기도 신 나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돈이 아깝고
물건을 사서 신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동을 한 내가
실망스럽습니다. 엄마한테 거짓말 한 것도요.
그래서 정말 엄마, 아빠, 언니... 아니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정말로 죄송하단 말을 여러번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큰 돈을 2학년이 가지고 있고 그걸 허락없이
다 썼다는 점이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나 자신이 실망스럽습니다. 죄송합니다.
엄마의 따끔한 혼이 내 정신줄을 잡아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학교에 돈도 안 가지고 다니고
돈을 쓸때도 꼭 허락 받고 쓰고 내가
친구에게 사달라고 하거나, 친구가 나에게
사달라도 하는 것도 안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나 자신이 실망스럽습니다. -

엄마의 따끔한 혼이 내 정신줄을 잡아주었다니... 속으로 웃음이 푹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이 녀석... 아주 열중해서 신나게 반성문 쓰는 일에 빠져있었구나.
제 말대로 정말 똑 부러지게 써 왔네.
이렇게 영리한 녀석이라서 가끔은 정말 생각하지도 못하는 사고를 치기도 하니...ㅠㅠ

그리하여 깜찍한 아홉살 막내는 요즘 근신중이다.
일주일에 5백원씩 받던 용돈도 끊기고 자숙 하고 있는 중인데 내가 보기엔 별로 반성하지
않는 것 같다.
매일 엎드려서 뭔가 열심히 적고 있는데 다가가서 보니
'엄마한테 사 달라고 할 물건들' 목록이었다.
공부용 타이머에 파우치, 거울 달린 필통이며 무지 노트까지 목록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아아.. 이 아이는 정말....ㅜㅜ

이룸아, 이룸아, 말썽도 잘 부리고, 반성문도 잘 쓰고, 말은 더 똑부러지게 하는 막내야.
천천히 자라자, 조금만 천천히...
그리고 네 영리함을 조금 더 멋진 일에 써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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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 16 Mar 2019 22:02:40
<![CDATA[아들이라는 남자]]> 토요일은 기숙사에 있는 아들이 집에 오는 날..

정오가 지나면 아들한테 전화가 온다. 곧 전철역에 도착하니 데리러 나와 달란다.

30여분 기다리면 마을버스가 오지만 일주일치 빨래로 묵직한 배낭과 바이올린과 이런저런

물건들로 차 있는 보조가방까지 들고 오는데다 오후 2시에는 바이올린 레슨이 있어 시간도 빠듯해서

늘 차로 데리러 간다.

전철역 근처에 차를 대 놓고 역 입구만 바라본다.

전철이 도착했다. 사람들이 나온다. 작은 역, 작은 동네라 내리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밀려올리는 없다.

서둘러 역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뒤에 아들은 늘 그 속도대로 성큼성큼 걸어 온다.

검은 롱패딩에 검은 머플러에 검은 마스크를 낀 키 큰 아들은 사람들 속에서 금방 눈에 띈다.

내 차를 봤으면서, 운전석에서 저만 바라보고 있는 엄마를 알아챘으면서도 녀석.. 눈을 피한다.

훗.. 반가우면서 쑥스러운게지.

"어이, 반가워 아들"

"하이, 맘"

아들은 뒷좌석에 짐을 부려놓고 내 옆자리에 올라탄다.

윤기 나는 앞머리가 닭 벼슬처럼 솟아 있다.

바로 차를 돌렸다.

"자, 그럼 이제 초코파이를 사러 가 볼까?"

"오, 당근 그래야죠"

"집에 오는 날은 초코파이에 비빔라면이지?"

"그럼요!!"

"왠일로 머리를 감고 잤나봐? 아주 멋들어지게 뻗친걸 보니.."

"어제 새벽 2시에 머리 감고 잤어요"

"새벽 2시? 기숙사에서 마작이라도 하는거냐?"

"마작이라니요. 어제가 세미나 마지막 날이잖아요. 세미나 끝나고 기숙사 사람들끼리 뒷풀이 했다고요.

치킨 먹어가면서..."

"흠.. 치킨, 자주 먹는 걸? 거래처라도 있나봐?"

"허허.. 학교가 번화가에 있지않습니까. 치킨집은 널렸습니다"

"새벽까지 실컷 치킨을 먹었는데 초코파이는 생략해도 되겠구만"

"안되지요. 새벽까지 초코파이는 못 먹었다구요. 치킨하고 초코파이는 엄연히 다른겁니다.

둘 다 먹어줘야죠"

"2시까지 모임이 있었는데 모임 끝나고 그 시간에 머리를 감고 잤다고? 왠일이야?"

"매일 샤워하고 머리감기가 이번 주의 목표였거든요. 그래서 계획을 열심히 지킨거죠"

"호오.. 그러면 오늘도 머리감고 자는 거임?"

" 그 계획은 금요일까지만 입니다.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오늘은 쉬어야죠"

"나 참.. 집에만 오면 더러워지는구나..크크"

"책 사느라 돈, 많이 썼어요. 돈 좀 주세요"

"왠 책? "

"이 번 계절학교 주제가 '책'이거든요. 자기가 읽고 싶은 책 읽는거라구요.

그래서 안양 교보문고에 가서 책 한권 샀지요"

"학교에도, 집에도 책이 잔뜩 있는데 무슨 새 책을 샀어?"

"아르테미스'요"

"아르테미스? 평전이야?"

" '마션' 쓴 작가가 쓴 거예요"

"오호.. 재미있겠네? 그 책은 어떻게 알았는데?"

"인터넷 광고로요"

"흥.. 자본의 낚시질에 낚였구만"

" 좋은 책이라구요. 자본의 광고도 가끔은 이용해줘야죠"

"그래서, 그 책도 들고 왔어? 엄마도 읽어보자"

"아뇨? 아직 저도 안 읽었어요. 제가 산 책인데 제가 먼저 읽어야지요. 엄마는 기다리세요"

"쳇, 엄마 돈으로 사는 책이면서 주인 행세는..크크"

"방학하면 기숙사 사람들 우리 집에 오는거 다음주나 그 다음주예요."

"열 다섯명쯤 되나?"

"네 그쯤이요"

"언제든지 오라그래. 그 정도 쯤이야 뭐.."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가방 가득 빨래를 세탁 바구니에 쏟아놓고 바로 방에 들어가 쌓아둔 이불에

기대 누운 자세로 핸드폰 게임에 빠져든다.

"엄마.. 배 고파요. 비빔라면 빨리 주세요"

"알았어. 오이채 듬뿍 썰어 올려줄께"

"감사합니다"

아들이 잠시 게임에 빠져든 사이 나는 부지런히 비빔라면 두개를 끓여 채 썬 오이를 수북이 얹고

구운 돌김 열장을 썰어 아들을 불렀다.

아들은 핸드폰을 보며 오이채와 함께 비빈 라면을 바삭한 돌김에 싸서 연신 입에 넣는다.

"엄마.. 물 좀 주세요"

"야, 물은 셀프라고.."

"아잉. 엄마, 사랑해요"

"쳇.. 여기 있다 이놈아"

비빔면 두개에 김 열장에 귤 하나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아들은 초코파이를 우물거리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6일만에 누리는 아들의 행복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방문을 슬쩍 닫고 나온다.

집에 오면 바이올린 배우고, 밥 먹고, 씻고, 가끔 텔레비젼 보는 시간 외에 밤 열두시 전까지

핸드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아주 알뜰히 이용한다.

어쩌다 집안일 좀 같이 하자고 아들을 부르려면 닫힌 방문을 두드려서 열게 한 다음 이어폰을 뺀

아들 귀에 대고 소리질러야 마지못해 꿈지럭거리며 몸을 일으키긴 하지만 기분 내키면

피아노도 한참이나 치고, 요즘엔 그렇게 사정해도 들려주지 않던 바이올린 연습도 종종한다.

닫힌 방문 너머로 아들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오면 남편은 tv 소리도 줄이고

귀를 기울인다. 대견한 것이다.

그리고 자꾸 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려는 아들을 곁으로 부른다. 같이 tv좀 보자고, 난로 불 좀 쬐자고,

그냥 좀 안고 뒹굴자고, 얘기나 좀 하자고...

아들은 아빠의 사정에 선심쓰듯 옆에 앉아 잠깐 tv도 봐 주고, 아빠를 껴안고 뒹굴어주기도 하지만

이내

"이젠 제 방으로 가도 되죠?" 하곤 일어선다.

남편은 늘 아쉬워하지만 나는 남편을 말린다. 일주일만에 집에 와서 누리는 아들의 자유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알기 때문이다.

아들이 집에 있다.

집안 공기도 달라진다.

밥을 차리면 먼저 먹는 남편과 딸들과 달리 아들은 꼭 "엄마도 어서 오세요. 엄마가 드셔야 제가 먹지요"

한다. 이런 저런 일 좀 도와달라면 잘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밥상에서는 누구보다 엄마를 챙긴다.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열일곱살인 아들은 허물없게 안기엔 너무 크고 가끔은 바라보는 것도 눈부시고

내 옆에 있기만 해도 가슴이 꽉 차 오른다.

저렇게 늘씬하고 빛나는 사람이 내 속에서 나왔네.. 생각하면 부끄럽게도 눈물이 돌곤 한다.

내 곁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아들은 기숙사로 돌아갔다.

아들이 가고 나면 집안 공기가 다시 홀쭉해지는 것 같다.

가슴 한 쪽이 조금 여윈 기분..

엄마들은 늘 이런 기분을 가지고 멀리 있는 자식들을 기다리며 살게 되는 걸까.

오늘은 금요일..

내일은 다시 아들이 오는 날이다.

내가 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

아들은 죽을때까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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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5 Mar 2019 18:50:00
<![CDATA[엄마, 오늘은 제가 밥 사드릴께요]]> 목요일까지 휴가였던 남편이 드디어 출근을 한 금요일,

엿새간 이어졌던 연휴끝이라 밀린 일도 많고 지치기도 했다.

열일곱살 아들은 하루의 반나절을 잠으로 보내고 있으니 깨워도 소용없고

열세살 둘째도 라면 끓여 먹고 친구집에 놀러간다고 하니

방과후 프로그램을 들으러 학교에 간 막내와 둘이 맛난 밥도 사먹고

은행도 들리고 장도 보러 가면 좋을 것 같았다.

 

지치고 힘든데 든든하고 따뜻한 음식이 생각날때 잘 가는 곳이 있다.

친절하고 부지런한 사장님이 9년째 음식값을 올리지 않고 정성스럽게

대접해 주시는 해장국집이다.

이룸이는 뼈다귀 해장국을 나는 황태 해장국을 주문했다.

두 메뉴 다 5천원씩 이다.

 

"와, 엄마 역시 뜨끈하고 푸짐하고 맛있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시킨 황태해장국도 엄청 시원하고 맛있어"

늦잠에서 일어나 헐레벌떡 학교로 달려가느라 아침도 못 먹었던

이룸이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과일로 배를 채웠던 나도 뜨끈한 국물이

정말 반가왔다.

땀나게 먹으며 우린 다음주에 있을 이룸이 생일 파티 의논을 했다.

 

막내는 본래 1월 31일이 생일인데 그 전날 오빠 학교 사람들 열댓명이 와서 하룻밤을

자고 가는 바람에 생일파티가 미뤄진것을 다음주에 하기로 했기때문이다.

"언니 친구 네명 초대 했고, 네 친구는 다섯명이지?

먹고 싶은 음식은 뭐야?"

"목살간장구이요!!"

맞다. 돼지목살을 간장과 갈이 배를 넣어 재웠다가 굽는 요리를 이룸이는 아주 좋아한다.

인원이 많은데 퍽 손이 가는 음식을 하게 생겼다.

"알았어. 목살구이하고, 봄동겉절이도 하고 샐러드도 하고, 김밥을 할까?"

"... 엄마... 고마워요. 준비하시려면 힘드실텐데..."

"아니야, 이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생일선물이잖아"

"엄마........"

이룸이는 감동한 듯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엄마, 오늘 밥 값은 제가 낼께요. 세뱃돈 받은 것 중에서 만원은 밥값으로 쓸래요" 하는거다.

"아니야 무슨.. 괜찮아. 세뱃돈도 네가 받은건데 그럴 필요 없어"

"아니예요. 엄마가 이렇게 애써주시는데 제가 엄마한테 한 턱 내고 싶어요.

만원을 써도 7만원 저금할 수 있잖아요. 괜찮아요. 꼭 제가 사드리고 싶어요"

갑자기 밥 먹다가 가슴이 꼭 메일 뻔 했다.

"... 그래? 그럼 그럴까? 엄마가 이룸이한테 밥 한번 대접 받는 걸로 할까?

정말 고마워. 맛있게 잘 먹을께"

"아.. 정말 행복해요. 제가 엄마한테 밥도 사드릴 수 있어서요.

정말 잘한 일 같아요"

이룸이도 나도 마음이 행복으로 꽉 차서 맛있게 밥을 먹었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온 후부터 아이들의 생일이 돌아오면 좋아하는 친구들을 불러 밥을 해 먹였다.

그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었기도 하고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배불리 먹고 1층과 2층을 오가며 늦도록 신나게 놀곤 했다.

피자나 치킨을 시켜줄 수 도 있지만 그런 음식은 내가 안 좋아해서

늘 직접만든 고기요리와 나물 같은 것으로 상을 차렸다. 그런 생일을 기대하는

것도 어린날 한때라는 것을 알기에 힘들어도 열심을 냈는데

열살이 된 막내가 그런 내 수고를 알아주고, 고맙게 여기고, 제 용돈으로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하고 싶은 마음을 내 주다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언제 이렇게 속이 꽉 차게 자랐을까.. 고맙고 뿌듯해서 정말 귀한 선물을 내가 다 받은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고 이룸이는 사장님에게 쑥쓰러운 표정으로 만원짜리 한장을 내밀었다.

"허허. 니가 돈을 내니?"

"네, 세뱃돈 받은 돈으로 엄마한테 밥 한끼 사는 거래요" 내가 설명을 하자

"하이고, 기특해라, 세상에.."

사장님은 몇번이고 칭찬하시며 식당 입구 까지 나와서 이룸이를 배웅해주셨다.

식당을 나와서도, 7만원을 은행에 들러 통장에 저금하면서도 이룸이는 뿌듯해했다.

 

마흔에 셋째를 낳아 쉰이 되기까지 내 40대의 날들은 이 아이를 기르는 일에

모두 바쳐졌다. 이제 막내는 또래중에 월등하게 키도 크고 재능도 넘치는

멋진 아이로 자라났다.

뭐든지 잘 먹고, 늘 새롭고 재미난 일을 궁리하고, 제가 계획한 일들을 하느라

하루종일 집에서도 바쁜 건강하고 이쁜 막내딸에게 처음으로 밥을 얻어 먹었다.

지난 10년을 한번에 보상받고도 남을 잊지못할 선물이다.

 

잘 커준 딸도, 이만큼 키워낸 나도 다 대견하다.

지난 세월이 몽땅 다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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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5 Mar 2019 18:49:07
<![CDATA[모두가 선물을 받은 날]]> 초등학교 시절 어느 생일날 부모님이 친구들을 불러 생일상을 차려 주셨다.

쌍둥이 자매와 똑같은 옷을 입고 마루에 차려져 있던 생일상에 앉아서 웃고 있는

모습을 귀한 컬러 사진으로 남겨주셨는데 그 사진을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창으로 비쳐든 햇살속에서 나와 쌍둥이 언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곁에는 아래 여동생과 친구 몇명이 같이 웃고 있었다.

색 입힌 밀가루로 만들어 올린 장미꽃이 있던 데코레이션 케익 맛까지 선하다.

딸이 다섯이나 있어 늘 여유가 없던 살림이었는데 한 번쯤은 그런 생일에 대한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으셨던 것일까.

그 뿌듯하고 기뻤던 기분은 쉰이 된 지금에도 떠올리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1월 마지막 날에 지나간 막내의 생일 상을 2월에 또 한 번 차렸다.

오빠 학교 사람들이 집에 와서 놀던 날과 생일이 겹쳐 막내 친구들을 못 부른 것을,

다시 날을 잡아 모두 불렀다. 언니 친구네 명에 막내 친구 다섯..

어린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장을 보고 집안을 치우고 오랜 시간 불 앞에서 종종 거렸다.

봄동과 시금치를 무치고, 딸기를 씻고, 돼지목살을 양념해 굽고, 연어와 토마토를 넣은

샐러드를 만들고, 잡채를 했다.

이룸이는 종일 집안을 떠 다니며 음식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즐거워 하고, 기대하며 기다렸다.

친구들이 도착하고, 준비해 온 선물을 받고, 풀러보고 좋아하고, 이 방 저 방으로 다니며

왁자하게 노는 동안 거실에 상을 차렸다.

 

이룸 열살 생일2.jpg

 

좋아하는 언니들, 좋아하는 친구들을 축하를 받으며 이룸이는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열살, 열 세살아이들은 봄동 겉절이 맛도 알고, 시금치 나물도 잘 먹고, 고기는 너무 좋아하고,

밥도 거뜬 거뜬 비운다. 제가 먹을 밥 그릇 들고와 잘 먹었습니다 인사도 할 줄 알고

식탁의 빈 그릇들을 가지런히 걷을 줄도 안다. 모두 오래 만나오며 커 가는 모습을 다 지켜본 아이들이다.

 모두 다 대견하게 잘 컸다. 참 이쁘다.

밥을 그득히 먹고 아이들은 모두 2층으로 올라가 놀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동생들은 유치해서 같이 놀 수 없다고 편을 나누던 아이들이 올 해는 같이 어울려

퀴즈도 풀고 몸 놀이도 하는데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다들 1년 동안 훌쩍 자란 것이다.

어릴 때는 중간에 엄마 찾는 아이도 있고, 투닥거리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었는데

이젠 중간 중간 내려와 물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는 외에 나를 찾을 일도 없이 저희들끼리

너무나 재미나게 잘 논다. 덕분에 설거지도 싹 하고, 거실도 말끔히 치울 수 있었다.

어린 손님들은 너무나 재밌어서 밤이 깊어도 일어나기 싫어하다가 10시에 한 팀, 11시에 마지막 팀이

돌아갔다. 어찌나 재미나게 노는지 다음에는 하루 재워가며 놀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을 정도다.

이날 음식을 한참 준비할 때 이룸이가 작은 쪽지 편지 한장을 부엌에 살짝 놓고 가며 말했다.

"엄마, 이건 이따가 생일파티 다 끝나고 난 다음에 읽어야 해요. 그 때를 기준으로 쓴 거니까요"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편지인지 짐작이 갔다.

아침에 윤정이가 이룸이에게 생일 편지 준 것이 궁금해서 살짝 읽어보았더니

이런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룸 열살 생일5.jpg

 

- 이룸아 안뇽? 나 윤정언니야... 너무 늦은 것 같네..

ㅎㅎ 그래도 너의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며

적어본다. 와 ~ 니가 벌써 10살 이나 되다니....

드디어 한 자릿수에서 넘어갔구나. ㅋㅋ....

이제는 학교 생활도 달라질꺼야. 영어도 생기구

미술, 도덕.. 체육 등 다양한 과목이 생기겠지.

너 생일파티 끝나고 꼭!!!! 엄마한테 가서

꼬옥 안아드리며 " 엄마 올해도 최고의 생일 이었어요

엄마, 나 낳아서 고생하셨죠?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예요" 하고 하면서 너도 엄마께 편지를

한 통 드리는 건 어떠니? 한 번 해 봐 ^.^

아마 very 감동 받으실걸?

from 윤정언니 -

이 편지 읽고 울컥했다. 세상에나... 언제 이렇게 컸을까.

이제 겨우 열세살인데 어쩌면 이런 생각을 다 할만큼 의젓해졌을까.

가슴이 찌르르 해왔다.

 

이룸 열살 새일5.jpg

 

그리고 열어 본 이룸이의 편지..

- TO 엄마

엄마! 나 이룸이예요. 오늘 최고의 생일

파티였어요. 정말 정말 고맙고 사랑해요.

날 낳아줘서 고마워요!

맨날 맨날 하루도 빠짐없이 언니랑

싸우고 말썽 피워서 죄송해요.

앞으로는 말썽 안 피우고 안 싸울려고

더 노력할께요. 알겠죠?

나와 언니가 잘 크게 쭉 ~

지켜봐 주세요! 다른 곳에

있어도 서로의 마음속에 있으면 좋겠지요?

오늘은 정말 행복했어요. 수고하셨어요!

사랑해요! -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눈물을 훔쳤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아이들 생일은 내가 그 아이를 낳은 날인것을 알았다.

그리고나니 엄마가 생각났고, 하나도 아닌 쌍둥이를 낳느라 얼마나 애쓰셨을지 알아졌다.

내가 태어난 날은 엄마가 죽음의 문턱까지 닿는 고통을 견뎌가며 우리를 낳은 날인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어른이 되었다. 생일이 되면 엄마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드린다.

많이 힘드셨지요.. 낳아주셔서 고마와요.. 인사를 드린다.

이렇게 철 들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언젠가 내 생일날, 엄마에게 전화를 드리고 나서 아이들에게 생일날의 의미에 대해서

이런 얘기를 들려준 일이 있었다. 윤정이는 내 얘기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편지로 동생에게 전해준 열 세살 언니와, 언니의 편지를 읽고 바로 감사 편지를

준비해 내게 건네 중 열살 막내딸 모두 너무 고맙고 대견했다.

 

이룸 열살 생일3.jpg

 

이룸 열살 생일4.jpg

 

방학 중에 너무 너무 싸워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큰 소리가 나고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같은 방 쓰기 싫다고 울고 불고 하는 것이 힘들어서 마음이 고단했던 날 많았는데

그렇게 싸우면서도 둘은 서로를 깊이 아끼고, 많이 의지하고, 돕고 있다.

딸들의 편지에 그 모든 마음이 다 담겨 있었다.

늦은 밤, 집안을 정리하고 자러 들어가면서 두 딸들은 몇 번이나 너무 즐거웠다고,

고마왔다고,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입을 맞추어주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딸들이 잠 든 다음 나는 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생일잔치 이야기를 들려주며 두 딸의

편지를 보여 주었다. 남편은 말없이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애써서 아이들에게 생일 선물로 생일상을 차려 주었지만 정말 좋은 선물은

남편과 내가 받았다는 것을 안다.

건강하게 잘 커 주는 것이, 매일 투닥거리고 싸우면서도 생각과 궁리와 헤아림이

깊어지는 것이, 이젠 부모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우리의 힘을 북 돋아 주기도 할 만큼

자랐다는 것이 더 할 수 없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날의 선물을 욕심껏 마음 깊숙히 새겨 넣는다.

혹 자라는 날 어디쯤에 서로 몹시 맘 아프게 할 때도 있겠지만 너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그런 날엔 아이들이 내게 준 선물을 하나씩 다시 들여다보며

그 모습이 다가 아닌 것을 믿고 또 힘을 낼 수 있게 말이다.

고맙다 딸들..

하루를 산 만큼 커 가는 모습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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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5 Mar 2019 18:47:31
<![CDATA[딸 아이의 그 날]]>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간 딸이 나를 불렀다.

"엄마.... 잠깐만 와 주세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아... 드디어 그 날이 왔구나..

나는 생리대와 새 속옷을 챙겨 딸에게 건네 주었다.

잠시 후에 딸은 조금은 쑥쓰러운 듯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서 내 앞에 앉았다.

"윤정아... 기분이 어때?"

"... 잘 모르겠어요. 그냥... 좀 이상해요"

"그래.. 그럴꺼야"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한꺼번에 여러가지 감정이 밀려들어 잠시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정말 정말 다행이야.

엄마가 너를 도와줄 수 있을 때, 충분히 안전한 공간에서, 충분히 여유있을 때 시작해줘서..

엄마가 너를 낳고 난 후에 항상 이날을 생각해왔어. 딸을 키우는 모든 엄마들이 그럴꺼야.

딸 아이의 첫 생리란 모든 엄마에겐 정말 특별한 일이니까..

엄마는 네 나이때 생리에 대해 어떤 어른으로부터도 자세한 설명이나 안내를 받지 못했어.

그저 닥치면 안다... 그런 얘기만 들었지.

하지만 막상 닥쳤을땐 너무 당황했지. 어쩔줄 몰랐고.. 겪으면서도 잘 몰랐어.

그래서 힘들었어.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나를 잘 챙기기 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  엄마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어.

그래서 평생 생리를 하면서도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른채, 불편하고,

싫고, 귀찮은 일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도 엄청 많고..

그래서 내가 엄마가 되어 딸을 낳으면 그 딸에게는 나 같은 경험을 주지 말아야지..

좋은 안내자가 되어야지...

몸에서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잘 전달해줘야지.... 생각했지. "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지금까지 내가 써 왔던 생리에 대한 글 몇 편을 윤정이에게 보여 주었다.

한 살이 된 윤정이를 안고 이날을 생각하며 썼던 글과, 생리에 대해 내가 배우고 깨달았던 것을

적었던 글과, 30년 넘게 생리를 해 오고 있는 나 자신과 생리에 대해 세상이 여자들에게 덧입혀 온

편견들에 대해 썼던 글들을 윤정이는 말없이 읽으며 가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나도 그 앞에서 말없이 눈물을 닦았다.

"엄마가 하고 싶었던 얘기들이 뭔지 알겠어?"

"... 네.."윤정이는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윤정아..

태어날때부터 네 몸안에 자리잡고 있던 난자들이 이제 성숙해져서 활동을 시작한거야.

앞으로 적어도 30년 이상 난자들은 자궁 양쪽에 있는 난소로부터 번갈아가며 매달 한번씩 자궁으로

내려올꺼야. 몸은 아기를 만들 준비를 위해 자궁벽에 두터운 혈관벽을 만들어 난자를 품고

정자를 기다리지. 정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해 둔 자궁벽을 허물어서

몸 밖으로 보내.  그게 생리잖아. 우리가 한참전부터 얘기해왔던 내용들이지.

이제 윤정이는 언제든 엄마가 될 수 있는 몸이 되었어. 그만큼 자신을 더 잘 돌보고 잘 지켜야 할

책임도 생겼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몇 번 경험해 내면

한 달에 한번씩 네게 오는 이 일을 수월하게 잘 맞이하게 될꺼야.

물론 엄마가 늘 곁에서 도울꺼고...

생리를 시작했다는 것은 네가 네 나이에 맞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성장을 잘 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가는 내내 네 몸과 더 잘 지내고 더 잘 알아가야 하는 책임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해.

내 몸에 일어나는 일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보살피며 살아가는 가에 따라 여자의 몸과

마음은 정말 큰 영향을 받아. 네 몸과 더 친해지고 이해가 깊어지면 윤정이는 평생 스스로를 잘 돌보며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을꺼야.."

이런 얘기를 하면서도 우린 이따금 서로 눈물을 닦으며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무엇보다 고마워.

엄마가 이날을 생각하며 항상 염려했던 것은 윤정이의 첫 생리가 너무 난처한 상황이나 장소에서

시작될까봐..

체육을 하는 운동장에서나 혹은 어디를 가는 차 안에서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나, 중요한 행사를 앞둔 때나

뭐 그런때 시작되면 어쩌나 하는 거 였거든. 엄마가 도와줄 수 없을때, 충분히 네게 일어난 상황을 처리할 수

있는 여유가 없을때 시작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역시 윤정이는 엄마가 늘 기도해온 대로 정말 좋은 시간,

좋은 상황에서 시작해 준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몰라.

또 엄마가 나이 많은 엄마이기 때문에 혹 엄마의 생리가 완전히 끝난 후에 네 첫 생리가 올까봐 두려웠거든.

왜냐하면 엄마에게 폐경, 아니 요즘은 완경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완경이 오면 엄마 삶에서도 중요한

전환기이기 때문에 엄마 자신도 엄마의 몸을 새롭게 이해해야 하는 숙제를 시작할테고 그렇게 되면

첫 생리를 하는 너를 충분히 제대로 살펴주지 못할까봐 말야.

그런데 아직 엄마가 생리를 하고 있을때 윤정이가 첫 생리를

해 주어서 너무 고마워. 언제까지 일진 모르지만 엄마 나이가 이제 쉰이니까 그리 오래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너와 같은 경험을 나눌 시간이 생겼으니까 너무 고맙지"

윤정이는 다시 눈가에서 눈물을 닦았다.

마악 생리가 끝난 참이라 아직도 내 생리대가 담겨 있는 세면대에 딸 아이의 첫 생리혈이 묻은

속옷을 담그면서 열 세살과 쉰, 두 여자의 생이 이렇게 섞여 찬찬히 우러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밤 늦게 퇴근한 남편까지 온 가족이 모여 작은 케익을 놓고 윤정이의 첫 생리를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언니 몸에 찾아온 변화에 누구보다 흥분하고 관심이 컸던 이룸이는 아빠가 첫 생리를 축하하는 선물로

언니에게 천생리대를 넣을 수 있는 예쁜 파우치를 선물한 것이 서운해서 대성통곡을 했다.

남편은 초경이 오면 그때는 더 이쁜 파우치를 선물해주겠다며 울음이 끊이지 않는 막내를 달랬고

가족들은 이룸이의 소동에 한바탕 웃었다.

여동생의 초경에 대해 한 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필규는 노코맨트를 부르짖었다.

"전 할 말 없어요. 저는 겪어본 일이 아니잖아요"

"무슨 소리야. 너는 산울학교 다닐때 '아른 파티'라는 이름으로 했잖아. 아이와 어른의 중간이라고

그렇게 이름 붙였다는 것까지 엄마는 기억하는데? 초경을 한 친구와 앞 둔 친구, 몽정을 했거나

앞둔 친구들 모여서 선생님들이랑 촛불 켜 놓고, 엄마들이 편지도 써서 다 보내고 같이 읽고 너,

엄마 편지 들으며 울었다는 얘기도 들었다구! 선생님한테 선물도 받아 놓고는.."

"그때 윤정이는 나한테 한 마디도 안 해줬잖아요"

"그거야 너는 학교에서 했고 그때 윤정이는 어려서 몽정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렇지"

몹시도 뜸 들이던 필규는

"윤정아, 앞으로 30년, 아니 50년 동안 파이팅!" 한마디를 던지고는 빙글빙글 웃었다.

이룸이는 울어서 붉어진 눈으로

"나만 파우치 못 받아서 너무 속상해.. 언니는 성인으로 더 한발자국 갔구나..

아플것도 같고, 어떤 느낌인지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언제할까.. 걱정도 되고...

그렇지만 ..축하해" 속삭였다.

"아빠는... 남자들만 있는 집에서 자라서 사실 생리나 이런것에 대해 잘 몰랐어.

결혼하고 엄마한테 얘기를 많이 들어서 알게 되었어. 엄마가 너희들하고 이런 얘기 자주 나누는

것도 같이 들었고...

무엇보다 집에 엄마랑 같이 있을때 시작된 것이 참 고맙고 기뻐. 윤정이가 잘 자라준 것도 고맙고..

지금까지 참 건강했고, 잘 자라주었고, 언제나 고맙고 대견스럽고 그래"

윤정이는 울먹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아빠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했다.

"윤정아 ... 오늘 하루.. 어땠어""

".... 잘 모르겠어요. 그냥...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어색하기도 하고...."

"그래.. 엄마가 물어보니까 저랑 친한 친구들도 올 겨울에 한 두명씩 생리를 시작했더라.

이제 개학하면 더 많은 친구들이 같이 생리를 하게 될꺼야. 보건 선생님에게도 말씀 드리고

만약 학교에서 난처한 일이 생기면 제일먼저 달려가 도움을 청해.

혹 수업시간에 생리가 시작된 것 같으면 선생님에게 말해서 도움을 받고.."

"만약 남자 선생님이면요?"

"그래도 말씀 드려야지. 생리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당당했으면 좋겠어.

생리라는 말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네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게 당당하게 행동해"

"네.."

다같이 왁자하게 웃으며 촛불을 끄고 케익을 함께 먹었다.

밤 늦은 시간에 딸아이와 나의 천 생리대를 비벼서 빨고 삶았다.

다시 깨끗해진 생리대를 건조대에 널면서 늘 엎드려 자곤 하던 딸 아이가 반듯한 자세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꿈속에서도 조심하느라 긴장을 놓지 않고 잠이 든 모습에 애틋함이 밀려왔다.

하루 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구나. 마음이 고단했겠다.

괜찮아. 겪다보면 요령도 생길거야.

성장이란 계단은 한동안 완만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가팔라져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와지는구나.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겠지.. 같이 가보는거다.

네가 필요할때 엄마는 언제나 곁에 있을테니.. 걱정하지말고..

'처음'이란 언제나 참 중요하지.

그 '처음'을 잘 겪어내면 그 일이 주는 모든 경험들을 잘 겪어나갈거야.

네 첫 생리... 잘 겪어냈다. 고맙다.

네 삶의 봄이 새로이 왔구나.

엄마는 늦여름 어디쯤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작되는 봄도 무르익은 늦여름도 다 아름답다.

같이 가보자.

매일 새로운 계절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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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5 Mar 2019 18:46:19
<![CDATA[막내의 반장 도전 성공기]]>

 

개학과 더불어 3학년이 된 막내 이룸이는 킹, 짱, 왕 대박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며

3학년 생활이 너무 너무 기대된다고 좋아했었다.

막내의 담임은 큰 딸 3학년때 담임이었던 남자 선생님으로 한예종에서 연극을 전공하신,

아동 연극 전문가이다. 큰 딸도 3학년 시절을 선생님과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보냈는데

이번엔 이룸이 담임으로 만나게 되어 나 역시 기대가 크다.

"엄마, 나 반장 선거에 나가려고요. 후보로 등록했어요!"

개학하고 며칠 지나서 이룸이는 내게 이렇게 선언했다. 좋은 선생님과 시작하는 새로운 학년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더니 3학년때부터 뽑는 반장 선거에도 기꺼이 나가 반 대표로 활약해보고

싶은 마음으로까지 커진 것이다.

 

초등 2학년때 일반 학교를 나와 대안학교로 진학한 아들은 반장 선거를 경험할 기회도 없었거니와

무리를 대표해서 책임을 맡는 일 자체를 아주 아주 싫어하는 아이였다. 남 앞에 서서 무언가를

주장하고 발표하는 일은 더 싫어했다. 대안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수많은 발표와 공연 경험을

통해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권력은 악의 축'이란 말을 서슴없이 하는 녀석이다.

6학년이 된 둘째 윤정이는 늘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아이임에도 대표라던가 모임의

장같은 것에는 별 욕심이 없었다. 대표로 나서기 보다는 대표를 돕는 유능한 참모의 역할을 좋아했고,

잘했다. 아이마다 성향이란 이렇게 다르고 다양하다.

요즘에야 반장이라는 것이 성적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어떤 학교에선 반 아이들 절반이 후보로

나가 서너표를 받는 아이가 반장이 될 만큼 선거 자체에 대한 특별함도 사라졌지만 우리 학교는

학생 자치회 활동이 아주 활발하고 폭 넓어서 반대표가 되면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다양하다.

그래서 한 번쯤은 내 아이도 반대표가 되어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드디어 육아 16년 만에

막내가 그런 의지를 보인 것이다. 진심 반가왔다.

"저를 반대표로 뽑아준다면... 아니... 제가 반장이 된다면.. 어떤게 더 좋아요?"

이룸이는 아침을 먹을때마다 엄마와 언니에게 의견을 구했다.

후보로 등록을 하고 선거를 도와줄 친구 두 명도 구했으니 이제 후보로서 앞에 서서 자기를

소개하고 공약을 발표할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덕분에 나와 윤정이는 아침 밥상에서 이룸이의 연설을 코치해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특히 선거 참모로 뛰어 본 경험이 있는데다 수년간 학생 선거를 지켜본 윤정이의 지도가 남달랐다.

"한 번 들어보세요. 제가 반대표가 된다면 친구들을 잘 도와주겠습니다!"

"어떻게 도와줄건데?" 윤정이가 바로 질문을 했다.

"뭐라고?"

"도와준다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잖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줄건지 내용이 있어야지.

그런 내용까지 고민하고 준비해야 아이들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이룸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 음......예를 들어서..... ㄱ은 시력이 나빠서 계단을 잘 못내려 가요. 그래서 내가 그때마다

옆에서 책도 들어주고 손도 잡아줘요. 또 ㅎ은요, 이동 수업할때 교실을 잘 못찾아서요,

내가 같이 가주거든요. 그렇게 도와줄려구요.. 이렇게 하면 어때?"

"그럼 그런 내용을 담으면 되겠네"

"아, 알았다. 다시 해 볼께?

내가 반대표가 된다면 친구들을 잘 도와주는 대표가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 계단을 잘 못내려가는

친구가 있다면 옆에서 같이 내려가주고, 교실을 잘 못찾는 친구가 있다면 함께 찾아주겠습니다"

"공약을 할 때 무조건 내용을 줄줄 하지 말고, 첫째 무엇무엇을 하겠습니다. 둘째 무엇무엇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구분해서 발표하면 아이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윤정이가 다시 거들었다.

"알았어. 다시 해 볼께. 내가 반대표가 된다면 첫째..."

이룸이는 언니의 조언대로 다시 고쳐서 또박또박 발표했다.

"그리고 반대표가 되면 학생자치회의에 참석하잖아. 그 때 반 아이들이 했던 이야기를 대표회의에

가서 잘 전달해서 교장 선생님께도 전달이되고 잘 반영이 되게 하는일이 정말 중요해. 그러니까

그런 내용도 공약에 들어가면 좋지" 경험이 많은 윤정이가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후보자들끼 토론회도 한단말야. 반 아이들이 후보자들의 공약에 대해서 질문하기도 하고..

작년에 전교 회장 선거할때 어떤 후보에게 아이들이 만약 대표로 뽑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이렇게 질문 했어. 그 이전까지 있었던 선거를 제대로 떠올렸다면 '제가 뽑히지 않는다면 제 공약을

당선된 팀에게 전달하여 반영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라던가 최소한 당선된 팀을 잘 도와서 더 좋은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 뭐 이런 말이라도 해야되는데 안되면 어쩔수 없습니다라고 말 하니까 아이들이

그 팀은 안 뽑았다고.. 이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할건지도 생각해봐야지"

"오오"

"마지막에는 그러니까 기호 00번 저 최이룸을 꼭 뽑아주세요!! 하고 강조하고.."

"역시!!"

윤정이의 날카로운 조언에 이룸이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싸울때는 세상에서 제일 밉고 얄미운

언니였는데 새삼 언니가 자기보다 3년이나 먼저 선거를 경험하고 학교 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 후로 매일 아침 밥상에서 이룸이는 밥 먹다 말고 발표를 연습하느라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부족한 점을 엄마나 언니가 지적하면 짜증을 부리거나 속상해하기도 했지만 바로 새롭게 고쳐서

더 열심히 연습하곤 했다.

"엄마.. 후보가 모두 네명인데요, 남자 두명, 여자 두명이예요. 그런데 내가 떨어지면 어떻해요?"

"떨어질 수 도 있지. 정말 하고 싶으면 2학기에 다시 도전하면 되고.. 그런데 붙고 떨어지고를

떠나서 원하는 일에 도전하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준비해보고, 직접 부딛쳐 보는 것은 정말

엄청난 경험이야"

"그래도 꼭 반대표 되고 싶은데요.."

"그럼 선거를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지. 준비하는 동안은 잘 될꺼라고 믿으면서.."

그럴때마다 이룸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드디어 선거가 있던 화요일..

아침부터 이룸이는 조바심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 발표하다 까먹으면 어떻해요?"

"외운것을 달달달 되풀이하는 것 보다 말 하다 잊어버려도 다시 생각해내서 열심히 말 하는

것이 훨씬 멋있어. 열심히 연습해보고 중간에 잊어버리면 친구들 얼굴 보면서 잘 생각해봐.

연습한대로 하는 것보다 다르게 해도 좋고.."

"들어보세요. 중간에 틀려도 도와주지 말고요?"

이룸이는 나와 언니 앞에서 세 번이나 발표문을 연습해 보였다.

"조금더 천천히 하고 또박또박 말 하고.."

언니의 친절한 조언은 마지막 밥 상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래도 불안했던 이룸이는 손가락에 싸인펜으로 주요 공약 세가지의 가장 중요한 단어 세개를

적고 생각 안날때 보겠다면서 주먹을 꼭 쥔채로 집을 나섰다.

"엄마, 잘 하고 올께요!"

"그래.. 잘 될꺼야!!"

이룸이는 교문을 들어서면서 불끈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리고 오전 10시 반..

조용한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부지런히 책 작업을 하고 있을때 핸드폰이 울렸다.

학교 콜렉트콜 번호다.

10시 반이면 중간놀이 시간.. 선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숨을 훅 들이마시고 전화를 받았다.

"엄마.. 저 이룸인데요, 오늘 반장 선거를 했잖아요. 근데요"

반대표가 됬다]]> Thu, 14 Mar 2019 18:26:56 <![CDATA[[육아카툰79편] 엄마도 봄!]]> 한겨레베이비트리겨울방학엄마도봄.jpg]]> Thu, 14 Mar 2019 18:25:56 <![CDATA[라면, 라면... 또 라면인건가!!]]>

 

열 일곱 아들은 라면을 좋아한다. 특히 비빔라면을 좋아한다.

주말에 기숙사에서 돌아오면 제일먼저 비빔라면 부터 찾는다.

방학중에도 라면 사랑은 끝이 없어서 하루 한끼는 꼭 비빔라면을 먹어야 했다.

반 나절 넘게 자고 일어나서 라면부터 찾을 때는 속에서 천불이 나곤 한다.

그놈의 라면 라면... 정말 징그럽다.

3월 4일에 두 딸은 개학을 했지만 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는 개학이 4월 1일로 늦춰졌다.

개학일을 맞이해서 태극기라도 달고 싶었던 나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다.

두 딸 마저 없는 집안에서 다 큰 아들과 한 달을 더 지지고 볶아야 하다니..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들은 개학 기념으로 점심 모임에 나갔다가 2시가 훌쩍 넘어

돌아왔을때도 여전히 자고 있었다.

나가서 점심 잘 먹고 돌아왔는데 또 한 번 점심상을 차려야 하는 일의 귀찮음을 엄마들은 안다.

꾹 참고 깨워서 밥 한 공기 먹였더니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시작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단해서 잠시 누웠다가 딸들 픽업해 왔더니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개학날이라고 들떠서 6시부터 일어나 집안을 돌아다니던 막내 때문에 나까지 일찍 일어나

종종거렸던 하루였다.

잠시 눈 좀 붙였다가 여섯시쯤 일어나 저녁식사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필규가 주방으로 와서 서성거린다.

"라면, 먹을래요"

"무슨 소리야. 지금 저녁 준비할건데.."

"저녁으로 뭐 하실 건데요?"

"김밥 싸려고 재료 사왔어"

"김밥엔 라면이죠. 라면 먹고 김밥 먹으면 되겠네"

"아, 진짜... 기껏 저녁 준비할 시간에 라면을 먹겠다고 하면 어떻해. 안돼"

"저는 라면 먹어도 저녁밥 먹을 수 있다고요. "

"그럼 동생들은? 니가 라면 먹으면 동생들은 안 먹고 싶을까? 그럼 저녁밥은 누가 먹어?

힘들게 식사 준비 하는데 라면 먹겠다고 하면 준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힘 빠지는지 알아?"

"알았어요. 그럼 안 먹으면 되겠네요. 밥 안 먹을래요. 저는 제 방에서 초코파이나 먹죠 뭐!"

필규는 눈을 부라리다가 이렇게 소리 지르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툭 하면 라면을 먹겠다고 하는 통에 방학 내내 몇 번이나 속을 끓였다. 기껏 반찬 만들어 차려 놓은

밥상에서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식구들 잘 시간이 되면 나와서 라면을 끓이는데 그 시간엔

배가 출출한 동생들까지 라면 냄새에 먹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바람에 여러번 속이 뒤집어 졌는데

이렇게 눈치없이 또 식전에 라면이라니..

가뜩이나 개학으로 일상리듬을 다시 조이고 바꾸느라 몸이 고단했던 하루 동안의 스트레스가

아들의 도발로 터져 버렸다.

불려 놓은 저녁쌀을 압력솥에 앉혔는데 윤정이까지 비빔라면 먹고 싶다고 내게 묻는다.

남편도 저녁을 먹고 온다는 전화를 해 왔다. 내가 정말 밥은 왜 하나 싶었다.

빈정이 제대로 상해 버렸다.

"맘대로 해. 다들 라면 끓여서 알아서 먹어. 엄마는 저녁밥 안 해!" 소리를 지르고 주방을 나와 버렸다.

밥 하는게 무슨 소용이 있어, 다들 라면만 찾는데.. 밥 한끼 차리려면 얼마나 애써야 하는데 허구한 날 라면이나 찾고.. 아.. 정말 짜증나!!! 다들 라면만 먹고 살아!!!

생각할수록 열불이 나서 씩씩거리고 있는데 눈치만 보고 있던 윤정이가 비빔라면을 끓이기 시작한다.

윤정이는 그야말로 어쩌다가 라면을 먹는 아이인데 괜한 불똥이 튀었다. 그런 걸 알면서도 비빔라면에 넣을 오이 하나 제대로 못 썬다고 타박을 했다. 한 번 꼬인 마음이 좀처럼 풀리지가 않는다.

윤정이는 만화책을 보며 비빔라면을 맛있게 먹는데 어차피 김밥은 글렀지만 압력솥에서 익어가는

밥 냄새를 맡고 있자니 나라도 제대로 된 밥을 먹어야지... 생각이 들었다.

잔뜩 화가 난 마음으로 냉장고에서 시들어가는 시금치 한 봉지를 꺼냈다. 물로 씻어 뿌리를 다듬고

끓는 물에 데쳐서 찬 물에 헹구고 칼로 잘게 쪼개어 꼭 짠 후 양념을 넣어 무쳤다.

나물 하나 무치는 일도 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 힘든데 이렇게 차린 밥상보다 라면을 더 반기니....

지들 손으로 한 번이라도 다섯 식구 먹을 밥 한끼 차려 보라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 다음에 독립해서 맨날 라면만 먹어보라지. 갓 무친 나물 한 접시 있는 집밥이 얼마나 생각나는지..

고생을 안 해봐서 그래..

애쓰는 사람 마음 같은 거 신경도 안 쓰고 철딱서니 없이 그저 제가 먹고 싶은 것만 찾으니 원...

속으로 끝없는 잔소리가 이어졌다.

시금치 나물은 맛있게 무쳐졌다. 이룸이를 불러서 나물이랑 밥 먹자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어제 볶아놓은 애호박 나물에 시금치랑 김이랑 반찬을 차리다 보니 아들 생각이 났다.

저렇게 놔두면 또 한밤중에 기어 나와 라면 끓여 먹겠지.. 아... 증말...

방금 무친 시금치 나물에 밥 먹으면 참 좋겠는데...

아들 방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필규야, 문 열어봐"

"싫어요"

"문 좀 잠깐 열어봐"

"왜요!"

"얼굴 보고 할 말 있어. 잠깐만 열어봐"

아들은 마지못해 문을 열고 앉아서 나를 노려본다.

"엄마랑 밥 먹고 후식으로 비빔라면 먹자, 어때? 콜?"

노려보던 아들이 씨익 웃더니 내 손을 잡았다.

"에이, 단식 투쟁 하려고 했는데... 아니구나, 간식투쟁이구나"

녀석의 옆에는 초코파이 빈 봉지가 수북했다.

"단식은 개뿔. 아주 간식으로 배 채우고 있었구만"

아들은 큭큭 웃으며 방을 나왔다.

"계란 후라이 좀 해"

"아, 나 계란 못 깨는데?"

"그러니까 하라고. 계란도 못 깨면 어떻해"

아들은 툴툴 거리면서도 계란 세개를 깨서 후라이 했다.

나물에 김치에 김과 계란 후라이까지 저녁상이 푸짐해졌다.

 

라면 대첩2.jpg

 

일부러 꾹꾹 눌러 담은 잡곡밥을 아들은 푹푹 떠서 먹는다.

시금치 나물도 잘 먹고 왠일로 별로 안 좋아하는 애호박 나물도 여러번 집어 먹는다.

한바탕 성질 부린 것이 미안한게지.. 흥 녀석. 그래도 밥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풀린다.

녀석은 밥 먹으면서도 식탁아래로 내 발을 자꾸 건드리며 장난을 한다.

갑자기 알콩달콩 꿀이 떨어진다.

에구... 조금전까지 날이 섰던 마음이 흐믈흐믈 다 녹아버렸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건 알아가지고는.." 중얼거렸더니

"훗" 아들은 나를 향해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저녁을 그득하게 먹고 남편이 돌아온 밤 열시 무렵, 아들은 비빔면 두개를 끓여(정확히 말하면

막내를 시켜 끓이게 해서) 오이 하나를 썰어 넣고 김에 싸서 맛있게 먹었다.

왜 이 시간에 라면이냐고 묻는 남편에게 나는 아들과 벌였던 라면 대첩을 신명나게 읊어 주었다.

마지막 한 가락까지 알뜰하게 훑어 먹은 아들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이 비빔라면이요. 두 개를 먹으면 약간 모자라고, 세개를 끓이면 조금 남거든요.

하나 더 끓일까요?"

"안돼!!! " 나는 소리를 꽥 질렀다.

"아이... 조금 모자란데?" 아들은 빙글빙글 웃으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아주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하는 녀석이다.

이리하야 아들은 오늘도 비빔라면 두개를 맛있게 먹었다.

이런 실랑이를 한 달은 더 해야 개학이렸다. 하아...

반 나절은 잠으로 보내고, 라면을 너무 사랑하고, 밤 새 잠 안자고 만화책을 보는 열 일곱살 아들..

엄마랑 사이 좋게 좀 지내자. 3월은 아직 길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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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4 Mar 2019 18:25:05
<![CDATA[유관순을 만나다]]> 3.1절을 하루 앞두고 두 딸과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보러갔다.

이룸이가 보고 싶다고 해서 나선 길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지고 감정이 넘쳐서 (물론 나는 일생 이 상태로 살아왔다만..)

이런 영화를 보는 것이 너무 (마음이) 힘들까봐 망설여졌지만 조금씩 역사에 눈을 뜨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역사를 자꾸 거꾸로 돌리고 싶어하는 세력들보다 강해지기 위해서도

이런 영화는 꼭 봐야만 했다.

너무나 오랫동안 '상징'으로만 알아온 위인을 따스한 피 흐르는 인간으로 마주할 기회는 많지 않다.

유관순도 그렇다. 초등학교 교정에 동상으로 만난 인물, 그토록 긴 세월이 흘렀건만 여전히

내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도 동상으로 서 있는 인물을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는 일이 어디 쉬운가.

박제처럼, 화석처럼 굳어진 사물로 서 있는 인물에게도 여린 살과, 뜨거운 피와, 가슴 아픈 사연과

절절한 애통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느끼게 되면 달라진다. 그는 더 이상 '상징'이 아니다.

어디서건 마주칠 때마다 그의 얘기를 듣게 된다. 여전히 내게 살아있는 목소리가 된다.

영화 '항거'는 3.1 만세 운동의 과정과 전개, 혹은 만세 운동을 준비하던 사람들의 긴박한 준비와

활동을 보여주지 않는다. 만세운동이 지나가고 만세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들이던

암물한 시절, 고향 마을에서 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잡혀온 유관순이 서대문 형무소에 끌려오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흘러내린 머리, 고초를 당한 얼굴, 그리고 헐벗은 맨발로 끌려온 유관순이 형무소 담장에 서서

일본인 사진사 앞에 얼굴을 들고 사진을 찍히는 순간 카매라를 똑바로 응시하는 그 당당한 눈빛.

100년이 흐른 지금 봐도 소름이 돋을 만큼 형형한 그 눈빛을 배우 고아성은 유관순이 되어

우리에게 보여준다.

누울 공간조차 없는 좁은 공간에 수십명씩 몰아 넣은 감옥안에는 만삭의 임산부와 어린 소녀,

기생, 나이 든 여인들, 학생들이 함께 있었다. 사연은 다르지만 목청껏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끌려 온 사람들이다. 가만히 서 있으면 다리가 퉁퉁 부어서 좁은 감옥안을 하염없이 돌며 걷고

긴긴 밤 교대로 쪽잠을 자면서 하루에 한 번식 나오는 보리밥 한덩이도 툭 하면 끊기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서로 기대고 연대하며 고통의 시간들을 견디어 간다.

여자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교까지 세운 부친 아래에서 일찍부터 교육을 받아

이화학당까지 가게 된 유관순으로서는 처음으로 자신과 신분과 처지가 너무나 다른 수많은

여자들이 보여주는 용기와 연대에 눈을 뜨게 된다.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서 당연한 의무로서

독립을 외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과 달리 나라가 있던 시절에도 여자로서 살기는 고단하고

힘겨웠던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에게 만세를 외치는 일은 삶을 억누르는 모든 불의와

고통에 대항해서 제 목소리를 내는 일이기도 했다. 그들 속에서 유관순은 한없이 겸손해지고 한없이

강해 진다.

일본 헌병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은 죄수가 아니니 반성할 일이 없다며 끝내 끔찍한

고문을 견디어내면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난 1주년이 되는 날 감옥안에서 목청껏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여자 감옥에서 시작된 만세는 이윽고 서대문 형무소 전체에 퍼져나가고 감옥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자 서울 시내는 다시 한 번 뜨거운 만세 소리로 가득 찬다.

그러나 형무소 안에서 가장 악날한 반동으로 찍혀 지독한 구타와 고문을 당한 유관순은 출소를 하루

앞두고 차디찬 감옥에서 끝내 숨을 거둔다.

흑백의 화면으로도 유관순이 당했던 고통과 아픔이 너무나 생생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딸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비참하기 그지 없는 상황속에서도 같은 감옥안에서 지내는 그녀들의

연대와 의지가 너무나 뜨겁고 강해서 마음이 한없이 숙여지곤 했다.

고문과 폭력과 위협과 허기에도 지지 않는 그 마음이, 육체가 바스러져 갈망정 정신과 의지는

오롯하게 일본에 항거하는 유관순의 모습은 100년전 이 땅에 울려 퍼졌던 만세의 의미와

지금 내 삶의 자세를 진심으로 다시 돌아보게 했다.

영화가 끝난 후에 쉽게 일어날 수 가 없었다. 내가 고문을 당한 것 처럼 온 몸이 다 아팠다.

100년 전의 유관순을 우리에게 느끼게 해주고 보여준, 배우 고아성의 혼이 담긴 연기가

정말 고마왔다.

영화 보는 내내 내 옆에서 많이 울었던 이룸이는 영화가 끝났을때 붉어진 눈으로 나를 안았다.

"엄마.. 일본 경찰이 유관순 손톱을 대꼬챙이로 찌르는 장면은 너무 참혹해서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어요.."

"엄마도 그랬어. 만세를 불렀을때 유관순의 나이가 열일곱, 필규 오빠랑 같았어.

우리가 100년 전에 살았다면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같이 독립 만세를 외쳤을까?

무서워서 숨었을까?"

"나는 만세를 불렀을꺼예요"

"그래... 그래야지. 엄마도 그랬을꺼야. 그러니까 우리가 정말 잘 살아야겠어.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희생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될것 같애"

 
 
 

3월 1일자 한겨레 신문에는 유관순의 사진이 한 면에 걸쳐 실려 있었다.

100년 전, 낡은 사진속에서도 유관순의 눈빛은 너무나 생생하게 곧고 의연해서 마음이 절로 여며졌다.

소중하게 잘라서 벽에 붙였다.

'태극기', '애국', '나라', '조국'... 이런 말들 모두 정치판에서 너무 오염되고 닳고 닳아서 그 의미들을 제대로 새겨볼 마음이 나지도 않았는데 100년 전으로 거슬러가면 이 하나 하나가 얼마나 백성들의 마음 속에 애달프고, 그립고, 사무친 말들이었을지 알겠다. 소중한 말들을 그 의미 그대로 다시

우리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오늘을 사는 이 나라 사람으로서 내가 할 일을 잘 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100년 전 유관순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와서 이룸이는 하루 종일 몇 번이나 우렁찬 목소리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 크고 힘찬 만세 소리를 들으면서 깨달았다. 나는 반 백년을 사는 동안 한 번도 그토록 힘찬 목소리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러 본 일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학창시절 3.1절 행사에서 몇 번쯤 만세를 따라 부르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저 시늉만 하면서 지겨운

행사가 빨리 끝나기를 바랬을 뿐 이다.

마음에 느껴지면 온 존재를 기울여 그 마음이 되는 어린 딸이 있어 나도 태어나 처음으로 딸과 함께

목청껏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말과 소리는 참 신비해서 있는 힘을 다해 외쳐 부르는 것 만으로도

그 마음이 되게 한다.

 

유관순 이야기.jpg

 

이룸이는 벽에 붙여 놓은 유관순의 사진을 디지털 카매라로 찍어 확대해 가면서 스케치북에 그렸다.

그림속의 유관순도 눈빛이 생생했다. 아이의 마음을 꽉 채우는 감정은 연필 끝으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관순 이야기2.jpg
 

이제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벽에는 유관순의 모습과, 고아성이 살려낸 유관순 이야기의

포스터와 이룸이가 힘차게 써 놓은 대한독립만세 글씨가 더해졌다.

오며 가며 볼 때마다 다시 마음을 여미고 오늘을 잘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 영화를 모든 국민이 다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보고 모두의 마음에 유관순이 더 이상 동상이나 위인전 속의 박제된 인물이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살아있는 정신으로 새겨졌으면 좋겠다.

고문 장면이 끔찍하긴 하지만 초등 고학년 정도 부터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이다.

영화를 보기 전이나 본 후에 유관순이 생애와 3.1 운동에 대해서 더 많은 책을 찾아보고

함께 이야기해 본다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살아있는 역사 공부가 될 것이다.

역사를 잊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 가는 것

올바른 시민으로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것

역사를 아는 아이들로 키워 내는 것

지금 나, 그리고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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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4 Mar 2019 18:22:56
<![CDATA[한국에서 판매중인 의류, 한국식품 필요한분 수수료 한푼도 없음]]> 바이두케이 허락 없이 소개글을 올린점 사과드립니다. 불쾌하시다면 삭제 하셔도 좋습니다. ^^ 홈페이지 : www.buydok.com 이메일 문의 : webmaster@buydok.com 전화번호 : 070-4367-0111]]> Thu, 17 Nov 2016 01:00:07 <![CDATA[빠른 사춘기, 성조숙증 - 적절한 치료 시기 ]]>
빠른 사춘기, 성조숙증 이미지 1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부모 가운데 아이가 유독 성장이 빨라 ‘성조숙증’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성조숙증은 무엇이고,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전문가의 도움말을 들어보았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데리고 엄마 한 분이 조심스럽게 진료실을 찾았다. 등교 준비로 바쁜 아침, 엄마가 서둘러 딸아이 옷을 입혀주다가 가슴을 툭 하고 건드렸는데 아이가 아프다고 한 것이다. 살펴보니 벌써 가슴에 몽우리가 잡혀 허둥지둥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로 뼈 나이를 확인하니 실제 나이보다 높게 측정됐고, 혈액 검사에서도 사춘기를 시작하는 호르몬이 증가해 있어서 성조숙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성조숙증은 2차 성징이 또래보다 빠른 질환이다. 여자아이의 경우 만 8세 이전에 가슴에 멍울이 만져질 때, 남자아이의 경우 만 9세 이전에 고환이 커지거나 최근 1년에 7cm 이상 키가 급격히 자랐다면 성조숙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기타 증상으로는 질 분비물 증가, 머리 냄새가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

매년 늘어나는 성조숙증 환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성조숙증 진료 환자는 2006년 6,438명에서 2014년 72,246명으로 11배 나 증가했다. 아직까지 정확히 규명된 것은 없으나 성조숙증이 증가하는 원인으로 다양한 요인들이 꼽히고 있다. 비만, 환경호르몬, 유전적 요인 등이 바로 그것이다. 비만도가 높을수록 대체로 성조숙증 발병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균형 잡힌 식습관이 중요하며, 플라스틱 등 일회용기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과거 부모의 2차 성징이 또래보다 빨랐다면 자녀도 사춘기가 일찍 올 수 있다. 대부분 원인 질환 없이 발생하는 특발성인 경우가 많지만 일부 뇌종양, 난소 및 고환이나 부신의 질환 등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병원을 방문해 적절한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성조숙증은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10cm 전후로 덜 자랄 수도 있으며, 또래 친구들과 다른 신체적 발달로 심리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성조숙증 치료와 관련해 세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한다. 먼저, 성조숙증은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보통 4주 간격으로 성조숙증 치료 주사제(성선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 효능 약제)를 맞게 되는데, 2차 성징이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병원을 찾을 경우 초경은 늦출 수 있지만, 성장에 대한 치료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따라서 부모들이 평소 아이의 신체 변화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간혹 약제의 부작용에 대해 염려하는 경우가 있다. 이 치료는 실제로 인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과 구조가 같은 유전자 재조합 호르몬으로, 선택적으로 성선자극호르몬만 억제하기 때문에 사춘기 억제 이외의 다른 증상은 유발하지 않으며, 28일 이후에는 약이 체내에 남아 있지 않는다. 둘째, 성조숙증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꼭 병원을 방문해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아내분비 세부 전문의가 성조숙증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소아내분비 의료진들은 성장판 검사, 성선자극호르몬 방출 호르몬 자극 검사, 필요에 따라 뇌자기공명영상 검사와 난소나 자궁에 초음파 검사를 통해 성조숙증의 치료 여부도 신중히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인내심을 갖고 치료에 임하기를 당부한다. 성조숙증은 개인차에 따라 대개 2~3년 정도 치료를 받는다. 매달 병원을 방문하는 것도, 치료를 위해 주사를 맞는 일도 부모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꾸준히 제 날짜에 치료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전문의와 상의하에 목표 기간까지 제대로 치료를 끝마친 친구들은 성인 신장의 감소를 최소화해 실제 유전적으로 타고난 신장까지 크도록 하며, 또래와 비슷한 시기에 신체적·정신적 사춘기를 경험한다. 의료진, 부모 모두 성조숙증의 적절한 치료를 위해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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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25 Oct 2016 06:3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