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경험공유]]> <![CDATA[캐나다 한인포털 해피코리아 > 육아경험공유]]> 육아경험공유]]> 육아경험공유 http://happykorea.ca/comm 제공, All rights reserved.]]> Sun, 22 Sep 2019 19:46:07 Sun, 22 Sep 2019 19:46:07 <![CDATA[울 아이 인생을 바꿀 방학 준비하기]]> 방학이 되면 아이에게 뭔가 특별한  turning point가 되기를 기대하면서도 막상 무얼해야할지 막막하진 않나요?

거창한듯 그러나 소소한 그러면서도 아이가 열정적으로  바뀔수 있는 3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1.자녀가 꿈꾸는 대학을 방문하고 인증샷 찍어두기.

기대하는 효과는 자녀가 그 대학을 방문함으로써 좀더 구체적으로 꿈을 꿀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나중에 대학지원시 어릴 때 이 대학을 가고자 했다는 자료사진을 대학측에 제시하거나 언급함으로써 좀 더 학교측에 어필하는 효과도 있죠.

2.역할극 바꿔서 해보기 플러스 부모 직업 체험하기

오전,또는 오후 자녀와 편한 시간대에 엄마와 아이의 일과 역할을 바꿔서 해 보는건데요.어색하고 이걸 왜하나라 생각할수 있는데 서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줘요

3.계획표를 세우고 정말 꼭 한가지만이라도 성취할수있도록 도와주고 그 결과물을 통해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나 나도 할수있어라는 학습의욕을 갖도록 하기

….유튜브 드림맘(교육정보tv)

https://youtu.be/97PPcqiMH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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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8 Jul 2019 22:34:03
<![CDATA[ 아기 걸음마 신발 어떤게 좋은가요?]]> 이제 막 한두발 걷기시작했어요. 이때다 싶어서 한국서 미리 사두었던 이쁜 신발들을 신겼는데 ..신길때마다 울면서 벗겨달라하네요 

묵직하지 않고 가벼운 걸음마용 신발로 어떤게 좋을까요 추천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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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22 Mar 2019 17:23:02
<![CDATA[ 자꾸 기저귀가 새네요 ㅠㅠ]]> 안녕하세요~ 
아직 2주도 안된 신생아 육아중인 초보맘입니다
아가가 좀 작게 태어나서 프리미 쓰다가 뉴본으로 넘어왔는데요
자꾸 쉬가 새네요 옷이랑 속싸개를 하루에 두세번씩 갈게되서 
어후 매일매일 빨래가 한가득입니다
기저귀 안새는 꿀팁있을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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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22 Mar 2019 17:18:32
<![CDATA[미운 엄마]]>
 

"내일은 언니가 전화기 가져간다!"
"안돼, 내가 가져갈꺼야"
"니가 오늘 가져갔잖아. 그러니까 내일은 내 차례지"
"언니가 오늘 가져가도 된다고 했잖아. 그래서 가져간거지, 원래는 내일 가져가고 싶었다고"
"그러니까 오늘 가져갔잖아. 내일은 내가 가져가면 맞는거잖아"
"아니야. 나는 내일 가져가고 싶다고.. 내일이 원래 내 차례라고!"
"무슨 소리하는거야. 월요일에 누가 가져갔어, 언니가 가져갔지? 오늘은 니가 가져갔지.
그러니까 내일은 나라고"
"싫다고, 내가 가져갈꺼라고.. 원래 수요일은 내 차례였잖아. 언니가 화요일에 가져가라고
해서 들어준 것 뿐이지, 나는 내 차례에 가져갈꺼라고, 왜 언니 마음대로만 하는데!!!"
"니가 그렇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니까 너랑 말하기 싫은거야"
"언니가 말도 안되는 소리 하는거잖아"
"그럼 니가 언니를 설득시켜 보든지, 근거를 대라고, 근거를.."
"근거가 뭔데?"
"증거.. 니가 수요일에 전화기를 가져가라고 내가 말했다는 증거 말야"
"언니 말이 증거지. 내가 들은 언니 말"
"나는 그런 말 한적이 없다고"
"했다고.. 나는 분명 들었다고"
"내가 한 기억이 없는데 그게 무슨 증거야!"
"내 기억이 분명하니까 증거지. 전화기 가져갈꺼야"
"안돼. 내가 가져갈꺼야!!"

머리가 지끈거린다. 
남편이 출장 중인 집은 하루종일 내린 폭우로 무덥고 습한데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영화까지

잘 보고 나서 전화기 쓰는 것 때문에 두 딸들의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딸들이 번갈아 쓰는 전화기는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쓰시던 낡은 폴더폰이다.

돌아가시자마자 해지하는 것을 남편이 쓸쓸해 해서 그냥 저냥 한달에 만 얼마씩

요금을 물어가며 두었는데, 핸드폰이 없는 세 아이들이 급할 때 돌려가며 쓰곤 했다.
올 3월에 아들에게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에는 두 딸들이 방과후 프로그램이 있거나 다른 일정이
있을 때 하루씩 돌아가며 사용한다. 그런데 가끔 이 순서를 가지고 시비가 붙는다.
시비가 붙으면 둘 다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룸아, 하루씩 번갈아 쓰는거면 내일은 언니 순서가 맞는거 아냐?"
"아니라구요. 월요일에 언니가 분명히 수요일은 내가 써도 된다고 했다구요"
"난 그런 말 한적 없어!"
"거짓말하지마, 내가 들었다고"
"너나 거짓말 하지마!"

아아아.
시간은 밤 열시.. 만화영화 보느라 늦었으면 빨리 씻고 잘 준비 해야 하는데, 이 시간이면 나도 하루의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데다 집안일이며 두 아이들에서 놓여나 내가 좋아하는 책에 좀 빠져보는
시간인데, 이 시간마저 징글징글한 싸움에 시달려야 하다니...

"전화기가 없었으면 좋겠다, 정말..."
"저는요, 제 전화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각자 한 대씩 있으면 이런 일 없잖아요"

또 시작이다. 필규랑도 이랬지. 열 여섯 봄에 스마트폰이 생기기 전까지 수도 없는 이런 원망을
들었지. 이제 딸들이 한꺼번에 조르고 원망하는구나... 

"엄마는 너희들이 무슨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 몰라. 다만 하루씩 돌아가며 쓰고 있으니까
월요일에 윤정, 화요일에 이룸이가 썼으니까 수요일엔 다시 윤정이가 쓰는게 맞는 것 같애.
이룸이가 목요일에 가져가면 되잖아."
"엄마는 왜 내 말을 안 믿어요? 내 기억력도 안 믿구요?"
"엄마는 니가 무슨 말 했는지 몰라. 언니가 한 말도 모르고.. 듣지 못했으니까 그런 말로는
판단 못 해. 그냥 순서만 보는거야. 순서를 보면 언니 차례인게 분명하니까.."
"엄마는 언니 말만 믿어요?"
"그게 아니라, 언니 말은 앞 뒤가 다 맞잖아. 이상할 것도 없이 다 당연하고.. 너는 네가 한 말하고
기억을 믿으라는데 그 두가지는 보이지 않으니까 잘 모르겠어.  그냥 순서대로 하면 되잖아"
"저는 억울해요. 억울하다구요"

이룸이는펑펑 울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 언제나 엄마는 너를 억울하게 하는 사람이구나. 그저 조용한 밤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 인데
지긋지긋한 시비를 끝내게 하고 싶은데 그냥 좀 쉬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구나..

                

눈물에 얼룩진 눈으로 나타난 이룸이는 앙다문 입술을 하고 나를 노려보더니 편지 한장을 놓고 간다.

- 미운 엄마 
엄마는 언니 편만 들어요.
맨날 언니 말이 맞다고 
정확하다고 해요. 나이는 언니
가 더 많고 그래서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건
언니니까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난 엄마가
미워요. 엄마가 이 글을 보면
용서해 줄까요?
 - 이룸 - 

하아.. 이 아이는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순간도 글은 참 잘 쓰는구나.
피시시... 웃음과 함께 나를 꽉 채우던 짜증과 피곤이 빠져 나간다.

내가 웃고 있으니까 이룸이가 골난 표정으로 다가와 팔을 벌린다.
"이 편지 읽으니까 어때요?"
나는 부쩍 커진 막내딸을 꼭 끌어 안았다.
"너는 화가 나도 어쩌면 이렇게 글을 잘 쓰니. 글씨도 이쁘고...
정말 감탄하고 있는 중이야"
"칫. 내 마음이라고요"
"그래.. 니 마음이지. 너는 엄마가 언니 편 든다고 하고
언니는 맨날 엄마가 니 편 든다고 하고..
엄마는 어떻게 해도 너희 둘 다 한테 원망만 들어. 그래서 힘들어"
"안아 주세요"
"그래.. 안아주자. 너도 엄마 안아줘..
그래도 어떤 사람에게 밉다는 말을 쓰고 싶을 때는 백 번, 천 번쯤 생각해서 말 해.
그 사람의 어떤 행동이 밉다는 건 괜찮은데 그 사람이 밉다고 하면 그건 정말
정말 심하고 아픈 말이거든. 홧김에 한 건지. 정말 미운게 진심인지 듣는 사람은
잘 모를 수 있어. 그럼 크게 상처받지"
"홧김에 한 말이예요. 진심 아니구요"
"알지. 그래도 아픈건 아파. 엄마는 니가 안 밉거든. 아무리 밉게 해도 안 미워.
너는 그냥 이쁘니까... 힘들게 하고 화 나게 해도 힘 들게 해도 이쁜 내 딸 이니까.."
"엄마, 안 미워요. 미안해요"
"알아. 엄마도 미안해"

전화기는 윤정이 가방으로 들어갔고 두 딸들은 마침내 잠이 들었다.
딸들에게 자주 밉고, 나이 들어가는 엄마인 나는 막내가 쓴 편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 아이들은.. 참 이쁘구나.
아이라서 싸우고, 아이라서 몰라주고, 아이라서 우기고 고집을 부려보는건데 그런 것을
다 너그럽게 받아주기에는 내가 늘 지쳐있고 고단한 엄마인 모양이다. 기운 좋은 젊은 엄마라면
씩씩하게 받아줄텐데 그게 나는 힘들다. 

미운 엄마
미운 엄마..

영특한 아이가 홧김에 쓴 말인데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에 돌처럼 박히는 걸까.

아..
나이들어가나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조금씩 아파진다.
우습고, 기특하고, 귀여운 헤프닝인데

마음이 마음이

이상하다.

http://babytree.hani.co.kr/?mid=story&page=3&document_srl=3179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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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Mar 2019 19:47:44
<![CDATA[바다가 어린이집에 다닌다]]>

 

 

바다가 어린이집에 다닌다.

 

세 살다섯 살 때도 시도는 했었다.

세 살 때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우는 통에 일주일을 보내다가 그만두었고

다섯 살 때는 적응 기간 중에 한 아이가 엄마가 보고 싶다며 계속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바다도 그럴까봐 내가 포기했다.

 

다섯 살 때 그만 두면서 다시는 어린이집이라는 곳에

바다를 보낼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했다.

바다도 준비가 안 되었지만 나도 준비가 안 되어서였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나 이제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바다가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어리둥절하면서도

이제 정말 때가 되었나 싶어 남편과 의논하여

가까운 어린이집에 대기 신청을 했다.

어차피 기다려야할 테니 차분히 생각하자 했는데

맙소사바로 등원이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바다가 할 수 있을까?’

이젠 내가 바다를 보낼 수 있을까?’걱정하며 첫 날 등원을 했는데

바다는 가자마자 친구들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나에게 등을 보였고 나는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혼자 돌아왔다.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어린이집에 보내라고,

아이에게 기회를 줘야 되지 않겠냐고,

사회성을 배워야 한다고,

처음에는 힘들어도 다 적응해나간다고.

 

정말 힘들 때는 그래...’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계속 고개를 젓고 있었다.

무엇보다 바다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늘 나를 할머니께 맡겨두고

뭘 배우거나 일을 하러 나가셨다.

그 때마다 창 문 앞에 서서 엄마 빨리 돌아오라며 손을 흔들고

하루 종일 엄마 옷을 붙잡고 냄새를 맡으며 외롭고 슬픈 마음으로 엄마를 기다렸다.

 

그 어린 내가 어른이 되어 딸을 낳았는데

내 딸이 나를 기다리며 외로워하고 슬퍼하는 경험을 하게 둘 수가 없었다.

 

남편은 내가 바다를 어렸을 때의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나도 그런 것 같아서 떼어놓고 생각하려고 애써보았지만 잘 안 되었다.

그래서 천천히 하기로 했다.

바다와 보내는 충분한 시간을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의 상처가 회복이 되든 뭐든

이 시간이 나에게 그리고 바다에게 주어진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날 어린이 집에 다녀온 바다는

"엄마되게 되게 재미있어매일 매일 갈 거야." 라고 했고

둘째 날 바다는

"엄마이렇게 재미있는 곳일 줄 몰랐어대단해!" 라고 했다.

 

자유 의지로 어린이집을 즐기고 있는 바다를 보면서

남편은 당신이 지혜로웠다며 나를 칭찬했고

나는 남편에게 당신이 중심을 잡고 보내자고 해서 용기를 냈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 삼 일 째 되는 날부터 바다가

어린이집 안 갈래... 재미없어...” 라고 하며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등원을 안 하려고 늦게 일어나고

내 소원은 어린이집에 안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어린이집에 안 다니면 안 되냐고 계속 물어봤다.

심지어 하루는 신발을 벗고 몇 발자국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어린이집 정말 재미없어안 갈 거야!” 하고 소리치며 신발을 신고 뛰어 나가버렸다.

 

일주일 정도 대화를 해본 결과어린이 집이 재미가 없는 이유는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많아서 힘들고

자기랑 놀아주는 친구들이 많이 없고

퀴즈나 게임을 잘 몰라서 지는 것이 눈물이 날 정도로 싫은 것이었다.

 

보내지 말까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하나.

지금부터 꼭 이런 것들을 적응해내고 이겨내야 할 필요가 있나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와 떨어지는 것은 이제 바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도 다행히 바다와 떨어질 용기가 어느 정도 생겼고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좀 더 집중해서 빨리 낫기 위해서라도

바다를 보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요즘도 바다는 잠들기 전이나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갔다 와서는 어린이집에서 그린 그림이나 만든 것을 자랑하며 보여주고

어떤 칭찬을 받았는지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바쁘다.

더 씩씩하고 활발해진 몸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동네 아이들과어린이집 친구와 어울려 논다.

 

품 안의 자식을 내놓으며 가지게 된 여러 가지 감정들,

불안긴장걱정뿌듯함고마움만족감 같은 것이 계속 오르락내리락 하는 와중에

하루는 어린이집 옷을 입고 걸어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한 시기를 넘어왔구나...’

 

바다와 하루 종일 부비고 다투면서 보낸 5.

내일은 아무래도 바다와 나를 위해 어린이집 등원 한 달 기념 파티를 해야겠다.  

http://babytree.hani.co.kr/?mid=story&page=3&document_srl=31795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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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Mar 2019 19:47:05
<![CDATA[아이들의 로맨스]]> “알았어. 꼭 거기서 만나.”
뽀뇨는 유노에게 스카이방방에서 만나자고 대답했지만 몇 시인지 정하지 않았고 마침 유노의 아빠가 말레이시아에 가는 통에 만날 수가 없었다. 다음 한 주 내내 뽀뇨는 나를 괴롭혔고 나는 마지못해 연락한 유노 아빠에게서 다음 달에 만나자는 연락만 받은 것이다. 뽀뇨는 유노가 왜 좋았을까? 좋은 데는 이유가 없겠지만 난 궁금했다. 친구 중에는 뽀뇨가 한때 좋아하던 성구도 있고 이웃 견우도 있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또 한 달이 무심히 흘러 우린 서귀진성에 놀러갔다. 당연히 유노 아빠에게 “형, 오늘 유노 꼭 데려 와야 해요. 뽀뇨가 기다리니까”라고 이야기를 해두었다. 내게 그 한 달은 무심했지만 뽀뇨에겐 그 한 달이 참으로 길었을 것이다. 지난 달 서귀진성에서 만나고 한 주 동안 뽀뇨는 어린이집에서 같은 반 친구였던, 당시 존재감이 없었던 유노의 어린이집 시절 율동영상을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복해서 지겹게도 보았다. 그러니 얼마나 유노가 보고 싶었을까.
 
우리는 오전에 도착하여 숨겨둔 보물도 찾으며 놀았는데 유노는 오후가 되어서야 아빠와 나타났다. 유노가 올 줄 알고 나는 뽀뇨 옆에 의자를 대령해 둘이 한 달 만에 만나 데면데면 하지 않게 배려해주었다. 근데 기껏 한 달 만에 데려왔더니 둘이 눈치를 보며 따로따로 놀며 쉽게 친해지지 않았다. 그게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관심이 식은 건지 내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었다. 오후 4시가 끝날 무렵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 뽀뇨가 내게 마음을 내비쳤다.
 
“아빠, 나 유노집에 놀러가고 싶어.” 
 
참 신기한 게 평소에 ‘누구누구 남자 아이 하고 왜 같이 안 놀아’라고 물으면 ‘걘 남자잖아. 난 여자구’하며 선을 긋던 뽀뇨였다. 그런데 먼저 집으로 놀러가고 싶다니.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지난번에 유노가 ‘너 나 좋아하지?’라고 뽀뇨에게 물었대요. 그런데 뽀뇨가 ‘응’이라고 대답했대.  여자 마음을 그렇게 쉽게 보여주면 안 되는데.”
 
내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어린이집 같은 반이었던 뽀뇨와 유노 사이에 특별한 감정교환이 있었던 것 같다. 이번 달 만남에선 “우리 다음 주말에 스카이방방에서 만나”라고 애프터를 신청하지 않고 그냥 다음 달 서귀진성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이들의 로맨스를 돕는 아빠들이라니…, 뭐 그것도 나쁘지 않다. 우리는 일요일 오후의 평화로운 일상을 즐길 수 있으니. 뽀뇨의 로맨스로 마무리 하나 했는데 이번엔 갑자기 유현이가 끼어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아빠, 미카엘라.”
“미.카.엘.라?”
 
나는 그 이름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으나 유현이가 부른 그 이름이 워낙에 달콤하여 눈치를 채고 물어보았다. “유현이, 그 누나 좋아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누나 좋아하는 거 엄마에게 얘기해도 돼?” “응.” 나는 아내에게 얘기하고 반응을 살폈다. 아내는 놀란 눈치였다.
 
역시나 유현이에게 왜 미카엘라 누나를 좋아하는지 물었다. 뭐라 뭐라 또박또박 이야기를 했으나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미카엘라 이야기로 유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고 아내의 눈치를 살필 수 있으며 우리 가족의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된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http://babytree.hani.co.kr/?mid=story&page=3&document_srl=31795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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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Mar 2019 19:46:12
<![CDATA[속닥 속닥, 베겟머리 수다]]>

 

밤 11시 반..
두 딸은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양파장아찌 두 병을 완성하고 부엌을 정리하고 나왔다.
끈적한 몸을 씻고 나오니 남편은 침대에 누워 있다.
저녁 나절 내내 제습기를 틀어 놓았던 안방은 뽀송하지만 후덥지근했다.
나는 불을 끄고 남편 옆에 누워 남편을 안으며 내 다리를 남편의 허벅다리위에 올렸다.
"더워"
남편이 나를 밀어낸다.
"사랑의 힘으로도 극복이 안돼?"
나는 살짝 삐져서 몸을 빼 냈다.

" 오늘 아침에 내가 녹색 봉사였잖아. 길 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아침부터 햇빛이 어찌나 뜨거운지, 거기는 그늘 한 점 없잖아. 게다가 녹색 조끼가 방수소재인지 나일론인지 바람이 하나도 안 통하는거야. 등에서 불이 나는 것 같더라.  여름엔 망사나 그물 소재로 만들어 주던지, 조끼말고 모자같은 거로 제작해서 쓰게 하던지, 아무리 봉사라고 해도 땡볕 아래 꼬박 40분을 그냥 서 있으려니까 너무 너무 덥고 힘들더라. 나중에 9시에 봉사 끝나자 마자 조끼를 벗었는데 세상에.. 그거만 벗어도 어찌나 시원한지... 내가 정말 열 받아서 조끼 벗어들고 교장실에 쳐 들어가서 당장 시원한 소재로 바꿔 달라고 항의 할 참에 마침 학부모 부회장 우진 엄마가 지나가더라고...달려가서 막 따졌지. 그랬더니 녹색회는 경찰서 소관이라네. 교통 경찰 나와 있을때 따져야 했는데..하여간에 대의원회에서 꼭 건의해달라고 부탁하고 집에 왔는데 힘이 쪽 빠지더라고..

빨래하고, 널고, 정리하고.. 하다보니 12시 반 금방 되지. 윤정이 공개수업에 간담회가 있다고 일찍 
오라고 해서 부랴부랴 점심 먹고 달려갔지. 그 사이 이룸이 피아노 교실에 데려다주고 윤정이 반 공개 수업에 들어가서 같이 수업하고 3시 반까지 간담회 했는데, 보통 5학년 공개수업이나 간담회 하면 다른 학교들은 학부모들이 별로 안 오거든. 그런데 우리반은 열 일곱명이나 온 거야 학부모들이..선생님이 좋으니까, 애들이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니까 부모들 참여율도 좋아.

1학기 지낸 얘기 듣는데... 애들이 정말 좋은 교육을 받고 있더라고.
일단 선생님이 애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끝내주는거야. 
말 끝마다 반 애들을 자랑스러워 하시는게 느껴지니까 얼마나 좋아.
1학기 동안 다양한 시를 읽고 간단한 비평을 하는 활동을 했는데 수많은 시들 중에서 윤정이 반 
아이들이 가장 좋다고 꼽은 시가 실향민 할아버지가 금강산 관광을 가서 산 너머에 있는 자기 
고향땅을  바라보며 그곳에 갈 수 없는걸 슬퍼하는 그런 내용의 시 인거야.
애들이 이 시를 읽고 얘기하면서 막 울기도 하고 안타깝고 슬프다고 했대. 
그래서 내가 물었지. 그 시를 읽은 것이 남북정상회담 전이냐, 후냐고.. 그랬더니 정상회담 후래.
아하... 싶었지. 우리도 남북정상회담 끝나고 애들이랑 북한 얘기 엄청 했잖아. 그런 감성이 
정서가 이 아이들에게 아주 고스란한거야. 요즘 5학년인데 말야.

다음주에 연극 공연하는데 시나리오부터 소품까지 다 애들이 스스로 만들고 준비해서 올리는 연극이래. 처음엔 시나리오 쓰기 어려울것 같아서 선생님이 가방에 요즘 5학년을 상징하는 여러 물건들, 학원 문제집이나 스마트폰이나 만화책이나 교과서나 등등 그런 것을 넣고 가서 보여주며 애들의 고민을 들어보려고 했더니, 이 아이들이 고민이 별로 없는거야. 다들 너무 행복해서 딱히 힘들고 어려운 일들 이야기가 없더래. 사교육이나 학원같은데 많이 안 다니고 시달리는 일이 적으니까 고민도 별로 없어. 그래서 선생님이 그럼 이런 물건이 가방에 있는 아이는 어떤 고민이 있을까.. 이렇게 질문을 바꿔서 시나리오를 이끌어 내셨다고 하더라고..보통 5학년이면 공부 스트레스가 커지고 학원도 많이 다니는데 확실이 우리 학교 아이들은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고 편한가봐. 여전히 잘 놀고, 수업시간에도 엄청 시끄럽고 명랑하대. 

학교 닭장에서 냄새 난다고 없애기로 학생 자치회에서 결정된 것을 바꾸려고 아이들끼리 발표문 
적고 전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득 작전 펴고.. 이게 원래 계획된 게 아니라 우연히 드러난 사건을
아이들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하려고 애쓴거야. 애들이 얼마나 많이 배웠겠어. 정말 대단하지.
윤정이한테 선생님 참 좋다고 얘기했더니 자기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서 최고 좋은 선생님이래.
1초도 고민없이 바로 얘기 하더라고.. 그러니까 이룸이도 우리 선생님이 더 좋다고 막 우기고...
하하.. 얼마나 고마운지..

두 달 동안 교실에서 벌어진 경제 활동 프로젝트도 애들이 엄청 열심히 했나봐. '온세미로'라는 가상의 나라를 만들고 조폐공사에서 돈도 찍어내고, 세금도 걷고, 장사고 하고 그랬잖아. 직업을 두개, 세 개씩 가진 애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건물을 많이 가지고 건물 없는 애들한테 임대도
주고 그랬는데 임대료를 정할때도 돈 많이 벌수 있게 비싸게 안 하고, 빌리려는 애가 수입이 얼마인지, 세금은 얼마나 내고 있는지, 어느정도로 정해야 파산을 안 하는지 다 따져 가며 정하더래.

아직 어린 애들인데 생각들이 그 정도로 깊더래. 쉬는 시간에도 장사를 해야 하니까 애들이 딴 짓 할 틈이 없었대. 1학기 내내 아이들이 모둠끼리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쉬는 시간만 되면 조별 활동 하느라 싸우고 어쩌고 할 새고 없었다네. 애들이 정말 열심히 했대. 나중에 건의사항 말하라는데 건의할게 뭐가 있어. 애들이 이렇게 좋은 교육 받고 선생님이 사랑으로 최선을 다 하시는데... 그저 고맙다고 했지.7월 말에는 청양에 있는 청소년 수련관으로 1박 2일 여행간다고 애들이 너무 너무 들떠있어. 2학기에는 모둠별로 역사 유적 탐방이 있는데 학부모 한명이 도우미로 따라가지만
애들한테 어떤 말도 걸어선 안된대. 애들이 전철을 잘 못 타건, 엉뚱한 입구로 나오건 개입하면 안되고 그냥 같이 있어만 줘야 한대. 모든 것을 애들 스스로 부딪치며 해결하도록 말이야. 엄청 재미있겠더라. 전철 타고 샤갈전 전시회도 다녀오고, 음악회도 다녀올거래. 2학기에...애들이 정말 풍성한 배움을 하고 있구나.... 좋더라.

내가 이런 얘기를 종일 당신에게 하고 싶어서 꾹 참았다가 밤이나 되서 애들 잠 들고 당신 옆에 누워서 당신 살 비벼가며 이런 얘기 하는거지, 이런게 부부지 별거 있어? 애들 잘 큰다고, 오늘 학교에서 이런 이런 일 있었다고 남편 살 주물러가며 속닥속닥 하는 시간이 나는 제일 행복한데, 덥다니.... 참 할 말이 없네..."

남편은 어느새 슬그머니 내 옆으로 와서 나를 끌어안으며 내 발을 자기 다리 위로 끌어 올린다.

"내가 당신 살을 좋아하잖아.
문질문질 만지는 것도 좋아하고...
마누라니까 당신 뱃살 이뻐해주지..
아직 삼복도 아니고 밤엔 그닥 덥지도 않으니까 이렇게라도 하지,

더 더워지면 남편이고 뭐고
다 뜨겁고 귀찮아서 손도 안 댈걸?
그러니까 마누라 귀찮아하면 안돼..
이리와봐.."



http://babytree.hani.co.kr/?mid=story&page=3&document_srl=31796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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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Mar 2019 19:45:14
<![CDATA[나의 결혼기념일]]>

 

 

 

바다가 여섯 살하늘이가 네 살이 된 올 해 처음으로 결혼기념일을 챙겼다.

작년까지는 아이들이 어려서 정신이 없었는데 올 해는 아이들이 좀 컸으니

같이 케이크도 먹고 결혼식 동영상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결혼기념일이 되어 남편과 아이들이 케이크를 사와서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먹었다.

그리고 동영상을 보는데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고

남편은 얼굴이 벌게져서 부끄러워 못 보겠단다.

 

결혼식 동영상 속의 나는 신부 입장을 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고 있었고

남편의 손을 잡고 다시 남편과 춤을 추고 있었다.

 

내가 입은 드레스는 친구가 중고로 사서 본인 결혼식 때 입고 나에게 빌려준 드레스였고

내 머리 위 화관과 내 손에 들린 부케는 결혼식 날 이른 아침에

산책길에서 꺾어온 꽃과 들풀로 내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

 

화장은 친한 동생이 우리 집에 와서 해주었고 머리는 내가 드라이를 했다.

남편의 예복은 집 근처 아울렛 매장에서 산 정장과 나비 넥타이였고

남편과 내가 나누어 낀 반지는 보석같이 생긴 작은 유리알이 박힌

동네 문구점에서 구입한 몇 천 원짜리 은색 반지였다.

 

남편과 내가 만든 예식 순서지에는 우리가 개사한 노래 가사가 적혀있었고

그 노래를 하객들과 함께 불렀다.

신랑 입장 곡은 남편이 평소에 좋아하는 곡, ‘캐논이었으며

신부 입장 곡은 춤추기에 좋은 재즈 버전의 결혼행진곡이었다.

 

결혼식 중에 서로에게 주는 선물로 남편은 마음의 편지를 읊어주었고

나는 남편을 위해 만든 자작곡을 우쿨렐레 연주와 함께 들려주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향할 신혼여행지는 지금 살고 있는 제주도였고

배낭매고 실컷 걷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을 자자고 했다.

 

불편하고 무거운 것들을 최대한 다 빼고

남편과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산책하고 명상하면서

마음의 길을 따라가면서 준비한 결혼식이었다.

 

이렇게 과감하게 우리 식대로 결혼식을 준비하고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내가 같이 읽은 책의 도움이 컸는데

로버트 풀검의 <제 장례식에 놀러 오실래요?> 라는 책이.

거기에 소개 된 결혼반지의 이야기를 보고 우리도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문구점에서 반지를 구입했다.

 

한편 결혼식 동영상을 보면서 떠오른 또 하나의 기억은 아쉬움이었다.

결혼을 준비할 당시 나는 대전에 있었고 가족들은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결혼 준비에 몰입하느라 시간을 내어 서울에 가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예식 후에는 가족들이 서울로 돌아가야 해서 몇 시간 머물지 못하셨기 때문에

결국 내 결혼식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들과 충분히 나누지 못했다.

 

결혼식 전이나 후에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며

여유 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왜 내가 직접 만든 화관을 쓰고 부케를 들려고 하는지

내가 왜 춤을 추며 입장을 하려고 하는지

반지는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살 것이고

화장과 머리는 어떻게 할 것이고 내가 입을 드레스는 어떤 것인지

대체 왜 이런 결혼식을 하고 싶은 건지

가족들에게 시시콜콜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말이다.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와 이모는 뭐 그런 결혼식이 다 있냐며 한참 웃으셨을 것 같고

아버지는 너답다고 하셨을 것 같고

오빠는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반지는 제대로 맞춰야 되지 않겠냐고 했을 것 같다.

너무 심한 반대가 있었다면 좀 곤란했을 수도 있겠지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든 좋았을 것이다.

 

나는 나중에 바다와 하늘이가 결혼을 한다면

그녀들의 결혼식에 대해 실컷 이야기 나누며 함께 하고 싶다.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축하한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고 아쉬운 이야기도 있는 이 날의 풍경을

아이들과 함께 보며 웃을 수 있어서 좋았고 다시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년에도 다 같이 맛있는 것을 먹고 결혼식 동영상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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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20 Mar 2019 18:27:37
<![CDATA[거절의 품격]]> 최근 두 차례의 거절을 경험했다. 

한번은 상대 쪽에서, 또 한번은 내 쪽에서 거절의사를 전했다.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시 돌아보았다.
교사 시절엔 접하지 못했던 사람 관계에 대해 
요즘 부쩍 많이 배운다.

 

첫 번째 거절은 잡지사의 지면 개편으로
내가 쓰던 칼럼을 중단하게 됐다는 통보였다.
이를 전하는 담당 기자의 메일이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오히려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1년 넘게 글을 쓸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생각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마무리와 헤어짐의 품격에 대해 생각했다.

 

같은 시기에 한 출판사의 책 출판 요청에 대해
내 쪽에서 거절(?)의 메일을 쓰게 되었다.
그 출판사는 과거 몇 차례 내게 월간지의 원고 청탁을 하면서
믿음직한 편집 능력을 보여 주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단행본 발행을 하자는 권유를 받은 뒤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갑을’관계가 된 느낌?
출판사의 기획 방향과
내가 쓸 수 있는 내용에 차이가 있을 듯하여
이를 명료하게 정리해야 발행의 가부간 결정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내가 먼저 거절의 메일을 썼지만
알아서 물러나주길 바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았다고나 할까?

 

요즘 같은 불황기에 새로운 저자를 발굴하여 단행본을 낸다는 것이 
출판사 쪽의 큰 모험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명확한 의사 전달 과정이 부족했던 점은 크게 아쉬웠다.

 

관계 맺음을 시작하거나 끝낼 때
비록 공적인 일로 만나더라도 
사람 자체로 귀하게 여기는 일, 
스쳐 지나가는 관계에도 예의를 다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껏 나도 칼럼을 위해 취재 차 사람들을 만나곤 했는데
한 순간도 만남을 가벼이 여긴 적은 없다.
내가 쓴 칼럼과 함께 감사 메시지를 취재원께 보냈을 때
정성껏 응답하는 이와 무응답인 경우가 있었기에
이후 인연이 이어진 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다.

 

책과선물1.jpg» 취재 차 만났던 분이 보내온 책과 선물

 

나는 다엘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만남을 가질 때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귀하게 여기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거절을 주고 받아야 할 때도
품격 있는 태도를 유지하길 또한 바란다.

 

어느 날 다엘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띠고 뭔가를 쓰고 있길래
들여다봤더니 내가 웰다잉 강의 때 사용하는 노트에 
자신의 얘기를 써넣고 있었다.
다엘이 채운 빈칸의 내용은 이랬다.

 

“나는 아버지 (모르돌), 어머니 (모르녀) 사이에서
(모르)남, (모르)녀의 (모르)째 아들로 태어났다.”

 

다엘소원노트.jpg» 다엘이 쓴 웰다잉 노트의 기록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인 삶의 시작을,
해맑게 웃으며 쓸 수 있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봤다.
한편으론 다엘의 글이 특별하지 않음을 느낀다.
누구나 부모가 전하는 자신의 출생 스토리를 믿지만
확신을 갖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미지의 존재임을 인정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니까.

 

청년이 된 다엘이 혈연을 찾고자 결심했을 때
상대 쪽에서 거절의 메시지가 오더라도 
너무 충격 받지 않기를 바란다.
만남이 성사된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이유는 비교적 명확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혼외출산이란 
부당하고도 가혹하게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일이고 
때로는 삶 전체가 위협 받을 수도 있기에
만남에 대해 거절의 가능성이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과거 내가 잘 몰랐던 시절,
눈 앞에서 거절하는 법을 알지 못해
상대에게 오히려 더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어떤 상황에서 만나고 헤어지든 
모든 사람의 본질적 가치를 늘 가슴에 담고 있어야 
이런 우를 범하지 않는다는 걸 살아오면서 배웠다.

 

인터넷상에서 읽은 한 남자의 고민이 기억 난다.
배려심 많고 착한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참 좋은 사람이지만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아 고민이라고,
그러나 차마 헤어지자는 말을 못해 계속 시간을 끌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한 어느 네티즌의 명답은 이러했다.

 

빨리 그녀를 놓아주라고. 
여자는 자신이 사랑 받지 못하는 걸 이미 안다고.
당신에게는 별로인 그녀가 
다른 누군가에게 ‘송혜교’로 보일 수도 있다고.

 

거절의 품격을 아는 것은 인간관계의 기본을 아는 일이다.
나도 다엘도 이를 가슴에 새기고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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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20 Mar 2019 18:26:38
<![CDATA[싸워도 괜찮아]]> 주말 저녁, 더위를 참아가며 저녁상을 차리고 있는데 딸들 방에서 큰 소리가 난다.

이내 이룸이가 펑펑 울며 거실로 나왔다.
울어가며 언니가 때리고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둘이 또 싸운 것이다. 흔하고 흔한 어느날처럼..
남편이 큰 소리로 윤정이를 불렀다.
더운 집에서 툭하면 싸우는 두 딸들 때문에 지긋지긋해 하는 남편이었다.
"도대체 왜 그래?" 윤정이를 보자마자 빽 소리를 치는 아빠 앞에서 윤정이가 억울한 얼굴로

눈물을 글썽인다. 파란색 보조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이 가방이요, 이룸이랑 둘이서 같이 쓰는 건데요. 같이 쓰는 가방은요, 자기가 쓰고 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집에 오자마자 속에 있는 물건을 다 꺼내서 비워줘야 되잖아요.그래야 다른 사람도 쓸 꺼 아니예요. 그런데 이룸이는 그냥 던져둔다구요. 내가 쓸라고 하니까 이룸이 물건이 꽉 차 있는 거예요. 그래서 비우라고 했어요. 그런데 사람 말을 무시하잖아요. 내가 한 번 더 내가 쓸거니까 비워달라 했어요. 그런데도 안 비우는거예요. 그래서 화가 나서 내가 바닥에 쏟아 버렸어요"
"언니가 내 물건 막 쏟고 나를 때렸다구요"
"어제부터 비우라고 말 했는데 안 하잖아요"
"어제 말 안 했잖아"
"했어!!"
"이 가방 없애 버려!" 남편이 소리를 쳤다.
"이 가방 때문에 싸운거니까 이 가방 쓰지말고 없애버리라고!"

에고... 또 저러네.
남편이 아이들 혼낼때는 되도록 끼어들지 않아야하는걸 알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을 지켜볼수많은 없어서  살그머니 나가 아이들 앞에 앉았다.
"있는 가방을 어떻게 없애. 윤정, 이룸아. 같이 쓰는 가방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니? 같이 잘 사용할 수 있는 규칙을 정해봐"
내가 끼어들자 남편이 나를 노려본다.
자기가 훈육하고 있을때 내가 개입해서 내 식으로 아이들을 다루는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다.
마치 당신보다 내가 더 나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남편과 아빠로서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 처럼 느끼는 것이다. 남편이 입장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중재하고 해결할 때 이렇게 극단적인 표현으로 아이들을 겁주는 것은 정말 싫다.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하는 방법들을 가르치는게 부모의 몫이 아닌가. 우리 스스로도 잘 못하고 사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한테까지 그런식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애써가며 스스로 더 나은 방법들을 찾게 하려고 이런 저런 대화를 시도하는데 남편 입장에서는
마누라가 자신의 방식은 나쁘다고 하고 내 방식만 옳다고 하는 것 처럼 느껴지는게 문제다.

아빠로서의 권위와 자존심도 지켜가며 기분 상하지 않게 잘 신경써가며 아이들 갈등을 슬기롭게 중재해야 하는 역할은 쉽지 않다. 자칫하면 아이들 싸움때문에 남편과 또다른 갈등이 되기 때문이다.

"규칙을 정하면 뭐 하냐. 지키지도 않으면서... 그냥 없애고 쓰지 말라고!"

휴우... 한 번 정한 규칙이 정확하게 지켜지면 그게 비정상이지 않나.

아직 어린 아이들인데 약속이고 규칙이고 수없이 정하지만 또 쉽게 잊고 어기는게 그게 아이들인것을.. 그때 윤정이가 입을 열었다.

"버리면 다 되는게 아니잖아요"
"뭐가 아니야, 버리면 되지!" 남편이 눈을 부릅 떴다.
"이 가방을 버린다 해도 다른 가방을 또 같이 쓰면 또 이런 일이 일어날거잖아요. 그러니까 규칙을 정해야지요"
"그러니까 같이 쓰는 거 다 없애라고. 너희들은 같이 못 쓰니까 다 없애고 각자 자기 물건만 쓰면 되잖아!!"

아아..이럴때는 아이가 어른보다 현명하다. 남편보다 윤정이 말이 옳다.
아이들도 생각을 한다. 잘못하면서도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든 스스로 생각을 하게 해야 한다. 어른이 나서서 칼로 자르듯 해결을 던져주고 끝내버리면 안되는 이유다.

그 해결조차 제대로 된 해결도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그냥 아이들앞에서 화내고 야단치는 것으로 끝난다. 싸우면서 큰다는 말은 수없이 싸우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생각과 부딛히고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나가며 자란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럴 수 있도록 어른이 도와야 한다.

윤정이는 아빠가 큰 소리만 쳐도 겁을 먹던 마음 여린 아이였다. 제가 억울한것을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던 어린 딸은 이제 울먹거리면서도 아빠 말에 제 생각을 주장할 만큼 자라났다. 이 와중에도 분명 이전에 비해 성큼 성장한 윤정이의 태도가 기특했다.

"윤정아, 이룸아.. 아빠가 날도 더운데 너희들이 계속 싸우니까 화가 나셔서 저렇게 말씀하시는 거고..같이 쓰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버리겠니. 그리고 가족은 같이 살면서 같은 공간에서

많은 물건을 같이 사용할 수 밖에 없어. 그러니까 가족이지. 같이 쓰는게 불편하고 다툼이 된다고

각자 자기 물건만 가지고 쓰면 그건 남이나 같아. 불편하고 속상하고 짜증나도 참고 또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같이 사는 사람들이 가족이잖아. 그러니까 이 가방도 너희들이 같이 쓰려면 어떻게 하는게 더 좋은지 규칙을 정해보자"
" 한 사람이 가방을 쓰면요. 집에 오자마자 물건을 다 비워야지요. 다른 사람 쓰게요"
"그런데요, 이럴수 있잖아요. 오늘도 쓰고 내일도 똑같이 쓸거라서 가방을 안 비울 수 있잖아요. 그럴땐 안 비워도 되잖아요"
"이룸아, 만약 한 사람이 이틀씩 삼일씩 계속 쓸거면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해야지. `내일도 내가 쓸건데 괞찮아?'하고... 그래서 상대방이 괜찮다고 하면 그대로 둬도 되지만 만약 상대방이

내가 내일 쓰겠다고 하면 비워줘야지. 가방을 사용할 권리는 두 사람한테 똑같이 있는 거니까.."
"그러면 알겠는데요, 언니가 가방 쏟는 바람에 내 필통에 들어있던 물건들이 다 쏟아졌으니까

언니가 필통을 다시 정리해줬으면 좋겠어요"
"니 필통에 물건이 어떻게 들어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 이룸이가 언니한테 필통에 물건들이 어떻게 들어있었는지 설명해줘.

그러면 윤정이는 그 설명에 맞게 물건을 다시 잘 넣어주고..."
"알았어요"


남편은 화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딸들은 언제 싸우고 울었냐는 듯 필통을 정리하며 큭큭 거린다. 나도 다시 주방으로 들어왔다.

방학을 하면 아이들과 24시간을 지내야 하는 내게 아이들의 다툼은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나는 일상이다.더러는 모른 체도 하고, 심하게 큰 소리가 나고 누군가 울고 불고 하면 달려가서 중재도 하고 야단도 치고 이야기도 한다. 징그럽게 싸우고도 또 금방 헤헤 웃으며 같이 어울리는게 자매다.

윤정이와 이룸이는 딱 그런 사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할 것도 없도 덜할 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보통 아이들이다. 싸우고, 화해하고, 풀어지고, 또 싸우고, 큰소리나고 때리고 울고, 또 하소연하고 억울해하고, 그리고 다시 어울려 놀며 하루가 간다. 내겐 익숙한 일이지만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적은 남편은 아무래도 이런 풍경들이 나만큼 익숙하지 않다. 더구나 요즘같은 폭염에 다섯 식구가 함께 지내게 되면 사소한 일로도 예민해지고 화가 치민다. 그럴 수 있다.
아이들을 훈육하는 스타일이 부부가 같으면 참 좋겠지만 우리 부부는 다르다.

다른 면이 때로는 좋기도 하고 때로는 아쉽기도 하지만 남편은 짜증이 별로 없고 나처럼 신경질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내가 화가 나고 균형을 잃을때 무던하고 관대하게 아이들을 품어준다.

남편이 화가 났을땐 내가 잘 다독이면 된다. 다만 둘 중 한 명이 아이들을 야단칠때 그 방식에 대한 비난이나 훈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내가 자주 저질렀던 실수다.

나처럼 매일 책을 읽고  새로 배우는 것에 관심과 노력을 쏟는 사람은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 상대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훈육할때 쉽게 지적을 하고 비난을 하게 된다. 더 많이 노력하고 애쓴다는 것과, 그러니까 내가 더 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가 노력해가며 찾아가고 알아가는 것을 남편과 잘 나누고 슬기롭게 남편을 내 편으로 만들어서

같은 목소리를 내게 하려면 나는 더 세심해져야 하고 부드러워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한다.

살아가면서 계속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겠지.

나는 짜증이 많다.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징글징글하게 같이 싸운다.
화를 안 내려고 해봤지만 나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다. 화를 참다가는 내가 병이 날 것 같았다.
화는 잘 못 참지만 대신 박박 화를 내고 나면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재빨리 인정하고 사과한다. 그리고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의 응어리를 푼다. 아이들을 키워 오면서 지긋지긋하게 함께 싸웠지만 여전히 관계가 좋은 이유다.

 

남편은 화를 잘 안낸다. 그러나 한 번 화를 내면 폭력적이고 위협적이다. 그리고 오래 그 화를 거두지 않아 나와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이건 남편이 풀어야 하는 숙제다.

그나저나 윤정이 정말 대견하다.마음 약하고 순둥이였던 딸이 어느새 화를 내고 있는 아빠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게 제 생각을 또박또박 말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자라났다. 그러면 된거지.. 아이들이 크는 모습에 이렇게 생생한데 그러면 된거지..

아이들이 싸울때는 부모도 함께 커야 하는 시간이다.
잘 싸우고 잘 풀고 잘 크는 일..
아이들과 함께 남편과 같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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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20 Mar 2019 18:24:49
<![CDATA[열 여섯의 방학]]>

 

아들은 오늘 모처럼 학교에 갔다.
2학기 준비를 위한 모임이다.
방학 내내 반 나절은 잠으로 보내는 녀석이 오늘은 내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나를 놀래켰다.
새벽 서너시 까지 책을 읽거나 만화를 보느라 늦게 자는데 어제는 남편이 작심하고

옆에 끼고 일찍 재웠던게 효과가 있었다.
전철역에서 내리는 녀석은 " 오늘 저녁까지 먹고 늦게 올지도 몰라요" 하며 싱긋 웃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랜만에 학교 선배들 만나 어울릴 기대에 발걸음마저 가벼운 모양이다.
학교를 좋아하는 아들이라니..
학교 사람들을 좋아하는 아들이라니...
심지어 개학을 기다리는 아들이라니...

아들의 여름 방학은 단순하게 흘러갔다.
보통 오후 1시 넘어까지 자고 일어나 밥을 조금 먹고 지난 밤 11시쯤에 부모님 방에 맡겨둔

핸드폰을 찾아 게임 중계 동영상을 본다. 웹툰도 보고 포털 뉴스도 보며 뒹굴 거린다.
그날치 신문을 넘겨보고, 씨네 21을 챙겨 읽고, 중간 중간 내가 시키는 심부름을 느릿느릿 하고,
다시 침대에 옆으로 누워 선풍기를 바짝 틀어놓고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일주일에 3일쯤은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컴퓨터 앞에 두 시간씩 매달려 있다. 

방학한 직후에 가족이 다 모여 방학계획을 정할때 핸드폰은 하루에 3시간만 사용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실제로는 하루 반나절은 손에서 놓지 않고 지낸 모양이다. 엄격하게 할 수 도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척 해줬다.

 

개학하면 어짜피 맘대로 쓸 수 없는 핸드폰이다. 방학기간이라해도 하루 반 나절은 자느라 못 들여다보고 밤에는 적어도 11시엔 부모방에 맡겨야 하는데다 밥 먹는 시간 등은 쓰지 않으니까 그 나이의 청소년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편이다.

              

핸드폰도 없고 늦게 일어나 잠도 금방 안 오는 긴 밤엔 주로 책을 읽는 눈치다.
예전에 봤던 만화책을 죄다 다시 읽기도 한다.
나는 매일 도서관을 드나들며 아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책을 열심히 빌려와 아들 방에 넣어 준다.
꼭 읽었으면 하는 책엔 용돈을 걸기도 하지만 머리맡에 놓인 책은 거의 다 읽어치운다는 것을 안다.

TV 평론가 이승환의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 여러권
최승범의 '나는 남자고 페미니스트 입니다'
허혁의 '나는 그냥 버스기사 입니다'
김양지영, 김홍미리의 '처음부터 그런건 없습니다'
랜들 먼로의 '위험한 과학책'
박서련의 '채공녀 강주룡'
양경수의 '잡다한컷'
킴벌리 아프캉. 메건 바츠케의 '단위, 세상을 보는 13가지 방법'
만화로 보는 여성 투쟁의 역사 '시스터즈'

방학중에 아들과 함께 읽은 책들이다. 이 외에 제 용돈으로 사들인 마블 만화책 시리즈와

일본 만와책들, 조경구와 조석의 만화책들은 매일 옆에 두고 살았다.
유일한 방학 중 과제는 영화 '남한산성'을 감상한 후 분석한 글을 써 내는 것이었는데

내내 심각하게 보더니 "그놈의 명분이 다 뭐라고... 하여간에 사대부들이 문제야 문제.."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뭔가 심오한 평을 적어낸 모양이다.

한 두세 번쯤은 나랑 크게 싸웠고, 여동생들과는 더 자주 싸웠고, 자주 수다를 떨며 웃었고,

가끔 예능 프로그램을 같이 보며 킥킥 거렸고, 자러 가기 전에 나를 꼭 안아주었고,

영화 '신과 함께 2'를 같이 보았고, 사촌형과 둘이 놀이농산에 가서 평소에는 질색하던 무서운 놀이기구들을 꾸역 꾸역 타고왔고, 할머니 제사를 드리러 구미를 다녀왔고, 자연드림 비빔면을 하루에 한번 씩은 반드시 먹어가며 아들은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개학이 빨리 왔으면 좋겠단다. 아들의 개학은 9월 3일이다. 뜨거운 햇볕에도 아랑곳 않고 자전거로 동네를 누비거나 공을 차고 농구를 하고 매일 친구들을 만나며 기운차게 몸을 움직이는 모습은......... 우리 아들이 아니다. 

 

늘어지게 자고, 핸드폰을 보고, 선풍기 앞에서 뒹굴거리고, 밤 새 책을 읽으며 집 밖에는 여간해서

스스로 안 나가는 모습이 우리 아들이다. 다 바랄 수 는 없다.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는 열여섯 아들의 삶엔 아직 입시가 없다.
앞으로도 계속 없을지 알 수 없다. 
다만 매일 매일 단단하게 제 생각을 키워가며 자라고 있다는 것만 안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느닷없이 가을이 왔다.
그렇게 뜨겁고 가물었는데도 밤나무엔 초록색 밤송이들이 조랑조랑 달렸다.
감나무 잎들도 생기를 잃지 않았다.
매미는 포기하지 않고 울고 또 운다.
아들도, 밤나무도 감나무도, 매미도 
더운 날들 잘 견뎌낸 모든 것들이 참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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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9 Mar 2019 20:29:31
<![CDATA[다시, 꽃들에게 희망을]]>

» 책 ‘꽃들에게 희망을’

 

교사 시절, 수업 끝나는 종 소리와 함께 
학생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친 적이 한 번 있었다. 
시험이 끝난 뒤 첫 수업 때마다 아이들에게
영화나 책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그 날은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의 결말에 이르러 
내가 수많은 나비 그림으로 칠판을 채우자 
학생들의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애벌레들은 경쟁사회 인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애벌레들은 자신의 몸으로 기둥을 만들어 
서로를 짓밟고 위를 향해 끝없이 오르지만 
누구도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이 모르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수 있음을,
이를 위해서는 서로를 짓밟으며 기어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같은 어둠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최근 사회 명사들이 죽음을 맞으며 
‘부질없다’, ‘헛되다’와 같은 말을 남겼다는 보도를 들었다. 
권력의 정점을 찍는 일에 평생을 바쳤던 이들이 남긴 말과 
동화책 속 애벌레들의 삶이 어찌 이리 닮았는가.

 

교사로 지내면서 나는 넘치는 진심 속에 살았다. 
소위 문제아라 일컬어지는 아이들도, 
아니 그런 아이들일수록 내가 진심으로 다가가면 
순도 100%의 진심으로 응답해주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학교 밖 세상으로 나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마치 어린아이 같은 실수를 연발했다.
이른바 ‘의례적 만남’, ‘적당한 거리 두기’에 너무 서툴렀다. 
외교적인 언사를 할 줄 몰랐다.

 

이때 넘치는 친절을 보이며 사회운동에 뜻을 같이 한 이가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처음의 뜻과 전혀 다른 면모를 보였는데
그 시점은 자신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였다.
친정부적 행보를 이어가면서도 
이에 반하는 사회운동의 현장에도 참석하여 지지를 보이는 등
갈등 없이 양립하는 가치관을 그를 통해 보았다.
이런 합리적 유연함(?)은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되며 진화하고 있다.

 

이를 무조건 지지하는 또 다른 이들을 보면서, 
처음엔 사람에 대한 호감 탓에 
옳고 그름을 보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곧 알게 된 건,
처음부터 옳고 그름이나 공정함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철학자 김진영씨는 이런 행태를 일컬어 
‘선악의 경계를 자유로 넘나드는 부드러운 악’이라는 정의를 내렸고
나는 그의 명쾌한 표현에 무릎을 쳤다. 
이는 경쟁과 자본을 최선의 수단으로 삼는 
속물근성의 만화경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었다.

 

명예와 권력, 돈을 위해서라면 선한 웃음을 띤 얼굴로 
약자에게 채찍 휘두르기를 서슴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가짜 복음을 전파하기도 한다. 
이들은 ‘성찰하지 못하는 인간’이 아니라 
아예 성찰의 가능성을 지워버린 채 
애벌레 기둥을 오르기로 선택한 자들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에 대한 기대는 접지만 
다른 면에서 희망을 갖는다.
개개인에 대한 시시비비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를 건드릴 때 오는 희망이다. 
진실 추구의 유전자(마땅한 표현이 없으므로)는 
내 후손을 통해 이어질 것이다. 
권정생 님의 동화 ‘강아지똥’의 내용 처럼 
아주 작은 아름다움 속에 우주의 기쁨을 길러내는 일을 상상한다.

 

13살인 다엘에게, 
내가 물려주고 싶었던 핵심가치는 모두 전달했다는 것을 
최근에 절감했다. 
지금까지 내가 다엘에게 강조했던 건 아주 사소한 상황에서의 예의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갈 때 뒤에 오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라, 
마트에서 내가 쓴 카트 안에 쓰레기 버린 건 없나 돌아봐라’ 등등.

 

며칠 전엔 다엘과 장을 보던 중 
누군가 쏟아버린 할인쿠폰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는 걸 봤다.
귀찮다고 그냥 지나가는 내게 다엘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하고는 뒤돌아가서 제자리에 꽂아놓았다.
말과 행동이 다른 엄마에게서 
이런 아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야말로 희망이다.

 

마트 다엘1.jpg» 마트에서 할인쿠폰을 주워담는 다엘

 

사소한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이는 
다중인격을 양성하는 병리적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리라 믿는다.
그 삶은 세속적 명예와는 거리가 먼 고난의 행군이 될 테지만
커다란 선물 역시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건 바로 꽃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나비의 날아오름! 
애벌레 기둥의 정상을 정복한 벌레들은 상상할 수 없었던 
나비의 초대에 대해
나도 기꺼이 응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다시, 꽃들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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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9 Mar 2019 20:28:45
<![CDATA[달콤 달콤, 아들과의 데이트]]>

아들은 아직도 방학중이다.
딸들은 개학을 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녀석의 학교는

여름방학이 5주라서 이번 주까지 쉬고 있다.
매일 늦게 일어나 게임할 구실을 찾는 일에 머리를 굴리는 녀석을 오늘은 모처럼 일찍 깨워

딸들과 함께 나왔다. 딸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아들과는 시내로 향했다.

영화 '맘마미아 2'를 조조로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들과 둘이서 조조 영화를 보는 일이 처음이라서, 키 크고 훤칠한 아들과 둘이 나온게 좋아서 
나는 싱글벙글 말이 많아지는데 녀석은 시크한 척 내 눈을 피한다.
"필규야... 이것도 다 기념인데 엄마랑 셀카 한 장 찍자."
"훗. 셀카는 악의 근원입니다. 저는 셀카 안 찍어요."
"아앙. 한 장만 찍자."
"전 사양하겠습니다."

"칫, 그럼 이렇게라도 찍을거야."
"맘대로 하세요." 
"아이고, 컸다고 비싸게 굴기는..."


그래도 난 비굴하게 기어코 이런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들은 내가 몇 번이나 다시 찍을 동안
웹툰만 보고 있다. 이렇게라도 아들과 둘이 있는 모습을 찍으면서 나는 좋았다. 아직은 같이 극장 가자면 나오잖아. 그게 어디야...

아, 이 영화 맘에 드네.
아바 노래 좋은거야 당연하고, 그 사이 더 멋있게 나이든 저 세 남자들 좀 봐.
나는 멋있게 나이든 사람들 잔뜩 나오는 영화가 좋더라. 

마지막에 도나가 혼자 남아 섬에 있는 오두막에서 소피를 낳는 장면에서
그 장면과 겹쳐 엄마가 된 소피가 자기의 아이를 안고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해주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서 세례를 받기 위해 들어서는 장면과
극 중에서는 이미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도나가 나타나 
'나의 사랑, 나의 생명'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소피와 태어난 아이를 축복해주는 장면에서
눈물을 뚝뚝 떨구었지.

필규야
마지막 장면 보다가 엄마가 정말 오랜만에 너 낳을때 생각 났잖아.
아빠 출근할 무렵에 양수가 터져서 부천에 있는 조산원까지 차를 타고 가는데
아빠는 미친듯이 운전하고 엄마는 계속 그 옆에서 양수를 철철 흘려가며 진통을 하고..
너 낳을때는 엄마도 처음이고 경험이 없는데다 너무 아파서 힘 조절을 잘 못했어.
네가 나오는 순간에는 힘을 빼야 하는데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힘을 빼지 못해서
아랫도리가 엄청 찢어졌거든. 엄마야 너를 낳고 있어서 얼마나 찢어졌는지 몰랐는데 원장님이 그 상처를 꿰매는 것도 몰랐어. 원래는 아이 낳는 것 보다 그게 더 아프다고 하던데, 생각해봐. 그 얇은 살을 마취도 없이 꿰매는데 얼마나 아프겠어. 그런데 엄마는 아무 느낌이 없었거든.
그냥 네가 몸 밖으로 나와서 내 가슴 위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다 끝났구나. 잘 끝났구나, 내가 이 아이를 낳았구나 이런 생각에 취해 있어서 아픈 줄도 몰랐어.
나중에 알려주시더라, 엄마가 그 조산원 개원 이래 최고로 많이 찢어졌던 산모였다고..
그 상처가 아물때까지 한 고생은.... 정말이지 말로 다 못한다.
네가 그렇게 태어난 녀석이라고..

에이, 왜 그렇게 힘 조절을 못하셨을까..

네가 낳아봐라. 그게 마음대로 되나.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엄마가 된다는 것은 뭐랄까..
한 여자의 인생을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하는 일이더라고..
낳아 놓고서 스스로 대견하고 놀랍기도 하고,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나.. 새삼 사는 일이

무서워지기도 하고, 아프거나 다치면 어쩌나 수십년 걱정을 미리 당겨서 다 하느라

마음으로는 백 년도 더 산것처럼 미리 지쳐버리기도 했는데..
그 작던 아이가 벌써 이렇게 커서 엄마보다 훨씬 더 크고 이렇게 손잡고 영화도 다 보고 그러잖아.
그러니까 엄마랑 사진 한 장 찍어야지.
흥, 제가 엄마 목을 졸라도 과연 사진 찍을 수 있을까요?
야, 비겁하게... 네가 아무리 방해해도 나는 사진 찍을꺼야...

 

 

 

에고... 눈 옆에 이 주름살 좀 봐. 어찌 이렇게 선명하냐.
엄마, 나이를 인정하세요.
야! 영화에서 도나 엄마로 나온 가수 쉐어말야. 찾아보니 46년생이던데, 그럼 70도 넘은거잖아.
그런데 그 주름하나 없는 피부 바라. 도대체 의학과 현대 과학의 힘을 얼마나 빌렸길래 극중 
도나보다, 아니 소피보다도 더 젊어 보이는거냐고..
나도 최신 의학의 힘을 빌리고 싶다, 최소한 이 눈주름만...

그래도말야. 나이든 콜린 퍼스나 피어스 브로스넌 보니까 좋더라.

젊음도 좋은데 잘 늙어가는 것도 좋아.

생각해봤는데 아빠는 흰 머리가 일찍 생겨서 나이 들면 더 멋있을것 같아. 
엄마는 60이 되어도, 70이 넘어도 여전히 명랑하고 활기찬 할머니일 것이고

아빠는 그 나이쯤 되면 조금은 더 부드러워진, 백발이 어울리는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 같고..
둘이서 손 잡고 같이 다니면 좋을것 같지 않니? 지금도 좋지만 그때도 좋을것 같애.
아아.. 이 다음에 윤정이랑 이룸이가 커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때 그때도 엄마가.... 
물론 곁에 있겠지만 아... 생각만 해도... 그런 날들이 온다면.... 얼마나 벅찰까..

아들 손 꼭 잡고 영화 얘기로 수다를 떨어 가며 거리를 걷고, 툴툴 거리는 녀석 세워 놓고 옷

 가게에 들러 옷도 한 벌 사고, 우리 둘 다 좋아하는 스시집에 들러 맛난 연어초밥과 튀김롤도 먹고, 그리고 녀석이  좋아하는 중고 책 가게에 들렀는데..

 

 

 

아들은 좋아하는 만화책을 수북히 골라와서 정신없이 빠져든다.

나는 한참 떨어져 아들 모습 훔쳐 보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흠... 내가 낳았지만 녀석 기럭지 좀 보라지. 잘 생겼고만..

 

 

 

줌으로 이렇게 땡겨서 찍어야 옆 모습이라도 담을 수 있구나.

이정도라도 허락해줘서 다행이지.
사진 찍는거 질색팔색하면 이렇게라도 못 하잖아.
녀석...
필규야. 니가 크고 나니까 어딜 가나 아르바이트하는 아이들 만나면 엄마는 다 너 같더라.
저 아이도 어떤 엄마에게는 하늘과 같은 자식일텐데, 저만큼 키우느라 죽을 만큼 애썼을텐데.. 생각하면 누구에게도 함부로 할 수 가 없게 돼. 그렇게 되더라.
세상 모든 아들이 너 같고, 모든 딸들이 내 딸같은데 누구에게 막 할 수 있겠니.
엄마가 되고 나니까 그래.

아들은 결국 제가 수집하고 있는 만화책이 여덟 권이나 더 들어왔다고 다 사 달란다.
9월 용돈은 없겠다 아들아
아잉... 5천원만 남겨주세요 엄마 사랑해요.
훗.. 그럴때만 사랑 타령은...
알았어..

 
 

 

달콤했던 데이트를 끝내고 집에 오자마자 나는 모처럼 뜨겁게 이글거리는 햇볕이 아까워

빨래를 너네, 이불을 너네 바쁜데 아들 녀석은 새로 산 만화책을 몽땅 들고 안방 침대로 가서는

꼭 저 자세로 책을 보며 키득 거리고 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킬킬 거리는 웃음 소리가 거실까지 흘러 나온다.
그래.. 좋을 때다.
아직은 방학
집에는 엄마가 있고
저를 먹이려고  동네 할머니가 오늘 아침에 따서 파는 옥수수를 사와서 삶고 있는 냄새가

집안에 가득히 풍기고, 재미있는 만화책도 그득하게 있으니 참 좋겠다.
즐겨라 아들아 
행복하고 충만한 이런 시간들을
이런 순간이 정말 뿌듯하니 좋더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말야.

나는 아들과의 데이트에서 새로 산 데님 원피스를 입고 날아갈듯 신나게 집안을 오가며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글을 쓰고 있다.

여름방학은 덥고, 덥고, 징그럽게 덥고 힘들게 지나갔지만 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다 반짝였다는 것을 알겠다.
좋지 않니? 이런 여름..
고맙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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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9 Mar 2019 20:26:54
<![CDATA[엄마의 반성문]]> 딸 민이를 키울 때
나는 기본적으로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민이가 두 돌이 됐을 무렵 시어머니가 해외여행을 떠나고 
처음으로 나 혼자 민이를 돌보게 된 적이 있다.
지인은 아이를 혼자 돌보려면 엄청 힘들 거라고 겁을 줬다.
그런데 민이와 둘만 남았을 때 힘들기는커녕
평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민이에게 간식을 건네 주며 "먹어" 한 마디를 하고
조용히 간식을 먹는 민이를 나는 또 말없이 바라보던
그때의 광경이 가슴 아프게 남아 있다.
당시 고부 갈등으로 나의 우울감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지만
그게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
 
다엘을 키우면서도 나는 여전히 민이에게 했던 방식의
육아를 이어가고 있었다.
다엘과 눈맞춤 하며 같이 웃고, 놀고, 
아이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본 적이 몇 번이나 되나?
지난 글에 다엘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쓰면서
나 자신의 오만함에 한껏 취해 있었다.
내 아들이 이렇게 예쁘게 잘 컸다고.

그러나 다엘이 엄마의 이상에 닿기 위해
혼자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다엘의 이유 모를 두려움은 더욱 커졌고
분리불안은 나아지는 게 아니라 심해지고 있었다.

나는 맘이 안 맞으면 쌩 하니 화를 내며 급 냉랭해지는 습관이 있는데
이를 다엘에게도 그대로 되풀이해왔다.
다엘은 그럴 때 내게 ‘엄춘기(엄마의 사춘기)’라는 말을 하며 
내 기분을 풀어주려 애썼다.
푸근하게 아이가 안길 수 있는 엄마가 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아이에게 위로 받는 어른 꼴이 됐다.
급기야 다엘은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더위에 땀을 흘리면서도 무섭다고 이불을 머리에 덮어쓰기까지 했다.

엄마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아픔은 어디에서 오나?
"가족끼리는 실망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다시 좋아지기도 하는 거야.
좋은 말만 하고 사는 게 아니야."
선생님의 이런 조언도 다엘에게 닿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성취욕이 강한 어머니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늘 죽을 힘을 다했다.
공부 잘하는 착한 딸이 되기 위해 항상 몸부림 쳤다.
돌아보면 대학 시절까지 나는 황폐한 사람이었다.
교생 실습을 나가서 학생들 앞에 섰을 때에야 처음으로
내게도 유쾌하고 잘 웃고 활달한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나 늘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듯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100% 치유하긴 어렵지만
자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서부터 치유의 길이 열린다고 한다.
“다엘, 뭘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엄마는 있는 그대로 너를 사랑해.”
안 해보던 얘기라 말하기도 듣기도 어색했을까?
나의 말에 다엘은 건성으로 답했다. 
“응, 정말 감동이야!”

 
옥잠화1.jpg» 땅에 떨어진 옥잠화 꽃송이, 다엘이 주워오다

자식 둔 사람은 절대 오만해선 안 된다고 한 옛 어른 말씀이
새삼스레 와 닿는다.
다른 어떤 일보다 아이를 우선순위에 두기 위해
마음 속으로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아이와 눈 맞추고 웃어주고 진심을 다해 귀 기울이는 일,
아이가 원하면 모든 일 접고 당장 밖으로 나가 함께 뛰어 노는 일,
이를 지금 해야 한다는 것.

요즘은 잠 들기 전 다엘의 다리와 등을 맛사지 해주기 시작했다.
슬안, 족삼리, 위중 등 낯설고 이상한 이름의 성장점을 찾아 지압하면
다엘은 간지럽다고 발버둥치면서도 까르륵, 웃음소리가 넘친다.
잠들기 전 행복한 시간은 행복한 잠으로 이어지고
편안한 잠이 아이의 상처 난 마음을 달래준다고 한다.

다엘이 요즘 좋아하는 시간이 또 있다.
아파트 광장에서 엄마와 함께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시간이다.
온전히 아들에게 집중하는 엄마를 다엘은 그간 갖지 못했다.
지금껏 못 해본 놀이 시간을 보상받고 싶어하는 아이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라는 베이스 캠프를 확보한 아이만이
또래들 속으로, 세상 속으로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다.
한 아이의 세상을 바꾸는 일이야말로 세상 전체를 바꾸는 일이건만,
그간 아이 말고 어디에 우선순위를 뒀단 말인가?

청명한 가을에 나도 아들도 새롭게 태어난다.
사춘기는 ‘내가 나를 낳는 시기’라고 한다.
갱년기라는 말도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다엘, 우리 이 시간을 잘 지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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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18 Mar 2019 18:10:34
<![CDATA['엄마'에서 다시 '나'로 돌아오는 시간]]>
 
 
 
모처럼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여유가 생긴 날.
거실 소파에 앉아있자니, 아이들과 보낸 지난 시간들의 흔적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어설퍼서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10세 미만 즈음일 때 그린 그림들과 
저런 때가 언제였나 싶은 아기 때 사진들,
그리고 6월이 생일인 딸아이 덕분에 좋아져서, 해마다 조금씩 걸어뒀던 말린 수국들 ...
 
저게 다 내가 한 일들이었나.
저 스토리 속에 정말 내가 있었던 걸까.
 
분명히 여긴 우리집이고, 우리 가족들이 걸어온 시간들이 담긴 장면들인데
갑자기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요즘 꽂혀서 시간날 때마다 보고있는 유튜브 채널에서
어느날, 그 답을 발견했는데 그건 바로
 
'엄마'에서 다시 '나'로 돌아오는 시간
 
이란 말이었다.
 
아이가 10대 중반까지 자라고 나니, 알 거 같았다.
초등학교만 가도 좀 나을까..
중학교 가면 좀 편해지겠지..
입시만 끝나면 좀 괜찮을까..
 
그런 건 다, 나만의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1년만 더 고생하면..
앞으로 3년? 5년만 더 하면 ..
그렇게 버텨왔는데 '좀 편안하고 좀 괜찮아진' 시간은 아직 오지 않고 있다.
물론 거의 24시간 내내 힘들던 시절에서는 많이 벗어났다.
하지만, 힘들고 곤란한 일들은, 그때그때마다 테마를 바꿔가며 꼬리를 물듯
내 인생에 등장했다.
둘째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겨우, 하루 중에 쉴 시간이 생겼나 싶더니
내가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그게 좀 나아질까 싶더니 친정아버지께서 많이 아프셨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2년을 꼬박 아버지가 계신 병원을 다녔다.
그러다 결국, 가족 모두 처음 겪는 슬픔을 겪은 게 작년 2월의 일이었고,
그 즈음, 정신이 없는 와중에 미리 면접을 봤던 회사에서 연락이 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결혼을 계기로 외국으로 와 살며 아이들을 낳고, 이런저런 사회활동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한 것은 작년이 처음이었다.
별 문제만 없었다면, 나에게는 꽤 잘맞는 일들이어서 열심히 했다.
근데 결국, 1년 남짓 다녔던 그 직장을 올 5월에 그만두고 말았다.
 
실제로 경험한
엄마에서 다시 나로 돌아오는 시간.
은, 유튜브에서 들었던 것처럼 그렇게 멋있지 않았다.
한두번의 시도로 깔끔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고
'엄마'와 '나'는 어쩜 평생 분리하기 힘든 단어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1년하고 2개월 정도, 직장을 다니는 중 직장일도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그동안 멀쩡하던 아이들이 왜 기다렸던 것처럼 그리도 자주 열이 나고 아픈지..
직장으로 아이들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올 때는 정말 혼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내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가족들이 조금씩 각자 홀로서기를 
연습할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일, 변화한 일도 물론 많았다.
하지만, 이만큼 애썼으니 이쯤에선 괜찮겠지, 했던 일들이 참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가장 힘든 건, 무언가 예측해서 준비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마, 큰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옛날옛적 신생아적 시절처럼
한날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된 탓이 큰 것 같다.
 
지금 내가 이 얘길 할 수 있는 건, 
그래도 한시름 놓은 요즘이라 이렇게 글로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사춘기 때 힘들어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 마음이 이런거구나, 하는 걸 이번에 알았다.
힘들면서 마음이 성장하기도 했겠지만,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았다.
아이가 크느라고 힘들어하는 걸 생생하게 지켜보는 게 너무 마음 아팠다.
 
오늘은 어떻게 될까, 내일은 또 어찌 될까..
조마조마하게 지내는 그 시간동안도, 나의 유일한 위로는
새로운 '내 일'을 찾고 준비하고 도전하는 일이었다.
너무너무 일이 하고 싶었다.
내 일이 하고 싶었다.
일하는 어른들의 대화가 그리웠고,
그 속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 중이다.
사춘기 아이의 학교 담임선생님의 걱정이 담긴 전화를 받는 중에도,
기관지염에 걸려 학교를 징검다리 건너듯 결석하는 둘째의 체온을 재면서도,
미래에 내가 할 일을 상상하고 준비하고 계획하고 정보를 찾는 시간이 행복하다.
그게 현실이 되는 날, 또 걸림돌이 되는 일들은 여전히
내 인생 곳곳에 놓여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떻해서든 포기하지 않고 가 보고 싶다.
용기를 잃지 않으려고, 40대 후반에서 50대 여성들이 일하는 이야기를 많이 찾아 듣고 있다.
그 선배들이 하는 얘기 중에, "마흔은 아직 애기잖아." 라는 말이 정말 위로가 된다.
현실이 만만치는 않지만
주변에 잘 찾아보면, 
마흔 즈음에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서 작은 성공을 이뤄내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
50대에 활발하게 일하는 여성들도 많고, 생의 황금기를 보내는 분들도 많았다.
 
엄마에서 다시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
얼마가 걸린다해도
조금씩 찾아가고 싶다.
결혼 전에도, 긴 육아기간 중에도 몰랐던, 더 다양하고 많은 나를 찾고 싶다.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는 시간동안
아이들과는 따로 또 같이,
엄마도 새로운 꿈과 목표를 갖고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몇 년 안 남은 40대 동안 그렇게 준비해서, 50대엔 내 일을 할 수 있기를.
그게 지금 나의 꿈이다.
부디 이룰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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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18 Mar 2019 18:09:32
<![CDATA[꽃과 풀 달과 별, 모두 다 너의 것]]>

베이비트리 독자 여러분들께 제 두번째 책을 소개드립니다.

이런 날이 오다니, 정말 기쁩니다^^

 

이 책은 세 아이들과 아파트를 떠나 작은 마을에 있는 마당 있는 집으로

들어가 살면서 겪어 낸 7년 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냥 어린 아이들이 자연속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아홉살, 다섯살, 그리고 첫 돌이 된 막내를 데리고

추운 겨울에 낡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던 것이 2011년 1월 이었습니다.

산과 이어져 있는 마당 넓은 2층집, 벽난로도 있는 꿈 같은 집을 만났다고

좋아했지만 오래 비어있던 낡은 집에서의 첫 겨울은 끔찍하게 춥고

힘들었습니다.

 

살고 싶은 집을 만났으나 그런 집에서 살아내기 위해서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것들을 감당해야 하는지엔 무지했던 탓에 한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는 모든 시간이 모험과 도전과 실수의 연속이었습니다.

서툰 농사를 시작하고, 첫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새 환경 때문에 설레고

상처받고, 적응하느라 애쓰고 눈물 나던  그 시간들을 온 가족이 겪어내며

서로를 다시 알아가고, 자연속에서 새롭게 배워갔던 시간이 7년 이었습니다.

그 세월 동안  아홉살 첫 아이는 열 여섯의 청년으로, 다섯 살 둘째는 열 두살 소녀로,

첫 돌이었던 막내가 야무진 아홉살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겪어낸 시간들 동안 우리가 통과해온 모든 기쁨, 슬픔, 힘듦, 감동,

그리고 배움이 이 책 안에 다 있습니다.

이렇게 키워라, 저렇게 키워라 하는 정보와 팁을 주는 육아서가 아닙니다.

아이를 키워온 엄마로서, 부모로서 아이들과 같이 자라온 시간들을 기록한

일기와 같습니다. 

 

육아가 가장 치열했던 7년 이었고, 그 사이에 수없는 사건들이 있었고, 그 모두를

슬기로게 헤쳐나오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애쓰며 같이 걸어온 길이 문장마다

올올히 선명합니다.

딱 떨어지는 배움보다는 읽다보면 그렇구나.. 그렇겠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책 입니다.

 

이렇게 해서 잘 키웠다... 같은 성공담을 기대하신다면 실망하시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동과 아픔과 성장이 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무척 재미있기도 합니다.^^

 

저희 가족이 느꼈던 많은 것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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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18 Mar 2019 18:08:52
<![CDATA[괜찮아, 잘 자라고 있는거야..]]>

 

 내 글을 오래 읽어 온 독자들은 둘째 윤정이에 대해 애틋한 감정들을 고백하곤 한다.
첫째와 막내 사이에 끼인 둘째로 자라면서 늘 위와 아래를 먼저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아이이기 때문이다. 
힘과 나이로 누르는 첫째와 유난히 자기 주장이 강한 막내 때문에 집안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세 아이와의 갈등으로 힘들 때, 누구 하나가 이해하고 양보해야 상황이 끝날 때 그럴때 마다 나는
그 몫을 윤정이에게 기대하곤 했다. 윤정이는 착하니까, 윤정이는 이해를 잘 하니까, 윤정이는
엄마 마음을 잘 알아주니까...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오빠 말을 들어주고, 동생을 달래며 엄마까지 다독이는 둘째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선물 같은 딸, 기특하고 대견한 딸이라고 여기며 미숙한 엄마의 숙제를
어린 딸에게 미루기도 했었을 텐데 그렇게 크는 동안 그 어린 마음에도 그늘이 들고 힘들었다는
것을 적지않은 시간이 지나서야 알아챘다. 
그 다음부터는 언제나 윤정이에게 확인한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은지, 그게 정말 네 마음인지..
네 감정, 네 기분이 기준이라고, 다른 사람 마음 살피기 전에 네 마음부터 살펴주라고 얘기하곤
했다. 집안은 더 시끄러워졌지만 윤정이 표정은 한결 환해졌다.
그렇게 열살 열한 살이 지나고 윤정이는 지금 열두살 가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어릴때 양보 잘하고 제일 많이 참던 모습은 진즉에 사라졌다. 열두살 큰 딸은 조금이라도
옳지 않거나, 제게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일엔 조목조목 따지고 제 주장을 편다.
2차 성징이 뚜렷해지면서 키도, 몸도 부쩍 자란 큰 딸은 요즘 나와 제일 많이 부딛치는 사람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언니를 따라 발육도, 감정도 발달이 빠른 막내까지 가세해서 집안은 종종
세 여자가 질러대는 고성으로 들썩거린다.
쉰을 앞두고 슬슬 갱년기가 다가오느라 나도 내 감정에 대한 숙제를 풀어야 할 시기에 폭풍성장중인
두 딸과의 동행은 자주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 해 진다. 한바탕 소리 질러가며 싸우고, 그리고는
다시 부벼대며 뒹구는 날들이다. 아들의 열두살을 다시 살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러는 윤정이가 얼마전 지난 내 생일날 사랑스럽고 깜찍한 이벤트로 나를 감동시겼다.
생일 전날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라는 그림책이 필요하다며 찾길래 서가를 뒤져 찾아 주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는데 생일날 윤정이는 생글거리는 얼굴로 다가와 내 책상위를 가보라는 것이다.
책 상 위에는 '엄마, 윤정이예요. 피아노 뚜껑위를 보세요'라고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아하.. 오늘은 무슨 날 시리즈구나... 짐작이 되었다.

'하야시 아키코'가 그림을 그린 '오늘은 무슨 날?'이라는 그림책에 나오는 주인공 여자 아이는 
엄마 아빠의 결혼 기념일을 맞아 엄마에게 집안 여기 저기에 쪽지를 숨겨두고 찾게 한다. 엄마는 딸의 
쪽지가 이끄는대로 거실에서 계단으로, 2층으로, 딸들 방으로, 현관으로, 심지어 마당의 연못 안에 떠 
있던 봉지까지 건져내어 그 안의 쪽지를 찾아 가며 확인하는데..
그 쪽지의 끝은 우체통 안에서 끝나고 그 안엔 작은 선물 상자가 들어있다. 
 이 책을 읽은 후로 윤정이는 내 생일때마다 온 집안에 쪽지를 숨겨두고 나로 하여금 그 쪽지를 따라
집안을 누비게 한다. 물론 쪽지의 끝엔 윤정이다운 깜찍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도 나는 일부러 과장스럽게 춤을 추며 딸이 숨겨 놓은 쪽지를 찾아 집안을 돌아다녔다.
윤정이와 이룸이도 웃으며 함께 했다.
책상에서 컴퓨터 앞으로, 다시 현관 신발주머니 안에 이어, 책꽃이 사이와 우편함과 피아노 뚜껑과
부엌 정수기 뒷편으로 이어지던 쪽지는 윤정이 책상 서랍에서 끝났고 그곳을 열었을때
윤정이가 만든 '우리 엄마'라는 그림책과 언니가 하는대로 고대로 따라 만든 이룸이의 그림책까지
들어 있었다.

A4지를 스테플러로 찍어 만든 그림책 제목은 '우리 엄마'였다.
한장씩 넘기면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이쁜 엄마죠'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여자죠'같은 말들이 적혀 있었다.
'우리 엄마는 훌륭한 일꾼이고'라고 적힌 글 아래에는 방충모자를 쓰고 풀을 뽑는 내 모습이 그려져있고
'우리 엄마는 착한 요정! 내가 슬플때면 나를 기쁘게 할 수 있죠'라는 그림 아래엔 울고 있는 저를
내가 안아 다시 웃게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뒷쪽에는 '우리 엄만 개그맨이 되거나  가수가 될 수 있죠! 어쩌면 방송작가나? 사장이 될 수도 있었고요!

하지만 우리 엄마가 되었죠!
우리 엄마는 최고 엄마! 나를 자주 웃게 해요. 아주 많이~!
나는 엄마를 사랑해요, 그리고 엄마도 나를 사랑한답니다.~ (영원히~)' 라고 써 있었다.
그 아래에는 아마도 나인 그림을 가운데로 아빠, 이룸, 윤정, 필규가 둘러싸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많이 웃었고, 정말 행복했다. 언니를 따라 열심히 만든 이룸이 그림책도 감동이었다.

49번째 생일3.jpg

 

한창 캘리그래피에 재미를 붙인 윤정이는 멋들어진 글씨로 가족들이 내게 쓴 편지의 봉투를

일일이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 쓴 제 편지를 내게 읽어 주었다

 

 

49번째 생일 2.jpg

 

 '사랑하는 우리 엄마
엄마! 저 윤댕이 예요(데헷~) 와, 엄마가 벌써 4....40....49.... 살 이예요.
벌써 반 백년을 살으셨어요. 요즘따라 너무 힘들어 보이시네요. 그래서 제가 쿠폰도 
만들었는데... 잘 사용해 지키셨음(?) 좋겠어요. 엄마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제 본격적으로 싸우고 때리고 난리 칠 거예요. (죄송 ㅎㅎ) 이제 내 후년이면
중학교도 가구요 (으흠~)이제 앞으로 많~은 변화가 천천히
찾아올거예요. 그 점에 대해서 엄 . 빠가 이애해 주시면 좋겠어요.
뭐, 물론 엄마와 멀어지겠다는 건 아니예요. 그러니 우리 계속 친하게 
지내요! 아직 변한건 아니지만 ㅎㅎ 엄마! 49번째 생일을
온 힘을 다해 축하드려요. 사랑해요~ ㅎㅎ'

이 글을 읽으면서 윤정이는 본격적으로 변할거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눈물이 고였다.
나도 울컥했다. 윤정이는 제가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예전의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던 날들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앞으로 더많이
엄마와 싸우고,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예상하고 있다.

그런 앞날을 생각하며 윤정이도 나도 새삼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그 시간속에서 천천히

변해온 것들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견하고, 애틋하고, 먹먹한 마음이었다.
나는 윤정이를 꼭 안아 주었다. 서로 끌어안은채 우린 훌쩍였다.

"그러면 어때. 그게 다 자라는 일인데.. 더 많이 싸우고, 대들고, 난리치면서 자라도 돼.
그러면서 너도 더 많이 알아가고, 엄마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될꺼야. 좋은 일이야. 괜찮아.
그게 자라는 일이야. 다 그렇게 자라는거야. 엄마도 그랬어. 그래도 우린 계속 사랑할꺼잖아.
아무리 싸우고 미워해도 다시 안을 수 있잖아. "

어리고, 착하고, 순하던 딸이 이렇게나 자랐다.
그리고 내게 앞으로 저 답게 더 많이 변하고 커 갈것임을 분명하게 예고했다.
언제까지나 착한 딸을 바라지 않는다. 그런 딸은 없다. 늘 착하다면 그건 정상이 아니다.
윤정이는 열두살 답게 잘 자라고 있다. 갈등을 각오하고서라도 제 주장을 굽히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고, 납득이 되면 사과할 줄도 알게 되었다.
여전히 감정을 조절하는데 서툰 엄마라서 자꾸 자라느라 목소리가 커지는 딸과 자주

부딛치겠지만 그렇게 지나는 시간들이 나 또한 자라게 할 것이다.

괜찮다. 윤정, 잘 싸우고, 멋지게 난리치고, 잘 풀어가며 지내보자.

단 때리는 건 좀 고쳐보고..ㅋ

순둥이, 착한 딸은 잊어버렸다. 명랑하고, 목소리 크고,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물러서지 않는 씩씩한 딸과 동행하는 날들을 더 많이 고대하고 있다. 
멋지다. 잘 하고 있다. 
늘 응원한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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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 16 Mar 2019 22:06:07
<![CDATA[아홉살의 그림]]>

 

요즘 이룸이는 그림 그리기에 빠져 있다. 자기 말로는 '크로키'를 하는 거란다.

나도 그림 그리는 일에는 늘 관심이 있어 수채화니 스케치하는 법에 대한 책을

몇 권 샀었는데 이룸이는 그 책 중에 한 두 권을 본 다음부터 그림 도구들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남편이 데리고 나가 물감이며 붓이며 스케치 노트등을 사 주었는데 그 후부터

마음 내키면 한 번에 몇장이고 그림을 그려댄다.

덕분에 나는 이룸이의 단골 모델이 되었다. 함께 있는 시간이 제일 많은 까닭이다.

 

아홉살의 그림2.jpg

 

주말에 늦잠에서 일어나 온통 뻗친 머리칼이 부스스한 모양으로 주방 렌지 앞에서

음식을 만드는 내 모습을 이룸이가 그려준 그림이다.

기침을 하게 된 후로 절대 목에서 풀지 않고 있는 머플러며, 부엌에서 늘 두르고 있는

체크무늬 앞치마며, 큰 언니가 선물해준 북실북실 따스한 털 레깅스며 자세히보면

아주 세심하게 묘사해 놓았다. 마음에 쏙 들었다.

무엇보다 꾸미지 않은 아이다움이 담뿍 담겨 있는 그림이라서 좋다.

 

아홉살의 그림6.jpg

 

책상에 앉아 책 읽는 내 모습이다.

윤정이는 이게 무슨 엄마냐고 깔깔거리지만 나는 이룸이가 그려주는 내 모습이

미치도록 좋다.

그 순간 눈에 비치는 엄마 모습 그대로 그려내는 그림들이다.

 

어홉살이 그림4.jpg

 

벽난로 앞에서 낮잠자는 아빠 모습이다.

안경속에 감고 있는 눈, 넓적한 코, 손등에 불거진 핏줄들,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는 모습까지 순식간에 그려냈다.

 

아홉살의 그림5.jpg

 

텔레비젼을 보며 새우과자를 먹고 있는 내 모습에선 과자를 쥔 손이 제일 크게

그려져 있다. 이룸이 눈에 제일 가까이 보이는 것이 제일 크게 묘사되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아이답다.

머리로 원근법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제게 느껴지고 보여지는 대로 그린다.

 

아홉살의 그림3.jpg

 

겨울잠바를 입은 아빠 모습도 딱 남편이다. 그림마다 다른거 같지만 모아놓고 보면

 남편다움이 어느 그림에나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이가 아이답게 그림을 그리는 시기는 의외로 빨리 지나간다.

어른이 이런 저런 훈수를 두기 시작하면 더 빨리 사라진다. 제 맘껏 신나고 행복하게

그려온 그림을 놓고 머리가 너무 크다느니, 손이 이렇게 길면 안된다느니 참견하면서

어른이 한 번 그려보이는건 최악이다. 그 다음부터 아이는 제 느낌보다

어른이 일러준 것들을 기준 삼아 그리기 시작한다.

제 마음에 드는가가 기준이 아니라 어른 마음에 드는 그림인가를 신경쓰기 시작한다.

제가 그리는 것에 자신감과 자부심이 사라지고나면 그림 그리는 일은 더이상 즐겁지 않다.

수많은 어린 예술가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반짝거리는 예술성을  잃어간다.

이룸이가 그린 그림은 절대 판단하지 않는다. 비평하지도 않는다. 다만 느낌만 솔직하게

얘기해주면서 진심으로 열광해준다.

처음엔 이룸이도 그림을 어떻게 그리면 되요 라고 물었다.

네 눈에 보이는대로, 네 마음에 가장 크게 와 닿는 것들을 중심으로 그리면 된다고만 했다.

아이의 그림을 보면 어떤 점들이 마음에 가장 크게 닿았는지가 느껴진다.

그래서 매번 이룸이의 그림을  볼때마다 놀라고 행복하다.

어떤 그림에나 이룸이가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림이 살아있다.

 

아홉살의 그림4.jpg

 

재밌어서 빠져들고, 제 작품을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기며 자랑스럽게 내미는 이룸이의 표정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꽉 차 있다.

그 눈부신 빛은 내 녹슬어가는 감성까지도 다시 빛나게 하는 힘이 있다.

살아있는 그림이 가진 힘이다.

 

이런 빛이 언제까지 반짝일까.. 어쩜 한 순간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룸이는 지금 그런 나이에 있다.

언니처럼 가슴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홉살 딸은 어느 순간 훌쩍 소녀로 자라버렸다.

보자기를 오려서 망또를 만들어 입고 집안을 뛰다가도 거울 앞에서 머리 모양을 만지느라

떠날줄을 모른다.

그래서 이룸이의 이 생생한 그림이 더 소중하다.

아직은 이런 일이 시시하지 않고, 아직은 이 일이 두근거리게 재밌다는 게 고맙기도 하고,

한 순간 마법처럼 다른 세상으로 가버릴 수도 있음을 알기에 조마조마하기도 한 복잡한 기분으로

이룸이가  내미는 작품들을 나는 욕심껏 그러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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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5 Mar 2019 18:55:39
<![CDATA[우리 가족이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는 방법]]>

 

그리하여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우리집의 전통대로 거실에 모여 가족상장 수여식과 가족사진을 찍는 날이다.

기숙사에 가 있던 아들과 두 딸들은 학교 수없이 없는 날이라 종일 같이 있었고

출근했던 남편은 해 지기 전에 들어와 찬 바람을 맞으며 닭장을 고치느라 애를 썼다.

다같이 앉아 저녁을 먹고 작은 케익에 식구 숫자대로 초를 켜고 노래를 부르며

서로의 한 해를 격려했다.

그리고 오후동안 각자의 공간에서 비밀리에 만든 가족 상장을 가져와 수여식을 가졌다.

지난해까지는 그냥 색지로 만들던 상장을 오래는 좀 색다르게 금박입힌 상장용지를

구해 와 만들었다

 

잘가2018.jpg

 

제일 먼저 남편이 나섰다.

내게 준 상은 '이상'이란다.

'이상'이라니? 무슨 상이야? 갸웃거렸는데

- 이 기상과 이 맘으로 불철주야 가족의 십첩반상을 정성들여 차림과 더불어

늘 이상을 얘기함에 2019년도에도 더 정진하고 지속적으로 참신한 이상을

추구하기를 기대하며 이 상과 부상을 드립니다' 라고 썼다.

아무말 대잔치같은 말들이 묘하게 섞여 재미를 더 하는데 부상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매번 상장 수여식에 선물을 챙겨 온 남편이 이번에도 뭔가 준비했던 모양이다.

내게 준 부상은 '스타벅스 상품권'이다. 돈 아까와서 내 돈 주고는 못 가는 곳이라고 했더니

그 말을 기억하고는 챙긴 모양이다.

새 해에 바로 스타벅스 갈 일을 만들어봐야겠다. 남편 덕에 생전 안 들리던 곳을 가보게 되었다.

 
잘가2018 2.jpg
 

남편이 필규에게 준 상은 '밤 샘 상'이다.

- 2018년 한 해 동안 불철주야 공부와 놀이를 게을리하지 않음을 기억하며

새해에도 변치않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기를 기대하며, 아울러 밤새도록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갖자는 의미에서 이 상과 부상을 드립니다 '라고 썼다.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주말에만 집에 오는 필규는 집에서의 시간을 게임과 스마트폰

 들여다보기, 그리고 밤 새 책이나 만화를 읽거나 숙제를 하는 일로 보냈다. 밤 새워 공부와

놀이를 열심히 했던 열 여섯 아들에게 주는 상이다. 부상으로는 특별용돈 3만원이 들어있는

봉투가 갔다.

뜻밖의 현찰이 생긴 아들이 씨익 웃어 주었다.

 

잘가2018 3.jpg

 

윤정이가 아빠에게 받은 상은 '복 많은 상'이다.

학교생활 뿐 만 아니라 다양한 방과후 활동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집안일도 열심히 도왔던

든든한 큰 딸에게 큰 복을 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담았다. 부상은 용돈 2만원!!

아빠가 상장을 읽는 내내 신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던 윤정이는 아빠를 꼭 안아 주었다.

 

잘가2018 4.jpg

 

이룸이가 아빠에게 받은 상은 '진짜 즐거움 상'이다.

늘 웃음과 재치로 가족을 웃게 하는 명랑한 막내딸을 칭찬하는 내용이 가득했다.

이룸이도 아빠에게 상장과 용돈을 받고 활짝 웃었다.

 

잘가2018 5.jpg

 

다음엔 내 차례여서 남편에게 제일 먼저 상을 수여했는데 내가 남편에게 준 상은

 '하나뿐인 당신 상'이었다.

- 당신은 나의 반려자이자 세 아이의 아빠로서 이토록 따스하고 풍요로운 가정을 이루는데

가장 큰 수고를 기울여 왔습니다 -

여기까지 읽는데 그만 눈물이 왈칵 나왔다. 한 해의 마지막날까지 근무를 하느라 애쓰고 들어와서

또 집안일을 하느라 찬 바람 속에서 고생한 남편이 애틋하고 고마운데 나이 들 수록 우리 가족

안에서 남편의 자리가 너무 크고 소중해지는 마음을 담아 쓴 글들이 하나 하나 마음을 울려 주책맞게

눈물이 줄줄 나와 버렸다. 끝내 다 못 읽고 이룸이가 대신 읽어 주었다.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내가 쓰고 싶은 글과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한

마음이 다 남편 덕 이라는 것을 한 해 동안 절절하게 느끼며 지내왔다.

눈물이 아니고는 고맙고 애틋한 마음을 도저히 전할 수 가 없어서 필규의 핀잔을 받으면서도

펑펑 울어 버렸다.

 

잘가2018 6.jpg
 

한 번 눈물이 터지고 나니까 윤정이 상장을 읽으면서도 끝내 눈물이 흘러버렸다.

듣던 윤정이도 같이 울었다.

내가 윤정이에게 준 상은 '최고의 5학년 상'이었다.

너무나 좋은 선생님을 만나 1년 동안 정말 행복하고 기쁘게 학교 생활을 하면서

많은 빛나는 발전을 이룬 큰 딸이 너무 고왔고 대견해서 그 애쓴 날들을 격려해주고 싶었다.

남편과 내게 든든한 딸로, 학교에서는 유쾌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로, 나날이 자기 생각이

영글어가는 멋진 사람으로 커가는 딸이 한 없이 이쁘고 자랑스러웠다. 그런 말들을 전하다가

눈물이 터져 윤정이랑 같이 눈물을 찍어냈다. 그리고 서로 오래 안아 주었다.

늘 마음 약하고 정이 많고 겁도 많았던 어린 딸이 어느덧 새해에는 6학년이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갈 줄 몰랐다.

 

 

 

이룸이에게 내가 준 상은 '재능 폭발상'이다.

 

상장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이룸이는 좋아서 어쩔줄을 몰랐다.

2학년 1년동안 이룸이는 키도, 몸도, 배움과 재능 모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생각과 표현, 공부와 학교생활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보였고 가족 모두에게 다양한 기쁨을

선사했다. 어리지만 자기 생각이 뚜렷한 재능많은 막내딸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남편과 내게

큰 기쁨이자 행복이다.

마흔에 낳은 딸이 내년에 열 살이다. 이 아이와 40대의 모든 날들을 같이 커 왔다.

아.. 또 눈물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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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제일 예측불허의 상장을 주는 필규 차례다.

필규가 아빠에게 준 상은 '망부석 상'이다.

- 작년보다 더 강력해진 갈등과 분란에도 평정을 유지하신 위 사람에게 이 상을 드립니다'란다

여전히 엄마에게 대드는 제 행동이나 사춘기에 들어서 날카로와진 윤정이 때문에 종종 집안이

시끄러워질 때 에도 큰 소리 안 내고 지켜봐주었던 아빠를 고맙게 여기는 상이다.

망부석 상이라... 정말 필규의 상이름은 우리 부부를 진정 크게 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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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규가 윤정이에게 준 상은 '부처상'이었다.

- 위 사람은 작년보다 한층 더 동생의 도발을 잘 참아냈기 때문에 이 상을 드립니다-

내용을 듣다가 모두가 빵 터졌다.

"나, 이룸이 도발, 안 참았는데 ?" 하면서도 윤정이는 좋아했다.

빨리 크는 동생때문에 힘든 윤정이를 알아준 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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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상을 제일 기대하는 이룸이가 오빠에게 받은 상은 '패션피플 상'이다.

- 위 사람은 (나는 모르겠지만) 유행 패션에 민감해지고 그것을 따르려 노력하였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 라고 썼다.

패션 안경을 기어이 장만하게 하고, 유행하는 토끼모자를 제것으로 하고 귀찌와 틴트를

부르짖는 막내 동생의 패션감각을 인정해준 상 이었다.

 

언제나 재치 넘치는 막내가 아빠에게 준 상은 '좋은 추억 선물해줘서 고맙상'이었다.

- 아빠는 나에게 좋은 추억 하나하나를 선물하고 행복과 우정들을 나눠 나, 그리고

가족들을 기쁘게 하였음으로 이 상을 수여함 - 이라고 썼다.

가족을 위해 애쓰는 아빠를 사랑하는 막내의 마음이 고스란했다.

나에게는 '그 따뜻함, 정말 고맙상'을 주었다. 가족들을 따스함으로 감싸주어서

고맙다는 뜻 이었다.

화도 잘 내고 버럭거리기도 잘 하는 엄마가 잘 해 줄 때를 더 소중하게 여겨준 상이다.

내년에는 좀 덜 소리질러야지...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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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동안 정말 징글징글하게 싸웠던 두 딸들은 상장을 주는 순간엔 훈훈했다.

윤정이는 이룸이의 그림실력을 격려하는 '최고의 크로키 상'을 주었고,

이룸이는 언니에게 '이 세상 최고 아이디어 상'을 주었다. 놀이할때 더 멋진 아이디어로

재밌게 해준 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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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룸이는 오빠에게 '날렵한 카리스마 상'을 주었는데 '나에겐 꽃미남 최필규'라고

적어 놓은 것을 읽는 순간 오빠가 오글거림을 못 참고 이룸이 목을 조르는 바람에

한 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룸이는 여전히 오빠를 숭배하고 필규는 변함없이 그 점을 못 견뎌한다. 웃겨죽겠다.

필규가 나에게 준 상은 '작가상'이다. 6년만에 새 책을 내고 또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를 격려하는 상이다. 윤정이는 내게 '잠자는 숲 속의 엄마상'을 주었는데

- 우리 엄마는 우리를 위해 놀아 주시고, 글을 쓰고, 요리하고, 아빠를 위해 챙겨드리고

늦게까지 같이 있어주고 자신을 위해 약까지 챙겨 항상 피곤해서 부엌 앞에서 자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이 상을 드립니다 - 라고 써 있었다.

잠이 늘 부족해서 종종 주방 앞 글 쓰는 식탁 의자로 쓰는 전기매트위에서 한 두시간씩

낮잠을 자곤 했는데 그 모습이 안스러웠던 모양이다. 늘 불만이 많고 나와 자주 부딛쳤던

딸인데 내 일상을 이렇게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했다.

울고, 또 웃으며 가족상장 수여식을 마쳤다. 작년보다 성큼 자란 모습도 보였지만 이런 자리를

어색해하는 큰 아들도 열심히 마음을 내어 참여해주는 것이 고마왔다.

늘 가족 중 제일 많이 신경쓰고 챙기는 남편도, 제일 이쁘고 아기자기한 상장을 만들어 오는

두 딸들도 다 고맙다. 이런 모습에서 1년동안의 수고를 다 보상받는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그런 자리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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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청년 사이에 있는 어색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필규, 본격적인 사춘기에 들어설

윤정이, 오빠 언니 따라 폭풍 성장중인 이룸이, 이 세아이의 새해는 또 어떨까.

그 사이에서 한 해 한 해 더 나이들어가지만 한층 더 부드러워지고 넓어지는 남편과

이 가정을 잘 꾸려가야겠다.

글 쓰고 살림하느라 애쓴 나에게도 박수를...

1년간 우리 가족을 응원하고, 지켜봐주며 따스하게 격려해주신 많은 독자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2019년도 베이비트리와 함께 열심히 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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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5 Mar 2019 18:54:53
<![CDATA[우린 언제나 새로운 노래를 부를 수 있어]]> 방학을 앞두고 마지막 마무리 잔칫날 모둠별로 인형극을 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이룸이한테 들은 것은 한참 전이다. 모둠에 속한 아이들끼리 인형극 준비물도 만들고

역할을 나누어 마무리 잔치 때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이룸이 모둠 친구들이 제 맘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연습이 잘 안된다고 속상해 했다.

힘들겠네, 저런 속상하겠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도 해주며 잘 준비해보라고

도닥였는데 그래도 잘 안되는 모양인지 인형극 공연 때문에 집에 와서 부려대는 짜증과 분노가

날로 더해갔다.

" 애들이 연습도 안 하고 장난만 치고 다른 모둠은 다 연습도 잘 되는데 우리는 완전 망했어요"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도움을 청해보면 어때?"

"선생님도 아시는데 소용없어요. 장난만 계속 친다구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나도 모른다구요. 어떻게하면 좋냐구요. 왜 나만 이런  모둠이 걸려서 이렇게 고생하냐고...엉엉"

나중에는 소리 소리 질러가며 울기도 여러번 했다.

학교 행사에 욕심도 많고 열정도 많은 아이인데 마음대로 안 되는게 얼마나 힘들까..

이해가 되면서도 아침마다 징징거리고, 학교 다녀와서 신경질 부리고, 느닷없이 소리 지르며

꺼이 꺼이 울어대는데는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그 친구들을 감당해가며 준비해 가는 이룸이가 제일 힘들겠지 싶어 생난리를 치며

짜증 부려도 꾹 참았다. 다른 식구들한테도 모른척 해 달라고 부탁했다.

드디어 마무리 잔치날인 오늘, 이룸이는 깨우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이불위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오늘인데 어떻해. 준비도 하나도 못했는데, 아아, 학교 안 갔으면 좋겠어.. "

바쁜 아침에 서둘러 준비해도 시간이 빠듯한데 깨어나자마자 울고불고 뒹굴고 있으니 난감했다.

화내지 않고 살살 달래가며 재촉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울며울며 느릿느릿 준비를 하는 것도

꾹 참으며 한 마디 하고 싶어하는 윤정이에게도 아무말 말라고 단속을 해가며 밥상에 앉았는데

이룸이는 상 옆에 주저앉아 소리를 질러가며 울기 시작했다.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꾹 참았다.

퉁퉁 부은 얼굴로 제일 늦게 상에 앉은가 싶었는데 갑자기 비명을 꽥 지르는 것이다.

" 아악 .. 어떻하냐고!!! "

윤정이가 깜짝 놀라 황당한 얼굴로 나를 보고, 나도 너무 놀라서 수저를 떨어뜨릴 뻔 했다.

더 이상 참을 수 가 없었다.

"학교 가지마! 결석해. 그렇게 괴로우면 학교 빠지고 연극 하지마!"

울고 있는 이룸이한테 꽥 소리를 질렀다.

"... 학교는 갈꺼예요"

이룸이는 내 소리에 놀라서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수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빨리 준비하고 밥 먹고 학교 가. 가서 죽이되든 밥이되든 알아서 해"

"내가 잘 하고 싶어도 다른 친구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내 대사도 할 수 없다구요. 그럼 어떻해요?"

"뭘 어떻해, 연극을 망쳐야지!"

단호한 내 이야기에 이룸이가 눈물이 얼룩진 얼굴을 들어 바라보았다.

"망치면... 어떻해요..."

"넌 할 수 있는거 다 했잖아. 그런데 너 혼자만 잘 한다고 되지 않잖아. 선생님께 말 했어도

소용없다면서..

당장 오늘이 공연인데 준비는 하나도 안됬으]]> Fri, 15 Mar 2019 18:54:12 <![CDATA[30인분의 비빔밥을 준비한 날]]> 아들 학교 아이들 열두명이 1박 2일을 하러 우리집에 오기로 한 날은 1월 30일이었다.

본래는 다음날이 이룸이 생일이어서 이룸이가 초대한 아이들 열다섯명이 오기로 했었는데

이룸이가 양보를 해 줘서 생일파티 일정을 미루었다.

여름과 겨울방학에 학교 아이들 열댓명씩 와서 하루 자고 가며 놀곤 했던 것은 몇 년 째 해 오는 일이다.

매 번 남자 아이들만 왔었는데 필규가 고교과정에 들어가면서 학교에서 공동생할을 해 오고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함께 공동생활 하는 아이들 열두명을 초대했다. 남학생 여섯, 여학생 여섯이다.

게다가 늘 이 모임을 궁금해하고 부러워하던 선생님들 아홉분도 저녁을 드시러 오기로 했다.

아이들 열둘과 교사 아홉, 거기에 우리 가족 다섯을 합치면 스물 여섯명이다. 워낙 많이 먹는 아이들이니 적어도 30인분의 식사는 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

메뉴는 늘 비빔밥이다. 다만 밥과 거기에 들어갈 비빔재료들 양을 훨씬 늘여야 했다.

마당 넓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온 후 집에 손님이 오고 식사를 대접하는 일을 수없이 해 와서 크게

어려워하지는 않지만 30인분의 비빔밥을 준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내 아이를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이 모두 오신다니 청소며 음식준비며 더 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뼛속까지 빳빳한 긴장이 차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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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애들만 올때는 청소와 정리에 별 관심이 없던 필규는 이번에 여자 동기, 후배, 선배들이 오는데다

선생님들까지 온다고하니 발 벗고 나서서 청소를 도왔다. 방학이면 제 방에 한번 편 이불조차 며칠이고 개지 않고 뭉개가며 뒹굴던 녀석이 청소기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몇달은 차근차근 쌓여왔을 묵은 먼지를 싹 청소했다. 여학생들에게 제 방이 지저분해 보이는 것은 싫었던 모양이다. 이것 저것 도와달라고 할때마다 굼뜨게 움직이던 아들은 계단을 치우라고 했더니 적어도 5년 이상 그대로 쌓여있던 계단의 온갖 잡동사니들을 말끔하게 치웠다.(즉 안 보이는 공간에다 몽땅 옮겨 쌓아 놓았다)

물건 좀 치우자고 몇 번이나 잔소리를 해도 꿈쩍않던 남편이 부려놓기만 했던 수많은 물건들이 한순간에 감쪽같이 사라진 텅 빈 계단을 보는게 몇 년 만인지 정말 깜짝 놀랐다. 아들이 거뜬 거뜬 움직여주니 쌓여있던 쓰레기며 물건들이며 이런 저런 밀렸던 정리가 한번에 다 끝났다.

오호.. 여학생과 선생님 효과가 이리도 크다니, 녀석 어지간히 잘 보이고 싶었나보다. 덕분에 근 몇 년 이래 이렇게 집 전체가 정리되긴 처음이다. 매년 여학생과 선생님들을 꼭 불러야겠다고 다짐했다.

전날 정오에 아들과 재래시장을 돌며 장을 보고 와서 오후 내내 집안을 치우고 밤 부터 음식 준비에 들어갔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콩나물, 시금치, 애호박, 당근, 무생채, 상추, 부추, 고기 볶음이다.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시금치 나물과 콩나물을 전날 무쳐놓고 무생채를 담궜다.

요즘 한참 맛있는 섬초 시금치 두 근을 다듬고 씻어서 삶고 찬물에 헹군 후 꼭 짠 다음 비벼먹을 때 뭉치지 않도록 가늘게 찢어서 무치기까지 참말로 많은 과정과 시간이 들어간다. 번거롭고 힘든 재료는 빼도 되지만 섬초가 들어간 비빔밥을 내가 좋아하므로 꼭 넣는다. 콩나물도 세번에 걸쳐 삶아서 무치고 당근 여섯개도 가늘게 채 썰어 소금에 절였다가 볶았다. 무생채까지 하고 새벽 두시 무렵에 잠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 온 가족 이부자리를 몽땅 안방엔 넣고 마당을 치우고 집안을 마저 정리하고 나머지 재료들을 준비하면서 10인분짜리 압력솥으로 세번에 걸쳐 30인분의 밥을 지었다.

아이들은 네시부터 몰려왔고 다섯시 무렵 선생님들이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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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우리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장작패기에 도전하고 싶어한다.

아들의 학교에는 젊은 남자 선생님들이 많은데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도끼를 들게 되면 경쟁심이

발동하기 마련이다. 멋들어지게 장작을 쪼개고 싶지만 요령이 없어 힘만 잔뜩 들어간 도끼는 매번

장작을 빗맞고 그때마다 파도처럼 웃음이 터져나온다. 참나무 장작이 제대로 쪼개지만 환호와 갈채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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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따위 관심없는 아이들은 방에서 카드게임을 벌인다.

학교 일과 시간에 스마트폰을 쓰지 않게 되어 있는 아들 학교 아이들은 머리와 몸을 쓰는 다양한 놀이를 즐긴다.

우리집에 놀러 올때도 함께 즐길 여러 종류의 보드게임을 들고 온다. 스므살 아이와 열 너덧살 아이들이 어울려 유희황 카드 게임에 열을 올리는 모습은 언제봐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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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은 모두의 일을 함께 하는 것이 몸에 베어있다. 준비하고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 하는 모든 일을 모두가 나선다. 선생님들도 이런 일에 익숙하니 준비하고 차리고 치우는 것이 순식간이다.

일곱가지 채소와 고기볶음, 채식 하는 아이를 위한 김가루, 우리밀 고추장에 국산 들기름까지 맛난

비빔밥이 한 상 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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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큰 상 두개가 차려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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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앞 식탁에도 여럿이 둘러앉아 비빔밥을 먹었다.

한 번 먹고 더 먹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밥 세 솥으로 다행히 모자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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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상이 물려진 후에는 본격적인 게임판이 벌어졌다.

놀때는 아이들과 똑같아지는 젊은 선생님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쉐도우 헌터'라는 보드게임을 하면서 속고, 속이고, 추측하고, 밝혀내고, 발뺌하고, 추궁하고, 감추느라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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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큰 방에서는 이룸이, 윤정이까지 함께 하는 게임판이 벌어졌다.

매번 학교 사람들이 오면 제일 신나게 어울리는 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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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해 출장에서 늦게 돌아온 남편은 저녁도 먹지 않고 벽난로에 불을 먼저 지핀후에 2층에서 고구마를 가져다가 구워 주었다. 저녀을 그득하게 먹은 아이들도 남편이 구워주는 고구마 맛에 푹 빠졌다.

출장을 다녀오느라 청소며 정리며 도와주지도 못한 것이 미안했던 남편은 이런 것으로나마 우리집에 온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뿐인 아들을 대안학교에 보내자고 했을때 무척이나 반대했던 남편이지만 아들이 중등대안학교에 입학하고 그 학교를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공부도 다른 활동도 열심히 하는 모습에 마음이 열렸다. 지금은 누구보다 아들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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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게 선생님들이 모두 돌아가신 후 마당 데크위에 모닥불을 피웠다.

전날 필규와 이룸이까지 나서서 끌어다 놓은 땔감은 모처럼 추위가 누구러진 겨울밤을 후꾼하게 달구었다.

아이들은 밤이 아주 깊도록 불가를 떠나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고, 웃느라 가끔 그 웃음소리에 불길마저 일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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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놀이를 하고, 거실에서 영화 '위대한 쇼맨'을 보고 난 후 밤참으로 라면을 끓였다. 열 세명의 아이들은 스므개가 넘는 라면을 기새좋게 먹어 치웠고 남은 밥까지 말끔히 해결했다.

열 여섯에서 스물한살까지의 아이들은 그야말로 돌아서면 바로 배고프고 먹을것이라면 언제든 소화시킬 수 있는 존재들이다. 거기에 한창 먹성이 좋아진 윤정이와 이룸이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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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참을 먹고 나서 다시 게임이다.

그 사이 1층과 2층을 오가며 방을 정리하고 열 두 명이 잘 이부자리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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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언니들과 끝까지 놀고 싶어하던 두 딸은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제 방으로 자러 들어갔고,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필규 방에 누워 잠을 청했다.

아이들은 새벽 늦도록 놀았다. 그 사이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웃음소리는 배개맡까지 나를 따라왔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명랑하고, 그토록 우스개 소리를 잘 하고, 수다스러운 아들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지내고 있다는 것이,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고, 선한 영향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모습을 이때만큼 가까이서 실감하는 적이 없다. 그래서 이 모임에 몸과 마음을 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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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이룸이 생일이었다.

이룸이도 아이들도 늦게 늦게 일어났다.

아이들 열 다섯명이 자고 있는 방안을 조용히 돌아다니며 정리하고 아침밥을 준비했다.

원래 아침식사는 빵과 잼, 치즈 정도만 준비하지만 이번에는 거의 점심때가 되서야 아이들이 일어날 것이므로 오븐에 고구마을 가득 굽고, 밥을 지어 볶음밥을 만들었다.

정오무렵 일어난 아이들은 볶음밥과 군 고구마와 빵과 과일과 치즈를 맛있게 먹고 정리한 후 바로 이룸이 생일상을 차렸다.

31일이 이룸이 생일이니까 모두 편지를 준비해달라고 필규가 말했다지만 설마 다들 써 올까 싶었다.

그런데 케익에 촛불을 끄고 나자 한명씩 일어나 사라졌다 나타나더니 모두 선물과 편지를 내밀기 시작했다.

웹툰 작가가 꿈인 권영이는 이룸이가 제일 좋아하는 케릭터인 토토로의 한 장면을 붓과 펜으로 정밀하게 그린 그림을 내밀어 이룸이를 감격시켰고 언니들은 이룸이가 딱 좋아할만 한 귀여운 선물들을 준비해서 이룸이를 웃게 했다. 혹 옆에서 윤정이가 서운할까봐 윤정이 선물까지 준비해 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 마음들이 너무 고맙고 이뻤다.

"엄마.. 평생 잊지못할 생일이었어요"

이룸이는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정말 그랬다. 아이들 놀러오는 날과 이룸이 생일이 겹친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덕분에 좋아하는

오빠 언니들로부터 넘치는 축하를 받게 되었다. 이룸이를 낳은 내게도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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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자리를 모두 정리하고 집안을 치우고 아이들은 오후 2시무렵 집을 나섰다.

가기 전에 볕이 잘 드는 거실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올 해 졸업하는 스물 한살 권진이와 한글이, 지호는 이 모임에 언제나 초대받을 명예회원이 되었다.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그리고 스므살 아이들 모두 너무나 이쁘고 건강하다. 몸도 마음도

참 반듯하다. 마침 환하게 들어온 햇살이 아이들 얼굴 하나 하나를 보석처럼 빛나게 했다.

내 아이의 형과 누나, 동생이자 친구, 동료로서 함께 배우고 익히고 커 가는 아이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다 내 아이들이다.

올 여름에는 새롭게 공동생활에 들어온 얼굴들이 생길것이다. 그땐 새로운 사람, 새로운 공기가

이 공간을 또 채우리라.

아이들은 마당에서 오래 머물다가 기운차게 언덕길을 내려갔다.

열두명의 멋진 아이들은 이야기하며 웃으며 산길을 넘어 전철역까지 걸어갈 것이다.

이 아이들의 어린날, 젊은 날에 마음껏 밤새 놀 수 있는 날들이 있고, 반겨주는 마음들이 있고,

어슬렁거리고, 뛰고,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마당이 있고, 꼬리를 흔들며 손길을 바라는 개들이 있고, 나무와 산과 바람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 축복을 선물할 수 있는 내 복도 얼마나 큰 것인지 매년 실감할때마다 마음깊이 감사를 느낀다.

이 집에 사는 한 이 집은 이 아이들의 집이기도 하다. 이웃들의 집이기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집이기도 하다.

이 집 이후에 어떤 집에서 어떤 삶을 살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 집이 내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크고 넓은 집일테니 있는 힘껏 내 공간을 열어 사람들을 부르겠다.

같이 어울리고 웃고 먹고 나누며 즐겁고 뿌듯한 추억을 만드는 동안 가장 큰 선물을 내 가족과 내가 받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겠다.

잘가라 얘들아.

너희들이 올때마다 너희들과 어울리며 너희들의 마음 부푼 시절을 잠깐이나마 다시 살아볼 수 있는 기쁨이

너무 크다.

참 좋았다. 같이 있던 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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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5 Mar 2019 18:53:14
<![CDATA[한국에서 판매중인 의류, 한국식품 필요한분 수수료 한푼도 없음]]> 바이두케이 허락 없이 소개글을 올린점 사과드립니다. 불쾌하시다면 삭제 하셔도 좋습니다. ^^ 홈페이지 : www.buydok.com 이메일 문의 : webmaster@buydok.com 전화번호 : 070-4367-0111]]> Tue, 4 Oct 2016 01:09:59 <![CDATA[한국에서 판매중인 의류, 한국식품 필요한분 수수료 한푼도 없음]]> 바이두케이 허락 없이 소개글을 올린점 사과드립니다. 불쾌하시다면 삭제 하셔도 좋습니다. ^^ 홈페이지 : www.buydok.com 이메일 문의 : webmaster@buydok.com 전화번호 : 070-4367-0111]]> Wed, 6 Jul 2016 00:25:30